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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의 분노가 이룬 작은 진전

입력
2024.03.18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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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8 솔즈베리 주부들의 빵 폭동

노스캐롤라이나 솔즈베리 주민들은 소농가를 돕는 비영리단체 '브레드 라이엇(Bread Riot)'을 만들어 1863년의 선조들을 기억한다. breadriot.org

노스캐롤라이나 솔즈베리 주민들은 소농가를 돕는 비영리단체 '브레드 라이엇(Bread Riot)'을 만들어 1863년의 선조들을 기억한다. breadriot.org

1863년 3월 18일 정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의 작은 마을 솔즈베리(Salisbury)의 여성 50여 명이 다운타운의 한 생필품 가게로 몰려들었다. 정부 고시가격에 밀가루를 팔라는 요구를 상인이 거부하자 그들은 손도끼로 상점 문과 창고를 부수고 난입, 밀가루와 당밀, 소금과 함께 현금 20달러까지 빼앗아 떠났다.

남북전쟁 중이었고, 2년 전 연방에서 탈퇴한 노스캐롤라이나 청장년층은 모두 남부 연합군의 일원으로 전장에 나가 있었다. 북부연방이 ‘남부연합 봉쇄(Union Blockade, 1861~65)’, 즉 대서양과 멕시코만 일대 주요 항구를 봉쇄해 군수물자 유입을 막던 때였다.
남부는 전쟁 인플레이션에 따른 화폐가치 하락과 생필품 등 물자 부족 사태에 허덕여야 했다. 커피 수입이 중단되면서 뉴올리언스 등 일부 지역에서는 치커리(chicory) 가루를 대용품으로 한 ‘치커리 커피’를 마시기도 했다. 상인들은 생필품 사재기로 폭리를 취했다.

남부 문화는 대체로 여성에게 가정에서 아내이자 어머니로서의 역할 외에 공적-사회적 활동을 삼가는 것을 미덕으로 치지만, 남편을 전장에 보낸 당시 남부 서민 여성들에겐 가당찮은 요구였다. 그들은 남편 대신 밭 갈고 수확해 전쟁 세금을 납부하고 어린 자녀와 노부모를 부양해야 했다. 노동과 굶주림에 허덕여야 했지만, 전시 남부의 거의 모든 카운티 정부는 상인들의 횡포를 알면서도 손을 쓰지 못했다. 그 불만과 분노가 주부들의 폭동으로 터져 나온 거였다.

지역 신문 ‘캐롤라이나 워치맨’도 기사에서 표 나게 주부들의 역성을 들었다. “카운티 커미셔너들은 지난 수요일 우리 거리에서 일어난 주부들의 폭동 현장을 수치심으로 얼굴을 붉힌 채 살펴봐야 할 것이다.” 빵 폭동으로 체포되거나 기소된 이는 단 한 명도 없었고, 사건 직후 남부연합군 정부는 참전군인 가족을 위한 물자 배급제도를 개선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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