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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 한 대 설치에 빌딩보다 비싼 155억원 드는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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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 한 대 설치에 빌딩보다 비싼 155억원 드는 까닭은?

입력
2024.03.12 04:3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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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개 지하철역 엘리베이터 공사 중
까치산역 310억·고속터미널역 137억
"오래된 역, 협소하고 공사 까다로워"
서울교통공사 "올해 모두 공사 끝내
도움 없이 승강장 이동 '1역사 1동선' 실현"

지난달 28일 지하철 2호선과 5호선 환승역인 까치산역의 엘리베이터 설치 공사 현장. 지상의 보도 폭이 좁아 지하 대합실에서 엘리베이터의 이동통로를 파내는 굴착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파낸 암반과 토사가 지상으로 옮겨져 쌓여 있다.

지난달 28일 지하철 2호선과 5호선 환승역인 까치산역의 엘리베이터 설치 공사 현장. 지상의 보도 폭이 좁아 지하 대합실에서 엘리베이터의 이동통로를 파내는 굴착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파낸 암반과 토사가 지상으로 옮겨져 쌓여 있다.

지난달 28일 찾은 서울 지하철 2호선과 5호선 환승역인 까치산역에서는 엘리베이터 설치 공사가 한창이다. 까치산역에는 지상에서 지하 1층까지만 운행하는 엘리베이터 1대, 지하 1층에서 승강장이 있는 지하 5층까지 오르내리는 엘리베이터 1대가 약 115m 역사 양쪽 끝에 있다. 노약자와 장애인 등 교통약자들은 엘리베이터 승하차를 반복해야만 지하철을 탈 수 있다. 이런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승강장이 있는 지하 5층과 지상을 연결하는 엘리베이터 2대를 새로 설치하려는 것이다.

공사 비용은 무려 310억 원. 인근 웬만한 건물 한 채 값보다 훨씬 비싼 대당 155억 원꼴이다. 난공사이기 때문이다. 역사 바로 위가 시장이라 번잡한 데다 지상 도로와 건물 사이 보도 폭이 좁아 공사 공간이 나오지 않는다. 여기에 이 역 승강장은 지하 30m로 깊은 곳에 있어 엘리베이터의 수직 이동공간(심도)도 깊게 뚫어야 한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엘리베이터 설치 불가능' 역으로 여겨졌던 까치산역에 공사가 가능해진 건 새 공법이 도입된 덕분이다. 지상부터 심도를 뚫는 일반적인 방식(개착공법)이 아니라, 지하 1층 대합실부터 땅을 파내려가는 비(非)개착공법을 최초로 시도했다. 실제 지하 1층 대합실 내 공사현장에서 파낸 토사와 암반을 반출할 수 있는 통로가 없어 지상과 지하 1층을 다니는 기존 엘리베이터를 폐쇄한 뒤 공사용으로 이용하고 있다.

서울교통공사(이하 공사) 측은 "보통 대형 중장비를 동원해 지상에서 파고 들어가야 하나 사유지를 제외한 지상 공간이 협소해 일반 중장비를 동원할 수 없었다"며 "비좁은 지하 공간에서 소형 장비로 작업할 수 있는 업체도 간신히 수소문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서울 지하철 1~8호선 275개 역 중 '1역사 1동선'이 불가능한 곳은 모두 13개 역(4.8%)이다. '1역사 1동선'은 지하철을 이용하기 위해 지상에서 승강장까지 이동하는 과정에서 타인의 도움 없이 엘리베이터로 이동할 수 있는 동선을 확보하는 정책이다. 장애인 이동권 운동단체인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2021년 12월부터 이동권 보장을 요구한 것을 계기로 서울시와 공사는 예산 935억여 원을 배정해 13개 전 역에 엘리베이터 설치 공사를 진행 중이다.

지하철 2, 5호선 환승역인 까치산역 지하 1층 대합실 엘리베이터 설치 공사현장(왼쪽) 옆에 붙어 있는 안내 현수막. 박민식 기자

지하철 2, 5호선 환승역인 까치산역 지하 1층 대합실 엘리베이터 설치 공사현장(왼쪽) 옆에 붙어 있는 안내 현수막. 박민식 기자

까치산역처럼 공사가 어려운 역사는 여럿 있다. 엘리베이터 한 대 설치에 137억 원이 투입된 3·7·9호선 환승역인 고속터미널역도 마찬가지다. 7호선 쪽에는 엘리베이터가 지하 3층과 지하 2층을 연결할 뿐 지상과 대합실이 연결되지 않아, 밖에서 역사로 바로 들어갈 수 없다. 따라서 7호선을 이용하려는 교통약자는 일반인 도보로도 5분 이상 소요되는 9호선 1번 출구 쪽 지상 엘리베이터를 타고 역사 내로 진입해야 한다. 역사에 들어서도 7호선 환승통로에 무려 53개의 가파른 계단이 가로 막는다. 이곳에선 휠체어 리프트를 타고 내려가야 하나, 사고 위험이 있어 이 역은 '1역사 1동선'에서 제외됐다.

"100억 이상 공사는 경제성 심의... 난공사 중의 난공사만 남아"

이런 불편을 해결하려 지상에서 승강장까지 한 번에 연결되는 엘리베이터를 오래전부터 설치하려 했지만, 7호선 승강장 위쪽에 상가(센트럴시티 파밀리에스테이션)가 있고, 반포천 복개 구조물(옹벽)이 있어 여의치 않았다. 궁리 끝에 공사는 지하 2층에서 상가와 옹벽을 피하는 우회로를 수평으로 뚫고, 7호선 4번 출구 쪽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공사를 진행 중이다. 공사는 "7호선 환승 계단에 경사형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려다 환승 통로가 워낙 혼잡해 공사 시 안전 사고 발생 우려가 높아 계획을 바꿨다"고 밝혔다.

엘리베이터 설치 공사가 이처럼 고비용이고 까다로운 이유는 역사가 워낙 오래돼서다. 까치산역은 1996년, 고속터미널역(7호선)은 2000년 생겼다. 당시만 해도 '교통약자 이동권'에 대한 인식이 희박했고, 뒤늦게 설치하려니 역사 주변이 개발돼 착공이 어려워진 것이다. 2호선 신설동역(58억 원), 6호선 대흥역(58억 원)과 구산역(53억 원) 등도 비슷한 이유로 공사가 복잡해져 다른 방법을 찾았다.

100억 원 이상 투입되는 공사는 관련 법에 따라 경제성과 효용성 등을 종합 심의하는 절차(설계경제성검토)를 거친다는 게 공사 측 설명이다. 공사 관계자는 "막대한 예산이 소요돼도 장애인 등 교통약자의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연말까지 1역사 1동선 100% 달성을 실현하겠다"고 말했다.

박민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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