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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는 경제 위기… 기업들, 정보 공개하라" 미국 '기후공시' 의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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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는 경제 위기… 기업들, 정보 공개하라" 미국 '기후공시' 의무화

입력
2024.03.07 23:35
수정
2024.03.08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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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 기업에 기후위기 관련 정보 공시 의무화
탄소 배출량 및 감축 비용, 재해 리스크 등 공개
보수진영 "SEC 권한 넘어선 조치" 소송전 예고

미국 텍사스주(州) 서부 마이애미 일대가 지난달 28일 산불 피해를 입어 새까맣게 타 있다. 6일까지 텍사스 토지 4,860㎢가 불타며 주 역사상 최악의 산불로 기록됐다. 미국 인공위성 업체 막사 테크놀로지스가 제공한 사진이다. AP 연합뉴스

미국 텍사스주(州) 서부 마이애미 일대가 지난달 28일 산불 피해를 입어 새까맣게 타 있다. 6일까지 텍사스 토지 4,860㎢가 불타며 주 역사상 최악의 산불로 기록됐다. 미국 인공위성 업체 막사 테크놀로지스가 제공한 사진이다. AP 연합뉴스

미국 상장 기업들에게 기후위기 관련 정보 공개를 의무화하는 ‘기후 공시’ 규정이 제정됐다. 주요기업들은 온실가스 배출량과 잠재적 자연 재해 리스크를 재무제표에 기재해야 한다. 기후위기가 기업 운영에 막대한 피해를 끼칠 수 있는 만큼, 기후변화 관련 정보도 투명하게 공개하라는 취지다.

7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이날 일정 규모 이상 상장 기업이 기후 관련 정보를 공시하도록 의무화하는 규정을 위원 표결 3대 2로 승인했다. 제정을 주도한 게리 겐슬러 SEC 위원장과 민주당 측 위원 총 3명은 찬성표를 던졌고, 공화당 측 위원 2명은 반대했다.

기후위기 관련 '책임과 리스크'를 공개하라

게리 겐슬러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이 지난해 11월 미국 워싱턴 의회의사당에서 열린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 청문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게리 겐슬러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이 지난해 11월 미국 워싱턴 의회의사당에서 열린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 청문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규정 핵심은 기업이 기후위기 관련 '책임'과 '리스크'를 투자자에게 공개하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기후위기가 단순히 ‘환경 파괴 문제'가 아니라 기업 영리 활동에 실질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는 만큼, 투자자에게도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취지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공개하도록 하는 조항이 대표적이다. 특정 이유가 없는 한 시가총액 7,500만 달러 이상 기업들은 제품을 생산·판매하기 위해 직접 연료를 활용하며 뿜어낸 온실가스 배출량(스코프 1)과, 전기·열 사용에 따른 간접적 배출량(스코프 2)을 계산해 공시해야 한다. 이를 통해 투자자들은 어떤 기업이 기후변화의 주범인 온실가스 배출에 얼마나 책임이 있는지 알 수 있다.

겐슬러 의장은 “투자 결정을 내리기 위해 의존하는 공개 정보가 강화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업이 국제사회 및 국가 탄소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배출량을 줄여야 한다면, 구체적인 감축 방법과 비용 추계도 함께 기재해야 한다.

사업 분야가 산불 가뭄 홍수 등 자연 재해에 취약한 경우, 잠재적 피해 규모를 추정해 공시해야 하는 조항도 도입됐다. 기업 활동이 자연 재난의 불씨가 될 가능성이 큰 경우에도 관련 리스크를 기재해야 한다. 예컨대, 최근 미국 전력망 운영 회사들은 전깃줄에서 튄 불꽃이 이상 가뭄 탓에 바짝 마른 숲을 타고 대형 산불로 번지면서 천문학적인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에 시달리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SEC 규정은 기업들이 기후위기 관련 위험과 기회를 논의할 수 있도록 미국 최초로 연방 차원의 기준선을 제시한 것”이라며 “규제 당국은 '투자자들이 같은 업계 회사들의 환경 영향을 더 쉽게 비교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공시 책임은 2026년부터 적용된다.

"SEC 권한 넘어선 조치" 보수진영 반발

북아프리카 모로코 카사블랑카 남부 마을이 6일 극심한 가뭄 탓에 바싹 말라있다. AFP 연합뉴스

북아프리카 모로코 카사블랑카 남부 마을이 6일 극심한 가뭄 탓에 바싹 말라있다. AFP 연합뉴스

다만 SEC는 이날 제정 발표 직후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 그간 “기후 공시 의무화는 SEC의 권한을 넘어선다”며 반대해 온 보수 진영이 즉각 소송전을 예고하면서다. 미국 웨스트버지니아 조지아 앨라배마 알래스카 등 공화당이 이끄는 10개 주(州)가 법원에 이의를 제기하겠다고 발표했고, 주요 경제단체들도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패트릭 모리시 웨스트버지니아주 법무장관은 “기업이 공개를 원치 않는 정보를 공시하도록 강요했다”며 “결함이 많고 위헌적 조치”라고 비판했다.

공시 도입 의도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공시가 현실화되면 기업들이 기후변화 책임에 신경쓸 수 밖에 없는 만큼, SEC가 본분을 벗어나 '사회 운동'을 하려 한다는 취지다. 이날 규정에 반대표를 던진 공화당 측 마크 우예다 SEC 위원은 “SEC가 사회 변화를 주도하기 위한 수단으로 공시 제도를 악용했다”고 지적했다.

'기업 배출량 70%' 스코프 3 제외 한계

미국 캘리포니아주 시에라네바다 산맥 인근의 한 마을이 지난 4일 내린 폭설에 뒤덮여있다. 캘리포니아=AFP 연합뉴스

미국 캘리포니아주 시에라네바다 산맥 인근의 한 마을이 지난 4일 내린 폭설에 뒤덮여있다. 캘리포니아=AFP 연합뉴스

환경단체 측에서도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당초 SEC는 기업 공급망에서 직간접적으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스코프 3)까지 추적해 공시하도록 규정을 만들 방침이었으나, 반대 진영의 반발 및 소송 위협 탓에 결국 철회됐다. 스코프 3는 기업 배출량의 70%를 차지하지만 이를 공개한 기업은 극히 드물다. 이 탓에 국제회계기준(IFRS)에서 기후 공시 기준을 제정한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는 각국에 기후공시를 제정할 때 스코프 3를 포함하라고 권고했다.

미국 비영리 환경단체 ‘근심하는 과학자들’ 소속 기업 분석가인 라우라 피터슨은 영국 가디언에 “기업들이 스코프 3 공시를 반대하는 이유는 회사의 환경 오염 책임에 엄청난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라며 “회사가 ‘정말 나빠 보이는 것’을 우려한 조치”라고 비판했다.

김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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