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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할 뻔했던 기름 절도... 송유관 30㎝ 앞에서 '덜미'

입력
2024.03.09 16:00
수정
2024.03.1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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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가을 옥천 주유소 임대해 첫 범행
바닥 판 지 얼마 안돼 지하수 새어 나와 실패
지난해 1월 청주 모텔 통째 빌려 2차 범행
9m 땅굴 파 절도 성공 직전 경찰 일망타진

2015년 5월 개봉한 영화 '파이프라인'은 인생 역전을 노리는 여섯 명의 기름도둑(도유꾼)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관객수 14만여 명으로 비록 큰 흥행을 거두진 못했지만, 일반인에겐 생소한 도유꾼들의 세계를 생생하게 그려 큰 관심을 끌었다. 지난해 초 충북에선 이런 영화 같은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바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청주 송유관 땅굴 사건'이다.

주유소 빌려 첫 범행... 지하수 때문에 실패

지난 2022년 6월 충남 모처에 5명의 남성이 모였다. 석유사업을 했던 A씨와 B씨, 대한송유관공사 전 직원 C씨, 그리고 땅굴 파기 전문가인 D씨와 E씨였다. 이들은 이 자리에서 몇 시간 동안 송유관 기름을 훔치기 위한 계책을 짰다. A씨와 B씨는 범행 장소 물색과 전반적인 관리 및 자금책을, C씨는 절취시설 설치, D씨와 E씨는 굴착 작업과 훔친 기름 운반 등을 각각 맡기로 했다. 송유관안전관리법 위반죄로 두 차례 4년간 복역한 적이 있는 C씨는 대한송유관공사 기술자로 재직하며 알게 된 지식을 토대로 출소 한 달 만에 또다시 범행에 뛰어들었다. 동종 범죄로 2년 6개월간 교도소에서 복역했던 D씨는 자신과 평소 알고 지내던 E씨를 끌어들였다.

이후 범행 장소를 물색하던 이들은 송유관이 가까이 있는 충북 옥천군 소재 한 주유소를 발견했다. 이들은 의심을 피하기 위해 다른 사람 명의로 주유소를 통째로 임대해 범행을 저지르기로 의견을 모았다. A씨가 권리금 2,000만 원과 보증금 5,000만 원, 현장작업비 3,000만 원 등 1억 원을 대 준비를 모두 마친 뒤 그해 9월 말 작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작업은 며칠 만에 중단됐다. 땅굴을 파기 시작한 지 며칠 되지 않아 지하수가 새어 나왔기 때문이다. 초반부터 생각지 못한 난관에 발목을 잡힌 이들은 일단 후일을 도모하며 흩어졌다. 그리고 한 달쯤 뒤 A씨와 C씨, D씨가 천안의 한 편의점에서 다시 만났다. 이 자리에서 A씨가 "주유소 건으로 1억 원을 투자했는데, 여기서 끝내면 피해가 크다. 다시 해야 한다"며 "다른 곳을 알아보자"고 제안했다. 첫 범행 실패로 아쉬움이 컸던 C씨와 D씨는 이 제안에 반색하며 새로운 범행 장소 물색에 나섰다.

송유관 기름을 훔치기 위해 모텔 지하실을 파내고 만든 땅굴 모습. 대전경찰청 제공

송유관 기름을 훔치기 위해 모텔 지하실을 파내고 만든 땅굴 모습. 대전경찰청 제공


"여기서 끝낼 수 없다"... 모텔 통째 빌려 2차 범행

얼마 후 첫 범행 실패로 발을 동동 구르던 일당의 눈에 청주시 서원구 국도변에 있는 모텔이 들어왔다. 송유관이 가까이 있어 통째로 임대한 뒤 지하에 땅굴을 파면 기름을 훔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하지만 돈이 문제였다. 자금책 A씨가 지하수 때문에 실패한 주유소 범행에 돈을 댄 탓에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A씨와 B씨는 고민을 하다 또 다른 자금책 F씨를, D씨는 땅굴을 파면서 나온 흙을 치우고 훔친 기름을 운반하기 위해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 2명을 각각 더 끌어들였다.

이들은 범행 전 자세한 각자의 수익 배분 방식도 정했다. 기름 1L당 A씨는 400~500원, 기술자 C씨는 400원, B씨는 100원을 받기로 했다. 땅굴 파는 작업을 지휘하는 D씨는 굴착 과정까지 월 500만 원을 받고, 훔친 기름을 판매할 때마다 1L당 400~500원을 추가로 받기로 했다. 추가 자금책 F씨는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월 500만 원씩 챙겨주기로 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23년 1월 10일, 이들은 F씨가 조달한 5,000만 원을 포함해 보증금 8,000만 원, 월세 450만 원에 모텔을 임차하며 2차 범행에 나섰다. 주인에게는 모텔 사업을 하겠다고 속였다. 6일 뒤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사정으로 모텔을 당분간 운영하지 않는다'는 안내판을 모텔 입구에 내걸었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치고 모텔과 인근에서 매설물 탐지기로 송유관을 탐측한 이들은 쾌재를 불렀다. 송유관이 모텔 지하실에서 불과 6m 정도 떨어져 있고, 땅속으로는 3m 정도 깊이에 묻혀 있는 것으로 파악됐기 때문이다.

그래도 걱정은 남아 있었다. 옥천 주유소처럼 지하수 누수 등 변수가 생길 수 있어서다. 하지만 이런 걱정은 말 그대로 기우였다. 지하수는 물론, 별다른 위험도 없는 것으로 파악됐기 때문이다. 다만 송유관까지 직선으로 땅굴을 파는 게 여의치 않아 조금 우회해야 한다는 점이 어려움이라면 어려움이었다.

송유관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한 이들은 땅굴을 파기 시작했다. 굴착기 등 장비를 쓰면 편하지만 작업이 노출될 수 있어 삽과 곡괭이, 호미만 이용해 조심스럽게 작업을 했다. 흙을 파내고 천장과 벽에 각목 등으로 버팀목을 설치해 가며 조금씩 파 들어갔다. 사람이 앉은 자세나 기어서 오갈 수 있고, 도유 시설을 설치할 수 있는 정도 공간만 있으면 됐기에, 입구는 가로 81㎝에 세로 78㎝, 내부 통로는 가로 71㎝에 세로 85㎝ 정도 크기로 팠다. 그렇게 그해 3월 3일까지 두 달 넘게 9m에 이르는 땅굴을 파 송유관 30㎝ 앞까지 도달했다. 흙을 조금만 더 파내고 송유관에 구멍을 뚫으면 기름을 빼낼 수 있다는 생각에 잔뜩 들뜬 일당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끈질기게 일당을 추적한 경찰이 이날 현장을 덮치면서 이들의 범행은 또다시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송유관 기름을 훔치기 위해 모텔 지하실을 파내고 만든 땅굴 모습. 대전경찰청 제공

송유관 기름을 훔치기 위해 모텔 지하실을 파내고 만든 땅굴 모습. 대전경찰청 제공


5개월간 추적한 경찰, 송유관 구멍 뚫기 직전 일망타진

A씨 일당이 주유소에서 1차 범행에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은 2022년 10월 초, 대전경찰청에 국정원의 첩보가 날아들었다. "충북 한 주유소 지하에서 얼마 전 교도소에서 출소한 기술자 등이 가담한 일당이 송유관 절도 사건을 저지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곧바로 해당 주유소를 중심으로 주변 탐문과 잠복 수사에 나섰다. 주유소가 영업을 하지 않는 게, 첩보를 믿을 만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일당이 뿔뿔이 흩어졌다. 모텔 지하를 확인해 보니 바닥 일부가 채 마르지 않은 시멘트로 포장돼 있었다. 바닥을 팠다가 무언가 문제가 생겨 원상 복구해 놓은 것으로 보였다.

경찰 관계자는 "당시 상황은 충분히 의심되지만 검거할 수는 없었다"며 "판례까지 뒤져보니 범죄가 성립되려면 땅굴 등에 유압호스와 밸브, 천공드릴 등 송유관 도유장비를 설치해야 하는데 단순히 땅굴만 판 것은 범행으로 볼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이들이 어떤 사정이 생겨 중단했지만, 반드시 범행을 다시 저지를 것으로 보고 계속 동태를 살폈다. 그러던 중 지난해 11월 일당 중 일부가 다시 만난 사실을 포착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들이 이번엔 모텔을 빌려 지하실에 땅굴을 파 기름을 훔치려 한다"는 첩보가 들어왔다. 이후 주변 탐문과 잠복, 폐쇄회로(CC)TV 영상과 통신 기록 확인 등 이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수사를 이어갔다. 그러다가 지난해 3월 사전체포영장을 발부받아 모텔 작업 현장과 대전, 청주, 천안 등 주거지 인근에서 일당 7명을 검거했다

경찰 관계자는 "A씨는 이때까지만 해도 노출되지 않았지만, 수사 과정에서 공범으로 파악돼 마지막에 붙잡았다"며 "A씨와 B씨는 조사 과정에서 범행에 가담한 것은 맞지만 서로가 주범이라고 떠밀기도 했다"고 말했다.

경찰관계자는 그러면서 "당시 송유관이 하루 평균 6만6,000대가 오가는 4차로 국도 바로 옆, 지면 아래로는 3m 아래에 있어 자칫 지반 침하와 붕괴로 대형 인명피해가 발생할 위험도 있었다"며 "사회경제적 가치가 높은 송유관 도유는 폭발, 화재, 환경훼손 등 큰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단호히 대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송유관안전관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일당 중 주범 A씨와 기술자 C씨 등 4명은 1심에서 징역 1년 6월~4년의 실형을, 땅굴을 판 작업자 E씨 등 4명은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검찰과 A씨 등 4명이 형이 부당하다며 항소했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양형을 변경할 만한 사정이 없다"며 기각했다. B씨는 별도 기소돼 유죄로 판단된 사기사건이 병합돼 실형이 6개월 추가됐다.

대전= 최두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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