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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은 죽음 두려워하지 않아" 중국 5·4운동 리더들의 '3·1운동' 논평 공개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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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조선인은 죽음 두려워하지 않아" 중국 5·4운동 리더들의 '3·1운동' 논평 공개 [전문]

입력
2024.03.01 04:30
수정
2024.03.01 09:46
0 0

민중 각성 5·4운동 中 현대사 분기점
지식인·학생 3·1운동 소개, 中 저항 호소
"폭력 사용 않고 세계 혁명 신기원"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통쾌" 극찬

한국일보는 3·1절 105주년을 맞아 중국의 5·4운동 주역들이 3·1운동에 대해 논평한 당시 문헌 자료 전문을 입수했습니다. 1919년 5월 4일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시작된 5·4운동은 '중국 현대사의 분기점'으로 평가받을 정도로 중국사에서 의미가 큽니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과 중국의 학계는 3·1운동이 5·4운동의 중요한 기폭제였다는 것에 공감했지만, 시진핑 체제의 중국에서 '자국 중심주의'가 심화하면서 노골적으로 그 영향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한국일보가 공개하는 문헌은 3·1운동을 당시 중국 지식인과 학생이 어떻게 인식했고, 또 그 인식이 5·4운동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를 보여주는 핵심 1차 사료입니다. 또 중국의 '주변국 역사 축소' 해석을 반박하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언론에 전문이 공개되는 것은 처음입니다.

자료는 문영걸 미도중국연구소 소장(베이징대 종교학 박사)이 중국국가도서관과 베이징대 도서관 등에서 발굴한 것으로, 문 소장은 "3·1운동의 국제적 영향에 대한 연구가 더욱 활발해지길 바란다"고 원문 자료와 번역문을 제공했습니다. 이에 한국일보닷컴에 자료 전문을 싣습니다.

① 신문 '신보(申報)'에 실린 신무의 글 "부끄럽다(慚)"

신문 '신보'에 1919년 3월 14일 실린 신무(辛木)의 글 "부끄럽다(慚)". '신보'는 훗날 마오쩌둥과 함께 공산당을 창당한 리다자오(李大釗) 가 첫 주필을 맡았던 신문이다. 루신 등 유명 진보인사가 주필을 역임했고, 훗날 5·4운동의 대표 기수로 인정받는다. 신무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문영걸 소장 제공

신문 '신보'에 1919년 3월 14일 실린 신무(辛木)의 글 "부끄럽다(慚)". '신보'는 훗날 마오쩌둥과 함께 공산당을 창당한 리다자오(李大釗) 가 첫 주필을 맡았던 신문이다. 루신 등 유명 진보인사가 주필을 역임했고, 훗날 5·4운동의 대표 기수로 인정받는다. 신무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문영걸 소장 제공

한일합병 이후, 고려라는 나라는 거의 바다에 잠긴 바윗돌처럼 되었다. 그러나 예견치 못한 것은, 오늘에 이르러 일부 지사(志士)들이 일어나 그 바윗돌을 바다 밑바닥에서 건져내어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려 하고 있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바쳤다. 엄청난 위험을 무릅쓰고서도 좀처럼 낙심하지 않는 그들은 참으로 혈기가 넘치고 존경스럽다.

우리 중국은 본래 아무 일 없이 평안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일부 □□가 일어나 서로 다투고 빼앗고 하여 갈기갈기 찢어졌다. 그러함에도 더하여 목숨을 걸고 서로를 바다에 빠뜨리려 하고 빨리 가라앉지 않을까 봐 난리이다. 이 두 나라를 비교해 보면, 부끄럽지 않을 수 없다.

고려인들은 왜 예전에는 하지 않았던 독립운동을 오늘에 와서는 대대적으로 강행할까? 여기에는 원인이 있다. 왜냐하면 지금 유럽이 다툼을 그치고 화해하면서 온 세계가 확장하는 시기가 된 것이다. 나라를 잃은 민족들은 자유를 회복하고 약소 국가의 국민들과 위기를 평화로 바꾸려면 반드시 지금의 기회를 붙잡고 애써 노력해야 한다. 때문에 이 기회는 얻기 힘든 것이고 매우 보귀한 것이며 절대로 잃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고려인들은 이 기회를 잡아야만 죽음에서 살 길이 열림을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중국)는 거꾸로 이 기회를 등지고 아직 살아있는데 오히려 죽음을 찾아가고 있다. 이 두 나라를 비교해 보면, 부끄럽지 않을 수 없다.

고려의 독립운동은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의 거사로 말미암아 일본정부는 앞으로 절대로 가볍게 여기지 못할 것이다. 혹은 세계의 흐름에 따라 그들에게 얼마간의 자치를 주고 일부 속박을 줄일 수도 있다. 비록 만족할 만한 것이 아닐지라도 앞으로의 진전에 발걸음을 뗀 것이다. 나는 고려의 미래가 결코 절대적으로 비관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중국은 지금 이미 반죽음 지경에 이르렀다. 이대로 간다면 오직 나라가 망할 것이다. 나라가 망한 다음 다시 구하려면 아마 지금과 같은 좋은 기회마저 없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고려의 운명보다 더 비관적일 것이다.

나는 이번 고려인들의 거사를 보면서 다시 중국의 상황을 돌아볼 때, 참으로 부끄럽다. 더는 참을 수 없어 몇 마디 부끄럽다는 말을 하게 되었는데, 여러분들은 어떠한 느낌인지 묻고 싶다.

② 주간지 '매주평론(每週評論)'에 실린 천두슈(陳獨秀·필명 '척안')의 "조선독립운동에 대한 감상(朝鮮獨立運動之感想)"


1919년 3월 23일 '매주평론' 제14기에 실린 천두슈의 글 '조선독립운동에 대한 감상'. 문영걸 소장 제공

1919년 3월 23일 '매주평론' 제14기에 실린 천두슈의 글 '조선독립운동에 대한 감상'. 문영걸 소장 제공

이번 조선의 독립운동은 위대하고, 간절하며, 비장하고, 분명하며 정확한 개념이 있다. 그것은 민중의 뜻만을 사용하고 폭력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세계 혁명의 신기원을 열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조선인들의 자유 사상이 이로부터 계속 발전하기를 바란다. 우리는 조선 민족의 독립 자치의 영광이 머지않아 곧 발견될 줄로 믿는다. 우리는 조선이 독립한 이후에도 여전히 지금 '민중의 뜻을 사용하고 무력을 사용하지 않는' 태도를 유지하기를 희망한다. 영원히 병사 한 명도 모집하지 않고 총탄 한 발도 만들지 않음으로써 세계 여러 민족들의 새로운 결합-나라라고 부르지 않는다-의 모범이 되기를 바란다. 군국침략주의의 고통을 겪은 사람들은 당연히 군국침략주의를 내버리게 된다. 기왕 군국침략주의를 내버렸다면 당연히 군대를 키울 필요가 없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일본인들이 설령 즉각 조선의 독립을 인정하지 못할지라도 마땅히 조선에 주둔하고 있는 군인과 경찰을 줄이고 조선인들의 상당한 자치 권리를 허락하기를 바란다. 우선적으로 이번 독립운동에 참가한 사람들에 대하여 일괄 그 어떠한 형벌도 가하지 않으며, 이로써 일본인의 문명 정도를 보여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번 독립운동은 조선인들의 정당한 권리이고, 동시에 일본의 국가 체제를 침범하거나 일본국의 안정 질서를 어지럽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자유 독립의 대화(大和) 정신이 넘치는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의 이번 비장한 실패에 대하여 모두 마땅히 동정의 뜨거운 눈물을 흘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조선 민족 독립활동의 빛이 있으니 우리 중국 민족의 시들고 쓰러진 치욕이 더욱 잘 보인다. 공화 체제가 벌써 8년이 되었지만 일반 국민은 어느 하루라도 분명하고 정확한 의식의 활동이 없었다-신해혁명, 대부분이 강도이고 망나니들로서 광복의 이름을 빌어 강탈만 일삼았다. 국민과 정치는 서로 천백만 길이나 멀리 떨어졌다. 본국과 외국의 군벌들이 연합하여 핍박하여도 어디 감히 조그마한 반항조차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서남호법군(西南護法軍)은 결국 국민을 두 동강으로 나누어버렸다. 농촌의 농민 백성들이 감히 소리를 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주절주절 시끄럽다는 유명인들, 신사들, 정치인들, 상인들, 교육계마저도 공공연하게 자신의 주인 된 국민의 자격을 저버리고 제3자의 입장에서 정국을 논하고 있다. 이번 조선인들의 독립활동을 보라. 무기가 없다고 반항하지 못하고 주인 된 자격을 포기하고 제3자가 되는 것인가? 우리는 조선인들과 비교해 보면, 참으로 하늘과 땅 앞에 부끄럽기 짝이 없다.

이번 조선에서 독립운동에 참가한 이들은 학생과 기독교인들이 가장 많다. 때문에 우리는 더더욱 교육 보급의 필요를 느끼게 된다. 우리는 이로부터 더 이상 기독교를 가볍게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중국 지금의 학생과 기독교인들 모두는 왜 이처럼 죽은 듯이 잠잠한가?

③ 잡지 '신조(新潮)'에 발표한 푸스녠(傅斯年)의 "조선독립운동의 새 교훈(朝鮮獨立運動中之新教訓)"

푸스녠, '조선독립운동의 새로운 교훈'. 1919년 4월 1일 잡지 '신조' 제1권 제4기에 실렸다. 잡지 '신조'는 베이징대 학생들이 만든 월간지로, 리다자오, 천두슈, 후스(胡適) 등 교수의 지도를 받고 훗날 5·4운동의 주동자들이 된 푸스녠, 뤄자룬(羅家倫) 등이 편집 책임자였다. 문영걸 소장 제공

푸스녠, '조선독립운동의 새로운 교훈'. 1919년 4월 1일 잡지 '신조' 제1권 제4기에 실렸다. 잡지 '신조'는 베이징대 학생들이 만든 월간지로, 리다자오, 천두슈, 후스(胡適) 등 교수의 지도를 받고 훗날 5·4운동의 주동자들이 된 푸스녠, 뤄자룬(羅家倫) 등이 편집 책임자였다. 문영걸 소장 제공

이번 조선의 독립운동은 외적인 양상으로 보면 역량이 지극히 미약하고 성공은 조금도 없어 보이며 시간은 매우 짧다. 하지만 내적인 정신으로 보면 참으로 "혁명계의 신기원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번 조선독립운동은 확실히 특별한 색채를 가지고 있다. 내 생각에 조선의 독립운동 향후 모든 혁명운동에 대하여 세 가지 차원의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다.

첫째, 비무력적 혁명이다. 일본이 조선인들에 대하여 집에 무기를 감추는 것을 특별히 단속하고 있고, 심지어 무기로 사용할 만한 금속물도 허용하지 않는다. 나는 조선인 친구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친구는 농촌에 살았었는데 동네에서 다섯 가정당 한 자루의 식칼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다른 경우들은 가히 상상할 수 있다. 때문에 이번 조선인들의 독립운동은 오직 선언문을 발표하고 집회를 열고 입으로 일본 경찰을 물어뜯는 정도이지 총칼을 들고 피 흘림을 막는 도구로 삼은 것이 아니며 무기를 자유를 취득하는 도구로 삼은 것이 아니다. 이러한 행동은 오늘날에는 비록 성공할 수 없겠지만 이렇게 무력을 사용하지 않는 독립운동의 가치는 참으로 무기를 사용하는 독립운동보다 훨씬 더 높은 것이다. 후자는 비록 효과적이겠지만 그 수단이 깨끗하지 않아서 결국 성공했다고 할지라도 그 안에는 곳곳에 예상치 못한 악한 일들이 숨어 있을 것이다. 이처럼 무기를 사용하지 않은 혁명이야말로 정의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알면서도 행하는' 혁명이다. 취약한 민족은 매번 중대한 사건에 직면하게 되면 반드시 가능한지 불가능한지를 묻게 된다. 역량이 부족하면 좌고우면하게 되면서 결국에는 아무 일도 성사하지 못하기 마련이다. 사실 대중이 소원하는 사안이고 대중이 희망하는 사안이라면 불가능이 없으며 역량이 부족할까 염려할 것도 없다. 최후의 성공은 이르고 늦은 문제는 있겠지만 부정적인 문제는 전혀 없다. 때문에 '안 되는 줄 알면서도 굳이 하는' 것을 '반드시 될 줄로 알고 굳이 하는'으로 바꾸어야 한다. 지금 중국이 가장 우려해야 할 현상은 바로 사회 일반인들이 개혁사업에 대하여 언제나 불가능한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중국인들의 지극히 오랜 기간 어쩔 수 없는 운명이 정해준 것이다. 모두가 하지 않는데 어찌 가능할 수 있으랴? 모두가 한다면 어찌 가능하지 않으랴? 조선인들의 굳은 의지를 보면서 우리는 참으로 숨을 곳이 없을 정도로 부끄럽기 그지없다! 조선인들의 이러한 정신은 곧바로 조선인들의 최후 승리를 예고하고 있다.

셋째, 단순한 학생혁명이다. 역대의 혁명들은 반드시 학생들을 떠나 있을 수 없다. 그러나 학생 외에도 다른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서생은 자체적인 힘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군인이나 자본가의 힘을 빌리려고 한다. 그런데 혁명이 성공하고 나면 곧 군인이나 자본가의 독재가 이루어져 학생들의 초심과 어긋나게 되며 혁명이 결국 미혁명이 된다. 이번 조선독립운동은 일말의 다른 세력이 없이 단지 일반 서생들의 자각심만으로 이루어진 것으로서 참으로 가장 순결하고 가장 광명한 거동이었다.

이와 같은 세 가지는 이번 조선독립운동의 특별한 색채이다. 조선의 독립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이러한 정신은 계속 지속될 것이고, 세계의 혁명이 이루어지지 않은 한 이러한 정신은 계속 지속될 것이다. 이러한 정신은 지금 볼 때에는 어리석은 듯하지만 세계의 흐름을 따라 반드시 최후의 승리를 거둘 것이다. 우리는 마땅히 소리 높여 외쳐야 한다. "조선독립운동의 정신, 만세!"

중국을 돌아보면 참으로 개탄스럽다. 일반인들이 아무런 자각이 없음을 제쳐놓고라도 정작 자각이 있다고 하는 일부 사람들마저도 심기가 박약하기 그지없다. 말로는 아나키주의를 담론하지만 손에는 비싼 금반지를 끼고 있다. 펜으로는 의지가 인격과 독립을 연마한다는 그럴싸한 문장들을 쓰고 있지만 몸은 오히려 늘 권세를 가까이한다. 일반 학생들은 더더욱 목숨을 걸고 관료를 배우고 정객(政客)을 배우고 있다. 현재의 학생들이 이러할진대 장래의 사회는 가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 관료들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학생들을 원망하며, 혼미하여 가련한 노후를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말과 속마음이 다른 새 세대들을 원망한다.

④ 잡지 '신조(新潮)'에 발표한 천조우주(陳兆疇)의 "조선독립운동에 대한 감언(朝鮮獨立運動感言)"

베이징대 잡지 '신조(新潮)' 창립 멤버 중 한 명인 천조우주(陳兆疇)는 후이팅이라는 필명으로 '신조' 제1권 제4호에 푸스녠의 글에 바로 이어 "조선독립운동에 대한 감언(朝鮮獨立運動感言)"이라는 논설을 발표했다. 문영걸 소장 제공

베이징대 잡지 '신조(新潮)' 창립 멤버 중 한 명인 천조우주(陳兆疇)는 후이팅이라는 필명으로 '신조' 제1권 제4호에 푸스녠의 글에 바로 이어 "조선독립운동에 대한 감언(朝鮮獨立運動感言)"이라는 논설을 발표했다. 문영걸 소장 제공

조선의 금번의 독립운동은 격랑에 격랑을 더하듯 하고 용맹하기로 전에 비할 바 없다. 어제의 중국 신문에는 "조선인들이 독립운동으로 4,500여 명 체포되었으나 독립운동은 시종 식어지지 않고 있다"는 소식이 보도되었다. 나는 이러한 독립정신을 가진 민족은 결코 타인의 콧바람 밑에서 오랜 기간 구차하게 연명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조선이 일본의 속박에서 벗어나 우뚝 설 것을 우리는 두 눈을 닦고 그 결과를 지켜보면 될 것이다.

우리는 이웃 나라 사람으로서 조선의 독립운동에 대해 어떠한 지원 혹은 간섭을 해서는 안 되겠지만, 조선인들이 만약 시종 포기하지 않고 힘써 자유를 쟁취한다면 이제 광명한 천하에 또 하나의 자유국가가 생길 것이다. 이 또한 우리가 밤낮으로 기도하고 축원하는 바이다.

유럽의 열강들은 지금 한창 국제연맹의 일들을 상의하고 있다. 나는 그들이 참으로 광명한 세계를 바라고 다시는 전쟁의 재난이 없기를 바란다고 생각한다. 조선 독립의 이 사건은 가볍게 넘어갈 일이 아니고, 그냥 시작했다가 그렇게 사그라지기를 바라보기만 해서도 안 된다. 20세기에 이르러 세계적으로 그 어디에 두려움에 사로잡혀 용기를 잃은 민족이 있는가? 과거에 타인의 권력 밑에 겁에 질려 무릎 꿇었던 민족들이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분분히 일어나서 해방을 요구할 것이다. 조선은 오늘날 이러한 굴기에 하나의 선도자가 된 것이다. 그렇다고 볼 때, 유럽과 미국 등 여러 자유국가들이 만약 이번 평화협의회의 기회를 빌어 조선독립이라는 이 문제 및 조선독립과 관련된 민족들의 해방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는다면, 이는 가히 단언컨대 세계의 영원한 평화의 기초는 견고하게 구축되지 못할 것이다.

⑤ 잡지 '국민(國民)'에 발표한 쉬더헝(許德珩)의 "존경스럽고 탄복할 만한 조선인(可敬可佩的朝鮮人)"

1919년 4월 1일 '국민잡지' 제1권 제4호에 실린 '존경스럽고 탄복할 만한 조선인(可敬可佩的朝鮮人)'. '5·4선언'을 초안부터 작성하여 발표까지 담당할 정도로 영향력 있는 학생 리더였던 베이징대 쉬더헝이 '추성(楚僧)'이라는 필명으로 쓴 글의 내용이 국내에 전해지는 것은 처음이다. 문영걸 소장 제공

1919년 4월 1일 '국민잡지' 제1권 제4호에 실린 '존경스럽고 탄복할 만한 조선인(可敬可佩的朝鮮人)'. '5·4선언'을 초안부터 작성하여 발표까지 담당할 정도로 영향력 있는 학생 리더였던 베이징대 쉬더헝이 '추성(楚僧)'이라는 필명으로 쓴 글의 내용이 국내에 전해지는 것은 처음이다. 문영걸 소장 제공

민족자결의 외침이 우리 아시아에까지 전해져 온 이후, 저 2,000만의 자유를 모조리 빼앗기고 고통 속에서 죽기를 기다리던 조선인들은 하늘과 땅에 넘치는 기쁨으로 독립운동을 하였다. 파리평화회의에 편지를 보내고 각 나라에 전보를 보내어 자신들이 일본에 탄병(呑倂·남의 재물이나 영토를 자기 것으로 만듦)된 이후 참으로 이 천하에 있을 수 없는 각종 가혹한 학대와 잔혹한 대우를 받았다고 탄원하였다. 지난 십여 년 동안 조선인들은 죽음으로 서로 흩어졌고 인생의 즐거움이 전혀 없었다. 현재 그들은 깃발을 세워들고 자신의 일들을 강행해야 하지만 그 강도 우두머리와 같은 자들이 말하는 공리와 정의는 전부 코 막고 입 비뚤어진 말로, 그 누구에게도 공평한 판단을 주지 않을 것이다.

조선인들은 좌고우면하고 도저히 어찌할 바를 모르면서도 오로지 피 흘리고 살 뜯기며 목숨을 걸고 자유와 독립을 쟁취하고자 한다. 지난 3월 1일부터 시작하여 서울, 평양, 진남포, 안주, 중화, 강서, 선성, 성천 및 기타 각지에서 많게는 수천 명, 적게는 수백 명의 남녀 학생들이 시가행진을 하고 독립가를 부르고 찬송시를 읊으며 함께 모여 강연을 하고 "독립하지 못하면 차라리 죽으리라", "마지막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멈추지 말고 피를 흘리자" 등 구호를 높이 불렀다.

여러분 보시라. 그리고 말씀해 보시라. 이 얼마나 문명한 거동이고, 얼마나 위대한 정신인가. 우리가 이들 조선인들에 대해 얼마나 탄복해야 마땅할까. 또 얼마나 부끄러움을 느껴야 마땅할까. 저 살기등등한 일본경찰은 손에 총과 칼을 들고 눈을 감고 양심을 버리고 무차별하게 죽이고 때리고 있다. 왜 알지 못할까. 살육을 하면 할수록, 때리면 때릴수록 조선인들은 앞사람이 쓰러지면 뒤에서 또 일어나고 더욱 분발하여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조선인들은 참으로 피를 흘리고 참으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조선인에 대해 온몸을 땅바닥에 던질 정도로 경의를 표한다.

여기까지 말하다 보니 나는 일본인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의 그 총은 무엇으로 만들어진 것인가? 당신의 마음은 또한 무엇으로 만들어진 것인가? 저 2천 만의 기개가 있는 이들을 당신이 모조리 죽일 수 있는가? 가령 전부 죽일 수 있다 하더라도 전 세계 모든 이들의 눈을 속일 수 있는가? 당신의 양심마저 던져버린 수단과 야만적 행위는 참으로 세계에서 가장 하등의 민족이고 인류의 공적이다. 당신은 지금 의기양양하지 마라. 당신과 같은 이러한 야만적이고 비인도적인 자는 20, 30년이 지난 후 아마 조선에 비교할 수도 없이 뒤떨어져 있을 것이다.

듣자 하니 현재 조선은 이미 공화국가를 세웠다고 하고, 이당휘(성재 이동휘를 잘못 적은 것으로 추정된다)박사를 총통으로 선출했다고 한다. 그들 내각은 모두 학식이 깊고 의력이 있는 이들이다. 이는 참으로 우리 동아시아의 가장 통쾌한 일이고, 가장 영광스러운 일이다. 또 듣건대 일본은 이미 우리나라에 공문을 보내 조선인들을 체포하라고 했고, 우리 정부는 거기에 아부하여 두세 사람의 조선 지사들을 체포했다고 한다. '토끼가 죽으면 여우도 비참해진다.' 나는 권하노니, 우리는 기뻐하지 말라, 아부하지 말라. 이 몇 해 동안의 소행을 보면 우리가 조선에 비할 수 있는가?





이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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