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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가면 다시는 못 볼 거다” 어머니의 서늘한 그 말... 현실이 됐다

입력
2024.03.15 11:00
수정
2024.03.15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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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의 ‘삶도’ 시즌3 : 애도] <1>소설가 정진영

편집자주

‘자살 사별자(Suicide Bereaved)’. 심리적으로 가까운 이를 자살로 잃은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자살 사별의 아픔이 비단 가족에게 국한되는 일이 아님을 내포한 말이기도 합니다. 자살은 원인을 단정할 수 없는 죽음이라 남은 이들을 더욱 힘들게 합니다. 고인을 쉬이 떠나 보내지 못하고 ‘왜’라는 질문에 맴돕니다. 죄책감이나 원망이 들어차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들이 ‘애도’에 이르는 길은 멀고도 험난한 여정입니다. 한국일보는 올해 자살 사별자들의 그 마음을 들어보려고 합니다. ‘자살 사별자들이 마음으로 쓰는 부고, 애도’입니다.

어머니 가신 뒤 발견한 일기장 여섯 권
“그 안엔 낯선 어린 여자가 있었다”
소설로 되살린 어머니 “13년 만에 탈상”

기자 출신 소설가인 정진영 작가를 지난달 7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만났다. 그의 어머니는 2007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발견한 일기장에서 출발해 자신이 몰랐던 생전 어머니의 삶을 취재했고, 소설 ‘나보다 어렸던 엄마에게’를 썼다. 그는 출간 3년 만에 소설의 집필 배경을 처음 밝혔다. 최주연 기자

기자 출신 소설가인 정진영 작가를 지난달 7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만났다. 그의 어머니는 2007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발견한 일기장에서 출발해 자신이 몰랐던 생전 어머니의 삶을 취재했고, 소설 ‘나보다 어렸던 엄마에게’를 썼다. 그는 출간 3년 만에 소설의 집필 배경을 처음 밝혔다. 최주연 기자

피 냄새. 그에게 어머니의 마지막은 ‘비릿한 피 냄새’였다. 3월 초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 위에 어머니가 있었다.

그의 품에 안긴 어머니는, 더 이상 어머니가 아니었다. 어머니의 그 무엇도 온전치 않았다.

“어머니는 숨을 쉬지 않았고, 깨진 머리에서 뇌수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나는 희미한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아파트 뒤편의 눈 쌓인 콘크리트 바닥에 흩어지는 어머니의 뇌수를 두 손으로 쓸어 모으며 절규했다.”

그의 소설 ‘나보다 어렸던 엄마에게’(무블) 속 서술은 사실이었다. 소설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범우’는 바로 작가 정진영(43), 자신이었으니까.

정 작가의 어머니는 2007년 3월 13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어머니 나이 불과 마흔여덟이었다. 어머니를 수습하던 그날 정 작가의 정신이 온전했을 리 없다. 그런데도 그때의 모든 것이 아직도 또렷하다. “당시의 공기, 냄새, 촉감 같은 것들이 생생해요. 특히 냄새, 피비린내가 너무나.”

“지금 가면 다시는 못 볼 거다.” 어머니가 남긴 마지막 말은 오래도록 죄책감이 됐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11년이나 어머니를 회피하고 원망하며 산 이유다. 그래야 자신을 지킬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그의 시계를 거꾸로 돌린 건 어머니가 남긴 일기장 여섯 권이다. 읽어볼 엄두조차 나지 않아 마음속 벽장에 넣어뒀던 어머니의 흔적이었다. 6년 전 펼친 일기장에는 그가 몰랐던 어머니가 있었다. 그것이 실마리였다. 기자 출신인 정 작가는 마치 취재하듯 어머니의 생전 흔적을 찾아 기록했다. 배움이 고파 10㎞ 거리의 등하굣길을 6년간 개근한 학생, 꿈이 화가였지만 가난한 형편 탓에 최종 학력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졸업’으로 만족해야 했던 소녀, 돈이 없어 아기를 인큐베이터에 넣지 못해 하늘로 떠나보내야 했던 어린 엄마를 만났다.

그가 2021년 발표한 소설 ‘나보다 어렸던 엄마에게’는 그런 실화의 기반 위에 상상력을 덧대 쓴 소설이었다. 출간 당시에는 이런 집필 배경을 어디서도 밝히지 않았던 정 작가는 지난해 11월 낸 산문집 ‘소설은 실패를 먹고 자란다’(파이퍼 프레스)에서 처음 공개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자살로 사별한 이들은 애도에 쉬이 이르지 못한다. 죄책감, 황망함, 원망… 그 모든 감정이 한데 휘몰아치며 괴롭힌다. 정 작가도 그랬다. 치유의 계기는 소설이었다. 소설을 쓰며 자신이 몰랐던 어머니를 만났다. 어렸던 어머니가 감당하기 벅찼을 현실에 숨이 막혔고, 그런데도 늘 혼자라고 느꼈던 어머니가 애달프고 안쓰러웠다. 몸이 아플 정도로 울었다.

그는 말했다. “이 소설을 쓰고 나니 ‘이제야 장례가 끝났구나’ 싶었다”고. “그간 나는 계속 상중(喪中)이었다는 걸 깨달았다”고. “비로소 탈상을 했다”고.

정 작가를 ‘자살 사별자들이 마음으로 쓰는 부고-애도’ 시리즈 첫 회에서 만났다. 신문기자 출신인 정 작가는 2011년 ‘도화촌 기행’으로 ‘조선일보 판타지문학상’을 받아 문단에 데뷔했다. 소설 ‘침묵주의보’(2018)가 드라마 ‘허쉬’로 만들어져 대중에 널리 알려졌다. 이외에도 장편소설 ‘젠가’ ‘다시, 밸런타인데이’, 소설집 ‘괴로운 밤, 우린 춤을 추네’를 썼다.

◇‘끝’에서 시작한 소설

그는 제목을 처음부터 정해두고 소설을 썼다. 그가 ‘나보다 어렸던 엄마에게’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은 이 소설의 클라이맥스에 나온다. 최주연 기자

그는 제목을 처음부터 정해두고 소설을 썼다. 그가 ‘나보다 어렸던 엄마에게’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은 이 소설의 클라이맥스에 나온다. 최주연 기자

-생전 어머니는 어떤 분이었나요.

“소설 속 묘사와 흡사해요. 살가운 분은 아니었죠. 사실 어릴 때 어머니한테 맞은 기억밖에 떠오르질 않아요. 정신을 잃은 적도 있었죠. 진짜... 너무 많이 맞았어요. 나중에야 알게 됐죠. 어머니도 너무나 어렸다는 걸. 저를 낳았을 때가 스물두 살. 완전 아이잖아요. 주위에서 뭘 가르쳐주거나 도와주는 사람도 없었고요. 기댈 수 있는 존재가 전혀 없었죠.”

-소설 ‘나보다 어렸던 엄마에게’를 보면, 주인공이 묘사하는 어머니의 마지막 순간이 적나라하게 기술돼 있어요. 실제 기억인 거지요.

“지금도 생생해요. 당시의 공기, 냄새, 모든 촉감까지. 특히 그 냄새가 너무나 생생해요. 피 냄새가요. 아버지가 다급하게 전화를 하기에 집으로 돌아가 보니 아파트 바닥에 누군가 쓰러져 있는 거예요. 설마 했는데 어머니였죠. 멀쩡하겠어요. 엉망이었죠, 엉망…. 정신이 없었어요. 평생 가도 못 잊어요. 아버지도 그 현장은 보지 못했고요. 오직 (가족 중에) 저만 봤죠.”

서울에서 사법시험을 준비하던 정 작가가 오랜만에 집에 다니러 간 터였다. 식사를 하다가 술에 취한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서운했던 과거 일을 얘기하면서 다툼이 벌어졌다. 아버지가 자리를 뜨자, 어머니는 정 작가에게 하소연을 하며 신세를 한탄했다. 그는 서둘러 짐을 챙겨 서울로 올라갈 채비를 했다. 현관을 나서는 그를 붙잡고 어머니는 말했다. “지금 가면 다시는 못 볼 거다.” 진짜 어머니의 마지막 말이 될 줄은 몰랐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여러 대목에서 화자한테 감정이 이입돼서 북받쳤어요. 그중에서도 어머니를 수습하는 주인공을 묘사한 장면이 굉장히 고통스러웠죠.

“가장 힘들게 쓴 소설이죠. 하나하나 복기하는 과정이 너무나 고통스러웠어요. (소설처럼) 돌아가셨을 때 주위에 사인을 제대로 말하지 못했어요. 쉬쉬해야 할 것 같았으니까요. 장례식 때도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고) 거짓말을 했죠. 그런 상황 때문에 미칠 것 같더라고요. 게다가 아버지는 거의 정신이 나가 있으니 저는 슬퍼할 겨를도 없었죠. 장례식, 유품 정리, 사망 신고... 모두 제가 해야 했어요. 동생은 아예 나타나지도 않았고요.”

그러느라 정작 마음은 수습할 겨를이 없는 잔인한 시간이다.

-어머니가 남긴 마지막 말 때문에 더 괴로움이 컸을 것 같아요.

“제 평생 가장 후회하는 순간이죠. ‘그때 내가 가지 말았어야 되는데’라는 생각으로 정말 많이 힘들었어요. 너무 고통스러우니까, 제가 저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였어요. 어머니를 계속 미워하는 것. 어떻게든 어머니를 미워할 구실을 찾았어요. 그렇게 오랜 세월이 지나갔죠.”

◇어머니의 일기장엔 어머니가 없었다

어머니가 남긴 일기장은 모두 여섯 권. 1978년부터 일기는 시작됐다. 정 작가가 그중 가장 오래된 일기장을 읽어보고 있다. 최주연 기자

어머니가 남긴 일기장은 모두 여섯 권. 1978년부터 일기는 시작됐다. 정 작가가 그중 가장 오래된 일기장을 읽어보고 있다. 최주연 기자

자살 사별자들을 괴롭히는 감정 중 하나는 죄책감이다. 소설 속 화자인 범우도 AI(인공지능) 기술로 어머니를 환생시키고 싶은 이유를 “어머니를 AI로라도 다시 만나 자살을 한 이유가 무엇인지 묻고 싶었다. 아니 그 이유가 내가 아님을 확인받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말한다. 정 작가 자신의 마음이 투영된 설명일 것이다.

-어머니가 남긴 일기장은 언제 발견한 건가요.

“유품을 정리하다가요. 어머니의 물건들을 보는데 가슴이 답답하더라고요. 화장품이라고는 변변한 게 없고 다 빈 통이었어요. 구두나 옷도 새것인 채 낡아 버린 것들이 있었고요. 아까워서 신지도, 입지도 못하고 그냥 둔 거죠. 안방에 있던 서랍장을 열었더니 무슨 노트들이 나오더라고요. 보니까 날짜가 써 있고 글이 있어요. 일기더라고요. 당시엔 읽을 겨를이 어디 있겠어요. 그런데 유품들을 태울 때 그것까지는 차마 못 태우겠더라고요.”

비닐 커버가 씌워진 고전적인 다이어리부터 양지상사(현재는 양지사) 시절 공책, 스프링 달린 연습장, 보험회사 증정품 다이어리까지. 빛바랜 일기장은 모두 여섯 권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계속 간직하고 있었어요. 이사를 다니면서도 어머니의 일기장들은 항상 갖고 다녔죠. 그렇게 제 곁에 두면서도 펼칠 엄두는 나지 않더라고요. 그런 상태로 2018년 5월까지 11년이 지나가 버렸죠.”

-읽어보게 된 계기가 있나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시간도 좀 지났고 나도 나이가 들었는데 이젠 읽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그래서 어느 날 일기장들을 꺼냈어요. 그러곤 앉은 자리에서 여섯 권을 전부 읽었죠.”

-어떠셨어요.

“깜짝 놀랐어요. 내가 아는 어머니가 맞나 싶어서. 그러니까… 정말 낯선 여자가 일기장에 있었죠.”

일기는 1978년부터 2005년까지 이어졌다. 스무 살부터 돌아가시기 몇 년 전까지다. 나이 스물의 어머니는 본명 대신 ‘혜진’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지칭해 일기를 썼다.

-일기는 아버지를 만나 함께 살기 시작한 때부터 시작되나요.

“아버지를 만나기 전부터 쓰셨어요. 처음엔 ‘혜진이가 누구야’ 싶었는데 알고 보니 어머니가 만든 이름이었어요. ‘옥순’이라는 자신의 이름이 마음에 안 드니까 스스로를 그렇게 부른 거죠. 남들도 자기를 그렇게 불러주길 바랐고요. 일기를 보면서 깨달았어요. 나는 내 어머니가 ‘어머니가 아니었던 시절’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거요. 어머니를 어머니로만 봤지, 단 한 번도 어머니이기 전에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상상해 본 적이 없었던 거예요.”

일기 속 ‘혜진’은 남산에 놀러 갔다가 사이다 한 병을 들이밀며 들이대는 동갑내기 남자에게 “정을 주고 함부로 몸을 맡기고” 괴로워한다. 대책 없이 동거를 하면서 외로움에 눈물짓기도 하고, 자신이 좋아하던 고향의 오빠를 그리기도 한다. 외로움과 더불어 혜진을 괴롭힌 건 돈이었다. 혜진은 일기장에 털어놓는다. “아기를 가지니 시원한 과일이 먹고 싶다. 살구와 복숭아가 먹고 싶다. 소고기 불고기도 먹고 싶다. 배가 고픈데 집 안에 먹을 것이 없다. 하지만 돈이 없다. 먹고 싶은 게 많은데 돈이 없어서 너무 슬프다.”

채 여덟 달 반을 못 채우고 첫아이가 태어났지만, 병원비가 있을 리 없다. 인큐베이터에 두지 못하고 아기를 집으로 데려와야 했다. 퇴원한 날 저녁, 아기는 하늘나라로 떠났다. 수개월을 아기 생각에 혜진은 눈물지었다. 그 뒤부터 어머니는 한동안 일기 대신 가계부를 일기장에 적어 내려갔다.

◇13년 만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얘기하다

정 작가의 어머니 김옥순씨의 일기장. 어머니의 일기를 읽고 나서야 정 작가는 어머니를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최주연 기자

정 작가의 어머니 김옥순씨의 일기장. 어머니의 일기를 읽고 나서야 정 작가는 어머니를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최주연 기자

-일기를 보며 여러 감정이 들었을 것 같아요.

“너무 안쓰러웠죠. 왜 우리 아버지를 만나가지고 그 고생을 했나 싶은 생각도 들고.”

-그때의 엄마를 만난다면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어머니 마음대로 사세요. 그때 공장에 다녔다고 들었는데, 그렇게 돈 벌면서 나중에 공부도 다시 해 검정고시도 보고 대학도 가면 좋겠어요. 그렇게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사세요. 굳이 결혼하지 않아도 돼요. (자식으로) 나 안 만나도 되니까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사세요.”

-어머니의 일기를 다 읽은 뒤엔 어린 시절의 어머니를 더 알고 싶어 어머니의 형제들도 만나고 어린 시절 어머니가 살던 집, 다니던 학교에도 가보셨어요. 그런 생각이 왜 들었나요.

“어머니가 개근상을 받았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당시엔 농사짓고 집안일을 도우면서 학교에 다니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개근상을 받은 경우는 정말 드물었다고 하거든요. 게다가 학교까지 거리도 수십 리(약 10㎞)였다는 거예요. 게다가 어머니는 조금이라도 시간을 단축하려고 산길로 다녔죠. 실제 가보니 어른이 가기도 힘든 길이에요. 얼마나 배우고 싶었으면 그랬을까 싶더라고요. 그런데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게 됐을 때 얼마나 좌절했을지. 그 길을 걸어보니 더 (어머니의 심정을) 알겠더라고요.”

소설에서 읽는 이에게 큰 위안을 주는 대목이 있다. 마치 ‘괜찮아’라고 토닥거리는 듯한 느낌을 줘서다. 주인공이 아버지와 처음으로 어머니의 죽음을 얘기하는 장면이다. 두 사람은 10년 넘게 각자가 만든 죄책감의 감옥 속에서 살았다. 그걸 서로에게 털어놓는다.

-어머니의 일기장을 읽어보기 전까지 아버지와 어머니의 죽음을 얘기한 적이 없던 거죠.

“서로에게 금기였죠. 어머니가 돌아가신 그날 이후 그 일에 대해선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어요. 그러다 소설을 내기 전 아버지와 얘기를 나눴어요. 처음엔 ‘이 소설로 어머니를 되살리고 싶다. 아버지는 물론 마뜩잖을 수 있다. 그렇지만 난 쓸 거다’라고 말씀드렸죠. 말리지는 않으시더라고요.”

그렇게 대화의 물꼬를 텄다. 그래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아버지가 어머니의 마지막을 목격했다는 것. 아버지는 말했다. “그때 네 엄마 태도가 이상하다는 걸 조금이라도 빨리 눈치챘다면, 내가 (붙잡으러 가다) 거실에서 넘어지지 않았다면, 조금만 더 빨리 뛰었다면 어땠을까.”

-아버지가 기억하는 어머니의 마지막 말은 뭐였나요.

“제가 집 밖으로 나간 다음이죠. 어머니가 갑자기 안방 문을 열더니 씩 웃더래요. 그러면서 ‘나 이제 갈 건데 인사 안 해?’라고 하셨대요. 아버지는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싶으셨죠. 그 뒤 어머니의 모습을 보곤 놀래서 달려갔지만 결국 잡지 못했어요. 제게 처음 얘기하셨죠.”

-그간 서로가 짊어지고 있었던 고통의 무게를 처음 알게 됐을 것 같아요.

“그렇죠. 서로 정말 힘들었구나, 얘기도 못 하고 그렇게 그냥 삭이고 있었구나 싶었어요. 소설을 계기로 그런 대화를 나누게 된 거죠.”

-아버지와 어렵지만 대화를 나눈 뒤 어떠셨나요.

“그냥 좋았어요. 서로 어머니라는 대화의 주제를 꺼내기가 좀 뭐했는데 그날을 계기로 좀 바뀌었으니까요. 얘기하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처음 소설을 쓸 땐 어머니만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아버지도 있구나 싶었어요. 어머니와 가장 오랜 세월을 보낸 사람은 아버지니까요. 그래서 아버지가 기억하는 어머니의 얘기를 더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소설에도 넣었죠.”

같은 고통을 겪은 사람만이 나눌 수 있는 위로였다. 그 밤을 소설 속 화자는 이렇게 표현한다. “둘 사이에 밤이 느린 걸음으로 지나간다.”

-아버지와 가까운 사이도 아니었고 또 말을 꺼내기 어려운 주제이니 처음엔 좀 어색했을 것 같아요.

“어려웠죠. 그래서 술 한잔하면서 얘기를 나눴어요. 아버지도 어머니가 일기를 쓴 건 모르셨더라고요. 소설을 다 쓴 뒤엔 아버지가 그걸 읽으시는 게 좀 두렵기도 했죠.”

-소설을 읽으신 아버지의 반응이 어땠나요.

“저한테 연락을 주셨어요. ‘뭘 그렇게 슬프게 썼냐’라고 하시더라고요.”

◇소설을 쓰며 진정으로 애도하다

정 작가는 이모와 외삼촌에게 어머니의 어린 시절 얘기를 듣고, 실제 살던 집과 다니던 초등학교(당시엔 국민학교)를 가보기도 했다. 소녀가 매일 오갔던 집과 학교까지의 거리는 무려 10㎞. 좀 더 빨리 가려고 어머니는 성인 남성이 오르기도 힘든 산길로 학교를 다녔다. 최주연 기자

정 작가는 이모와 외삼촌에게 어머니의 어린 시절 얘기를 듣고, 실제 살던 집과 다니던 초등학교(당시엔 국민학교)를 가보기도 했다. 소녀가 매일 오갔던 집과 학교까지의 거리는 무려 10㎞. 좀 더 빨리 가려고 어머니는 성인 남성이 오르기도 힘든 산길로 학교를 다녔다. 최주연 기자

-소설은 언제 쓰기 시작해서 언제 탈고했나요.

“준비는 2018년쯤 시작했어요. ‘나보다 어렸던 엄마에게’라는 제목부터 정해뒀죠. 그런 뒤 취재를 시작했고요. (신문사를) 퇴사한 2020년 봄에 쓰기 시작해 초고를 완성했고, 이듬해 책이 나왔죠.”

-한번에 써내려 갔나 봐요.

“한 달 동안 한번에 다 썼어요. 쏟아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아요. 쓰고 나서 몸이 정말 많이 아팠어요. 온몸이 쑤셨죠. 매일 감정에 젖어 있으니 마음도 그랬고요.”

그의 아내는 배우 박준면씨다. 그의 작품을 가장 먼저 읽는 ‘제1독자’이자 가장 솔직하게 평을 하는 비평가이기도 하다.

-이 소설을 읽은 박준면씨의 반응은 어땠나요.

“준면씨는 제 글의 제1독자죠. 배우를 하면서 30년간 대본을 본 사람이라 (평가의) 기준도 엄격해요. ‘나보다 어렸던 엄마에게’는 강원 원주시에 있는 토지문학관에서 썼어요. 작가들이 거주하면서 집필을 할 수 있도록 레지던스를 제공해주거든요. 초고를 완성한 뒤 아내에게 이메일로 보내줬죠. 그걸 본 준면씨가 전화를 해선 계속 울기만 하더라고요. 지금까지 소설을 읽고 이렇게 울어본 건 처음이라면서. 너무 울어서 온몸이 다 아플 지경이라고요.”

자살 사별자에겐 곁에 ‘슬픔의 목격자’가 있는 게 중요하다. 자살 사별로 인한 자신의 슬픔을 들어주고 그 슬픔에 동참해 주는 존재를 뜻한다. 자살 사별자들의 ‘애도 상담’을 해오고 있는 고선규 한국심리학회 자살예방분과 위원장은 “그 사람의 죽음을 함께 기억해주고 나의 슬픔을 위로해 줄 누군가가 자살 사별자에게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슬픔의 목격자가 있었나요.

“(당시엔) 없었죠. 아마 대부분 그럴 거예요. 대놓고 얘기하기 어려우니까. 저도 그랬고요. 그러다가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어머니 얘기를 했어요. 기자일 때 취재를 하다가 만난 사람인데 첫날부터 얘기가 참 잘 통했죠.”

-타인에게는 거의 처음으로 어머니 얘기를 하신 거겠네요.

“그렇죠. 이상하게 털어놓고 싶더라고요. 준면씨도 그 얘기를 들으면서 부담스러워하지 않고 굉장히 잘 토닥여줬죠. 누군가가 순수한 마음으로 나를 신경 써준다고 느낀 게 너무 오랜만이었죠. 들어주는 사람이 한 명만 있어도 마음이 이렇게 좋아지는구나 싶더라고요.”

어머니 사후 7년 만에 만난 ‘슬픔의 목격자’였다.

-어머니의 얘기를 소설로 쓰고 나니 달라진 게 있던가요.

“저는 그런 기분이었어요. ‘장례식이 끝났구나.’ 그때 깨달았어요. 초고를 완성하기 전까지 (13년간) 상중이었다는 걸. 소설을 완성하고 나니 진정으로 탈상을 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막상 어머니가 돌아가신 직후에는 슬퍼할 수도, 슬퍼할 겨를도 없었다고 했잖아요. 언제 진정으로 애도를 하게 됐나요.

“저는 소설을 쓰면서 그랬어요. 쓸 때 너무 많이 울었죠. 몸도, 마음도 정말 힘들었어요. 그런데 쓰면서 많은 게 정리되고 이해되더라고요. 완성한 뒤에 속이 되게 시원했어요.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끝냈다는 느낌이 딱 들더라고요.”

-지연됐지만, 어머니와 제대로 이별을 하셨나요.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다만 그전처럼 어머니를 미워하진 않아요. 계속 애틋하고 그리울 뿐이죠.”

-인생에서 어머니의 죽음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음, 간단히 말하면 ‘서로 있을 때 잘하자’예요. 제가 아무리 뒤늦게 어머니에 대해 취재를 하고 소설로 써봤자 실제 어머니와 말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곁에 있을 때 얘기하지 않으면 가족끼리도 잘 몰라요. 저는 오히려 소설을 쓰면서 어머니에 대해 더 많은 걸 알게 됐어요. 생전에 알았다면 어머니와 얼마나 얘기할 거리가 많았겠어요. 이 소설을 읽은 독자들이 그런 의견을 많이 보내오더라고요. 어머니, 아버지에게 오랜만에 연락을 했다고.”

◇엄마, 잘했어요… 참 잘했어요

어머니가 열여덟 살 무렵에 찍은 사진. 정 작가가 어린 어머니를 보며 말을 건네고 있다. “(부모와 자식으로) 나를 만나지 않아도 좋으니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사세요.” 최주연 기자

어머니가 열여덟 살 무렵에 찍은 사진. 정 작가가 어린 어머니를 보며 말을 건네고 있다. “(부모와 자식으로) 나를 만나지 않아도 좋으니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사세요.” 최주연 기자

-한동안 어머니가 피 칠갑을 한 모습으로 꿈에 나타나 괴로웠다고 하셨어요. 지금은 어떤가요.

“얼마 전부터는 자각몽을 꿔요. 꿈속에서 이게 꿈이라는 걸 깨닫는 거죠. 어머니가 나올 때만 그래요. 제가 꿈이라는 걸 알아채고 어머니를 붙잡으면 어머니가 사라져요. 그러다가 작년 말엔 이런 꿈을 꿨어요. 어릴 적 살던 반지하방이었죠. 어린 동생도, 젊은 어머니도 있었어요. 둘 다 이미 죽은 사람이란 걸 알아챈 순간 제가 안방으로 도망갔어요. 어머니가 또 사라질까 봐. 몰래 빨래를 너는 어머니를 지켜봤어요. 그러니 평소보다 좀 더 오래 어머니를 볼 수 있었던 거죠. 그런데 제가 눈물이 난 거예요. 소리 내서 우니까 어머니가 또 사라져 버렸죠. 그런 꿈을 꾸고 나면 너무나 힘들어요, 정말 너무나.”

정 작가가 꼽은 이 소설의 절정은 주인공이 어머니가 다닌 초등학교에 찾아갔다가 어머니가 받은 미술대회 우승컵을 발견하는 대목이다.

“나는 주위에 누가 오는지 살피며 떨리는 손으로 벽장의 유리문을 열고 우승컵을 꺼냈다. 벽장 바닥에 두껍게 깔려 있던 먼지가 일어나 재채기를 유발했다. 더운 여름날에 열린 큰 미술대회에 출전한 어린 어머니가 품에 안고 기뻐했을 우승컵이 반세기 만에 내 손으로 들어왔다. 나는 어린 어머니가 정말 자랑스러웠다. 큰 상을 받고도 집에서 부모님의 눈치를 보며 기쁨을 드러내지 못했을 어린 어머니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려왔다. 나는 우승컵을 품에 안고 쓰다듬으며 벽장 앞에 주저앉아 흐느꼈다. 엄마......, 참 잘했어요....... 정말 잘했어요.......”

(소설 ‘나보다 어렸던 엄마에게’ 225쪽)

가상의 장면이다. 정 작가는 어머니가 미술대회에서 상을 받은 적이 있다는 얘기를 듣긴 했지만, 학교에서 실제 우승컵을 찾진 못했다.

그러나 이것은 진실이다. 나보다 어렸던 엄마, 살아계실 땐 ‘엄마’라고 부르지 못했던 엄마에게 건네는 ‘참 잘했어요’라는 애통한 칭찬 말이다. 그건, 화해의 인사이기도 할 테다.


‘애도’ 오디오 콘텐츠 페이지 화면. 디자인=이정화

‘애도’ 오디오 콘텐츠 페이지 화면. 디자인=이정화

오디오 듣기 : ‘자살 사별자들이 마음으로 쓰는 부고-애도’ 시리즈는 오디오 콘텐츠로도 제작됐습니다. 정진영 작가가 기억하는 어머니, 소설을 집필하게 된 이유, 이후의 마음을 정 작가의 음성으로 들으실 수 있습니다. 링크가 열리지 않는다면, 주소창에 다음 주소(https://grief.hankookilbo.com/)를 복사해 붙여주세요.

김지은 버티컬콘텐츠팀장
최주연 기자
박고은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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