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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관 0순위’까지 퇴직… 에이스 법관 줄사표에 고심하는 사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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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관 0순위’까지 퇴직… 에이스 법관 줄사표에 고심하는 사법부

입력
2024.02.13 04:30
수정
2024.02.13 09:05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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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 확보에 고심하는 사법부 ①]
고법 판사·지법 부장판사 이탈 가속화
신임 법관 실력·근무태도 불만은 커져
추락한 법관 명예·경제적 처우가 발목

김명수 전 대법원장(왼쪽)이 2021년 10월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신임 법관 임명식에서 신임 법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 사진

지난달 말 홍승면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법원을 떠났다. 법복을 벗는 중견법관이 연간 수십 명에 달하긴 하지만, 그의 퇴직은 법원 안에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안겨줬다.

홍 전 부장판사는 '수석'과 '모범' 타이틀을 놓치지 않은 엘리트 법관이었다. 1983학년도 학력고사 전체수석(당시 역대 최고점), 서울대 법대 수석, 사법연수원(18기) 수석 수료를 거쳐 법관이 된 뒤, 법원 요직을 두루 거치며 두각을 나타내 늘 '대법관 0순위'로 꼽혔다. 실력과 인성을 모두 갖춰 변호사 단체의 설문에서도 매번 모범 법관으로 뽑힌 인물이다.

그랬던 그의 퇴임은 '핵심 인력 이탈' 문제로 고민하는 사법부의 현실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홍승면이 나가는 것까진 어쩔 수 없다고 해도, 그의 뒤를 이을 인재를 찾기가 갈수록 어렵다. 법원의 '머리'와 '허리' 역할을 했던 우수 중견 법관들은 하나둘 법복을 벗고 있지만, '일과 삶 균형'(워라밸)이 가장 중요해진 시대에 유망한 젊은 인재를 법원에 모셔 오기는 만만치 않다. 우수 법관 수급 문제는 재판의 질과 사법부 신뢰 문제로 직결될 수 있는 만큼, 대법원이 '재판 지연' 문제 못지않게 시급한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원의 '허리' 중견법관 60명 이상 퇴직

항소심 재판을 전담하는 고법 판사 14명이 올해 사표를 썼다. 1심을 맡는 지법 부장판사도 최소 46명 사직했다. 고법 판사와 지법 부장판사는 경력 15년 이상의 법관으로 법원의 핵심 인력이고, 이들의 면면을 보면 '에이스 인재'로 분류되는 판사들이 즐비하다.

핵심 인력 이탈 속도는 해를 거듭할수록 빨라지고 있다. 한국일보가 확보한 '법관 퇴직 현황' 자료를 보면 고법 판사와 지법 부장판사 사직자는 2010년대 각각 한 자릿수와 30명대였다가 2020년대 10명대와 40명대 이상으로 뛰어올랐다.

나간 법관들은 주로 경력 법조인(검사·변호사) 중에서 충원(법조일원화)된다. 2013년부터 시행 중인데, 본보가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전체 법관의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1,195명이 법조일원화를 통해 들어왔다.

문제는 신임 법관들의 실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 수도권의 한 지법 부장판사는 "신임 법관들이 배석 판사(합의부에서 재판장과 함께 일하는 후배 법관)로 투입되자마자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대형로펌 변호사들은 하나를 가르쳐주면 열을 아는데, 신임 법관들은 특히 지방권일수록 그 수준이 기대에 못 미친다는 푸념이 몇 년 전부터 법원 안에서 나오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근무 태도에 대한 볼멘소리도 있다. 신임 법관이 △재판장에게 업무 강도에 대해 푸념을 한다거나 △재판장의 판결 수정 요구를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판결문을 비워둔 채로 재판장에게 '납품'하는 경우 등이 회자되고 있다. 수도권의 한 판사는 "과거에도 재판장을 힘들게 하는 배석 판사는 있었으나 그 사례가 늘어나고 있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결국 유출 인력의 빈 자리를 유입 인력이 채우는 '선순환'이 구현되고 있지 않다는 얘기다.

"차라리 나 혼자 일하겠다"

그래픽=강준구 기자.

인력 수급 문제는 재판에 악영향을 미친다. 허리급 판사들이 빠져나가면 인적 자본이 통째로 사라지지만, 신임 판사를 전문성 갖춘 법관으로 육성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이미 재판의 질이 하락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최근 들어 사건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는데, 신임 법관들의 고령화는 정확한 판단과 업무 처리 속도에 장애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걱정이 많다.

지법 부장판사가 합의부를 기피하는 현상도 벌어진다. 배석 판사들의 실력이 떨어지거나 근무 태도가 좋지 않다 보니, 일 안 하려는 후배와 함께 일하는 스트레스를 받아가면서 재판장을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법관들의 재판부 배치를 결정하는 기구인 법원 내 사무분담위원회에 관여한 적이 있는 한 지법 부장판사는 "지방으로 갈수록 합의부보다 단독 재판부를 선호하는 법관들이 갈수록 많아진다"며 "합의부에 어려운 사건이 몰리는데, 실력 있는 법관들이 재판장을 안 하면 재판에도 악영향이 올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인력 유출은 사법부의 독립을 훼손할 여지도 있다. "대형 로펌을 가니까 모두 법원에서 알고 지내던 사람"(고법 판사 출신 변호사)라는 말이 나올 만큼 전관들이 로펌을 채우는 중이다.

갈수록 떨어지는 '판사 직업 매력도'

지난해 10월 9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영장실질심사를 담당한 유창훈 서울중앙지방법원 영장전담 부장판사 규탄 문구가 적힌 근조화환이 놓여 있다. 뉴스1

전·현직 법관들은 인력 수급이 어려운 이유로 '이미 법관의 매력이 떨어졌다'는 점을 지적한다. 물론 판사의 사회적 영향력은 여전히 강력하지만, 법조계 내에서는 법관의 지위가 과거만 못하다는 것이다.

일단 법관의 명예가 추락했다. 과거엔 연수원 최상위권만 법원에 오다보니 법조계에서 법관의 권위는 높았다. 그러나 법조일원화 제도가 도입된 뒤 이런 경향은 퇴색했고, 사법행정권 남용 등 의혹으로 사법부 신뢰는 급락했다. 정치적 사건이 법원에 몰리며 법원에 대한 불신은 커졌다.

그에 반해 경제적 처우는 나아진 게 없다. 법관은 공무원 3급 이상에 해당해, 공무원 중에선 급여가 적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대형 로펌 변호사의 경우 연차를 가리지 않고 법관보다 급여가 최소 2배 이상은 높다고 한다. 유학 등 법관의 복지는 퇴행하고 있고, 정년까지 수도권과 지방을 오가면서 근무를 해야 하는 '지방 순환 근무'도 발목을 잡는다. 특히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에 접어드는 고법 판사나 지법 부장판사는 자녀 교육 문제 때문에 법원을 떠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한 고법 판사는 "요즘 로스쿨 졸업생들은 사내변호사와 대형 로펌이 1순위라고 한다"며 씁쓸해했다.


※우수 법관 수급을 위해 필요한 해법을 다루는 기사로 이어집니다.


박준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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