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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름·매듭이 말해준다...쌍계사 건칠아미타불좌상, 조선 아닌 고려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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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주름·매듭이 말해준다...쌍계사 건칠아미타불좌상, 조선 아닌 고려 것"

입력
2024.02.14 04:3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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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기 후반 고려 건칠불상으로는 유일

경남 하동 쌍계사 대웅전 내부 전경. 수미단 중앙의 석가불좌상을 중심으로 삼세불좌상과 사보살입상이 배치돼 있다. 건칠아미타상은 왼쪽에서 두 번째에 배치돼 있다. 한국미술사연구소 제공

경남 하동 쌍계사 대웅전 내부 전경. 수미단 중앙의 석가불좌상을 중심으로 삼세불좌상과 사보살입상이 배치돼 있다. 건칠아미타상은 왼쪽에서 두 번째에 배치돼 있다. 한국미술사연구소 제공

조선 초기 불상으로 알려졌던 경남 하동 쌍계사의 건칠아미타불상이 1350년 전후에 제작된 고려시대 건칠불상이라는 학술조사 보고서가 발표됐다. 국내에 고려 건칠불상이라고 확실하게 평가받는 것은 3점 정도로 희소하다. 쌍계사 건칠불상이 고려 때의 것으로 공인된다면 국내 조각·불교미술사에 큰 획을 긋는 발견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불교미술사 권위자인 문명대(84) 동국대 명예교수는 한국일보와 만나 "쌍계사 건칠아미타불상은 고려 말인 14세기 후반기의 전형적 도상 형식을 보여주고 있어 이 시기의 것이 확실시된다"고 밝혔다. 문 교수는 지난해 쌍계사의 불교조각 58구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사찰이 총괄한 종합학술조사를 수행했는데, 이 같은 내용을 최근 발행된 '하동 쌍계사 종합학술조사(불교조각) 감로왕도 기록화 보고서'에 실었다.

현존 유일 '14세기 후반 건칠불상'의 발견

쌍계사 건칠아미타불좌상. 조성 연대를 알 수 없어 대웅전에 함께 봉안된 불상과 달리 2003년 보물 지정에서 제외됐으나, 이번 학술조사로 고려시대의 것임이 확실시되고 있다. 한국미술사연구소 제공

쌍계사 건칠아미타불좌상. 조성 연대를 알 수 없어 대웅전에 함께 봉안된 불상과 달리 2003년 보물 지정에서 제외됐으나, 이번 학술조사로 고려시대의 것임이 확실시되고 있다. 한국미술사연구소 제공

건칠불(乾漆佛)은 삼베 위에 반복적으로 옻칠을 두껍게 해서 만드는 불상이다. 지금까지 전해지는 건칠불상은 20여 점 정도로, 그 가운데 고려 건칠불상이라고 확인된 것은 전남 나주 심향사 건칠아미타불상, 국립중앙박물관 건칠보살상, 경북 봉화 청량사 건칠보살상뿐이다. 특히 14세기 후반기에 조성된 불상은 경남 합천 해인사 금동관음·지장보살상 외에는 거의 파악되고 있지 않을 정도로 희소하다. 추정 연도가 학계의 동의를 얻게 되면 쌍계사 건칠불상은 '현존 유일 14세기 후반 건칠불상'이 되는 셈이다.

쌍계사 대웅전에 봉안된 석가상, 약사상 2존과 보살입상 4구는 "조각승 청헌이 1639년에 각성스님의 지도 아래 조성했다"는 조성 기록이 복장(사리, 불경 등을 넣는 불상 속 공간)에서 발견돼 2003년 8월 보물 제1378호로 지정됐다. 건칠아미타불상은 양식이 다르고 조성 시기가 밝혀지지 않아 보물 지정에서 제외됐다.

오메가형 주름, 대의 깃 주름... '옷차림'에 숨겨진 비밀

쌍계사 건칠아미타불상(왼쪽 사진)과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흑석사 목조아미타불상(1458년)의 비교. 쌍계사 불상의 왼쪽 옷자락에 오메가(Ω)형 주름이 뚜렷하고, 대의의 깃은 비스듬히 접혀있다. 이 부분은 조선시대로 넘어가면 'S 자 변형 주름'으로 바뀐다. 군의의 나비 띠 매듭도 14세기 불상의 특징이다.

쌍계사 건칠아미타불상(왼쪽 사진)과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흑석사 목조아미타불상(1458년)의 비교. 쌍계사 불상의 왼쪽 옷자락에 오메가(Ω)형 주름이 뚜렷하고, 대의의 깃은 비스듬히 접혀있다. 이 부분은 조선시대로 넘어가면 'S 자 변형 주름'으로 바뀐다. 군의의 나비 띠 매듭도 14세기 불상의 특징이다.

쌍계사 건칠아미타불상의 옷차림은 고려 불상의 특징을 가장 온전히 보여준다. 14세기 불상을 판별하는 중요한 3요소는 △군의(보살이 입은 치마)의 띠 매듭 △왼팔 부분의 오메가(Ω)형 주름 △금구치레(승려들이 어깨에 걸치는 법의를 고정하기 위한 장식)다. 쌍계사의 불상은 금구치레를 제외한 두 요소를 모두 충족한다. 문 교수는 "좌우로 타원형 매듭이 있는 나비매듭은 일부 불상에만 표현된 희귀한 예인데, 쌍계사 아미타상과 1351년 제작한 해인사 장 금동관음·지장보살상 에 표현되고 있다"며 "다만 해인사 불상처럼 금구치레는 빠지는 경우도 있는 듯하다"고 분석했다.

왼쪽 어깨에서 내려오는 대의 깃이 어깨 쪽에서 가슴까지 비스듬히 접힌 형상은 고려 후기에 유행한 단아양식 불상의 전형적인 표식이다. 경북 영주 흑석사 아미타불상(1458년)처럼 조선 초기 불상으로 넘어가면 이 대의의 주름은 지그재그 모양으로 접힌 'S 자 변형 주름'으로 바뀐다. 고려 말과 조선 초의 가장 뚜렷한 차이점인데, 쌍계사 건칠아미타불상 대의의 옷깃은 전자의 형상을 명확히 보여준다.

고려시대 쌍계사의 높은 위상 밝히는 증거

경남 하동 쌍계사 대웅전 전경. 한국미술사연구소 제공

경남 하동 쌍계사 대웅전 전경. 한국미술사연구소 제공

건칠아미타불상이 고려 불상으로 공인되면 공백으로 남아있는 쌍계사의 고려시대 역사를 알려주는 희귀한 자료가 된다. 쌍계사는 남종선(당나라 혜능에 의해 성립된 불교 선종의 일파)의 시조인 혜능선사의 두골사리를 모신 선종 사찰로 신라시대에 번창했으나 고려 때의 역사를 밝힐 수 있는 자료는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

쌍계사 건칠아미타불상은 앉은 높이가 163㎝나 되는데, 이는 한국 건칠 불상 중 최대 크기다. 이처럼 장대한 불상을 조성해 봉안한 것은 당시 쌍계사의 위상이 대단했음을 보여준다는 게 문 교수의 설명이다.

문 교수는 "쌍계사 건칠아미타불상은 희귀한 고려 후기 불상 연구에 크게 기여하고 공백으로 남아 있는 쌍계사의 역사를 밝히는 귀한 자료로, 이 같은 내용을 올해 안에 학술지에 발표할 예정"이라며 "(국보, 보물 등) 국가지정문화유산으로 지정해 길이 보존해야 할 문화재적 가치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8일 서울 종로구 한국미술사연구소에서 만난 문명대 동국대 명예교수. 정다빈 기자

8일 서울 종로구 한국미술사연구소에서 만난 문명대 동국대 명예교수. 정다빈 기자





이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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