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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에 협박까지 당하는 '피해자 국선변호사'… "사명감 없으면 못할 일"

입력
2024.02.08 15:0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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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피해자: ⑫피해자 전담 국선변호사]
늘 격무에 시달리지만 보수는 12년 동결
예민한 피해자 상대하는 '감정노동' 고충


편집자주

형사피고인뿐 아니라 범죄피해자도 국선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다는 걸 아시나요? 특정 범죄 피해자 중 미성년자와 심신미약 장애인에게는 의무적으로 국선변호사가 지원되기도 합니다. 좋은 뜻에서 시작된 제도지만, 정작 이 국선변호사들에 대한 처우가 좋지 않아 제도의 취지가 퇴색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피해자 전담 국선변호사들이 어떤 대접을 받고 있기에, 그런 얘기까지 나오는 것일까요? 그들의 고충을 들어봤습니다.

공군 성폭력 피해자 고(故) 이예람 중사 1주기를 하루 앞둔 2022년 5월 20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추모의 날에서 추모객이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이 중사의 국선변호사로 지정된 공군본부 법무실 소속 군 법무관이 이 중사가 사망할 때까지 단 한 차례도 면담하지 않은 사실 등이 드러나면서 이 중사의 유족은 같은 해 6월 해당 법무관을 직무유기 등 혐의로 고소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공군 성폭력 피해자 고(故) 이예람 중사 1주기를 하루 앞둔 2022년 5월 20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추모의 날에서 추모객이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이 중사의 국선변호사로 지정된 공군본부 법무실 소속 군 법무관이 이 중사가 사망할 때까지 단 한 차례도 면담하지 않은 사실 등이 드러나면서 이 중사의 유족은 같은 해 6월 해당 법무관을 직무유기 등 혐의로 고소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제도 시행 13년차, 정부가 범죄피해자를 위한 국선변호사 선임 대상을 대폭 확대한다. 피고인 방어권 못지 않게 피해자의 조력권 역시 두텁게 보장한다는 취지다. 시민사회에서는 환영의 뜻을 보내고 있지만, 내실 있는 지원을 위해선 국선변호사에 대한 처우 개선과 인식 전환이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범죄피해자 돕는 국선변호사

7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법무부는 지난해 12월 28일 피해자 국선변호사 지원 범위에 살인·강도·조직폭력 등 주요 강력범죄를 포함하는 내용의 특정강력범죄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기존엔 성폭력, 아동∙장애인 학대, 인신매매, 스토킹 등 피해자가 대상이었다. 바뀐 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강력범죄 피해자 중 특히 19세 미만과 심신미약 장애인은 의무 선임 대상이 된다.

피해자의 법률적 지원자 역할을 하는 국선변호사 제도는 2012년 도입됐다. 사건 발생 초기부터 수사, 재판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피해자에게 법률 조력을 제공한다. 현재 총 41명의 전담 국선변호사가 전국 143개 대한법률구조공단 사무소 중 36곳에 배치돼 있다. 개인 수임사건과 병행하는 비전담(일반) 국선변호사 약 600명도 전국 지방검찰청 및 지청에 등록돼있다.

낮은 보수체계로 '비인기' 취급

피고인 국선변호인 제도와 유사해보이지만, 법조계에선 "선호도는 더 떨어진다"는 반응이다. 업무 강도 대비 적은 보상이 주된 이유다. 피해자 전담의 경우, 한 달에 최소 16개 사건을 배정받지만 월급은 '세후 500만 원 이내'로 12년째 동결이다. 심급별 선임이 원칙인 피고인 국선과 달리, 피해자는 수사부터 3심까지 한 변호사가 맡기 때문에 한 건당 투입되는 시간도 긴 편이다.

피해자 국선변호사와 피고인 국선변호인제도 비교. 그래픽=신동준 기자

피해자 국선변호사와 피고인 국선변호인제도 비교. 그래픽=신동준 기자

수도권에서 3년째 피해자 전담 국선으로 활동하고 있는 변호사 A씨는 "월 평균 300~400건을 진행하는데 보수는 초임 변호사와 비슷하거나 낮은 수준"이라면서 "재계약에 따른 인상도 없기 때문에 사명감이 없으면 계속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공익 사건을 주로 맡는 다른 변호사는 "피해자 국선의 1인당 사건 수가 피고인 국선의 3배가 넘는다는 통계도 있다"고 언급했다.

수행업무별로 급여가 책정되는 일반 국선변호사들 사이에선 "지급 신청에 품이 더 든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서울의 8년차 일반 국선변호사 B씨는 "피고인 국선은 한 사건이 끝날 때마다 일정 금액을 받지만, 피해자 국선은 일일이 소명자료를 내야 해서 가끔 포기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2021년 기본보수제(대면 상담, 의견서 제출, 피해자 조사 참여를 의무적으로 이행하면 기본보수를 주는 방안)가 시행되긴 했지만,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한다.

보복범죄의 표적이 되기도

가해자 반대편에 서는 국선변호사는 보복범죄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극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피해자와 내밀하게 소통하다 보면 심리적으로 소진되기도 십상이다. A씨는 "가해자로부터 '감옥에서 나가면 가만 안 둔다'는 편지를 받고 출소 시기에 맞춰 국선변호사 활동을 그만둔 동료도 있다"면서 "정서적 스트레스를 해소할 만한 지원은 거의 없다시피한 수준"이라고 토로했다.

국선 변호사의 업무환경 개선이 피해자를 위한 양질의 법률 서비스 제공으로 이어질 것이란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B씨는 "수사기관에서조차 여전히 '피해자에게 변호사가 왜 필요하냐'는 시선을 보내는 게 현실"이라면서 "일부 불성실 변호사의 사례가 문제 되긴 했지만, 실체적 진실 규명엔 피해자의 적극적 진술이 필수라는 점에서 국선변호사에 대한 인식 제고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다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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