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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낳고 살았지만 키스 못 해봤다니"...안재홍·이솜 '불륜 추적극' 이렇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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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낳고 살았지만 키스 못 해봤다니"...안재홍·이솜 '불륜 추적극' 이렇게 나왔다

입력
2024.02.06 07:00
수정
2024.02.06 07:38
21면
0 0

황혼, 성소수자 '금기' 깬 드라마 'LTNS'... 다양한 사랑으로 사회풍자
'영끌족'이자 '딩크족'... "이게 우리 현실"
20대 제3금융권 대출 경험 등 녹여 청년 위기 그려
코로나 팬데믹 영화의 위기, 두 감독의 합작

드라마 'LTNS'에서 황혼을 앞둔 영애(왼쪽, 양말복)와 백호(정진영)는 산에서 사랑을 키운다. 티빙 제공

드라마 'LTNS'에서 황혼을 앞둔 영애(왼쪽, 양말복)와 백호(정진영)는 산에서 사랑을 키운다. 티빙 제공

#1. 영애(양말복)는 스스로를 남편과 두 아들에게 '밥통' 같은 존재라고 했다. "남편과 아들 둘 키우기 위해 남자가 득실득실하는 식당에서 평생 밥만 했다"는 게 그의 한탄. 눈만 뜨면 가슴이 답답해 등산을 시작했다. 산에서 새로운 사랑도 찾는다. "60년을 기다렸습니다. 남자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그가) 가르쳐줬고요."

#2. 수지(황현빈)는 시댁에서 '갑질'을 당한다. 의사를 남편으로 욕심 낸 '죄'다. 결혼생활에서 자신을 부정당한 수지는 여자친구인 초원(김승비) 앞에 불쑥 나타난다. 초원은 수지가 숨겨왔던 그의 '참사랑'. "이게 나쁜 거라면 나쁘게 살지 뭐."

황혼에 접어든 중년 여성부터 성소수자까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티빙의 화제작 'LTNS(Long Time No Sex)'는 이렇게 사회적 약자들의 성을 들춘다. 팍팍한 현실에 치여 성관계도 뚝 끊은 사무엘(안재홍)·우진(이솜)부부가 아파트 대출금을 갚기 위해 불륜 커플을 추적하는 과정을 통해서다.

드라마 'LTNS'에서 수지(두 번째 줄 오른쪽 두 번째, 황현빈)가 남편과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 그 뒤엔 그의 여자친구인 초원(김승비)이 앉아 있다. 티빙 제공

드라마 'LTNS'에서 수지(두 번째 줄 오른쪽 두 번째, 황현빈)가 남편과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 그 뒤엔 그의 여자친구인 초원(김승비)이 앉아 있다. 티빙 제공


'29금'인데 가슴 저릿한 이유

다양한 사랑의 양상을 불륜으로 보여주는 탓에 선정적 수위는 '마라맛'이다. 자극적이지만 볼수록 가슴이 이상하게 저릿한 게 이 드라마의 반전. 순댓국집에서 국밥을 팔다 건너편에서 입을 맞추는 젊은 커플을 보던 영애는 "난 키스 한 번도 안 해 봤어"라고 말한다. 남편과 뽀뽀도 안 하고 아들 둘을 어떻게 낳았을까. 영애의 주름진 입에선 "건너뛰니까 해 본 적이 있나"란 말이 툭 튀어나온다.

"10년 전에 지인을 통해 들은 얘기예요. 키스를 못 해보고 아이를 낳았다고 해서 너무 충격적이었거든요. 너무 마음이 아파 그 얘길 듣고 '그 어머니가 바람이라도 피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저희 어머니도 드라마 보고 '우리 세대엔 그런 사람 많았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슬펐다면서요." 전고운(39) 감독의 말이다.

전 감독이 구상한 파격적 사랑의 든든한 지원군은 드라마에서 황혼의 금기를 깬 배우 정진영과 양말복이다. 주위에서 다들 수위를 낮추라고 할 때 정진영은 "과감하게 하라"며 제작진을 독려했다. 전 감독과 'LTNS'를 만든 임대형(38) 감독을 5일 서울 삼청동 소재 카페에서 함께 만났다. 임 감독은 "현대인의 초상을 결혼, 불륜 혹은 또 다른 관계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성생활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드라마의 기획 의도를 들려줬다.

드라마 'LTNS'에서 사무엘(안재홍)·우진(이솜)부부가 싸움을 한 뒤 비를 맞고 있다. 부부 생활이 침수된 것에 대한 드라마적 연출이다. 티빙 제공

드라마 'LTNS'에서 사무엘(안재홍)·우진(이솜)부부가 싸움을 한 뒤 비를 맞고 있다. 부부 생활이 침수된 것에 대한 드라마적 연출이다. 티빙 제공


24% 이자율로 낚이는 청년... 김치 하나 놓고 밥 먹는 '영끌족'

아찔한 '29금' 대사와 성생활엔 사회의 그늘이 겹겹이 드리워져 있다. 사내 불륜이 이뤄지는 곳은 저축은행. 드라마 속 불륜 커플은 청년 고객을 24%의 이자율로 낚는다. "사회 풍자를 하고 싶어" 두 감독이 넣은 설정이다. 이 에피소드는 임 감독의 경험에서 나왔다. 그는 "20대 때 영화 만들며 힘들 때라 제3금융권에 대출을 받으러 갔다"고 옛일을 들려줬다. 극을 이끄는 사무엘·우진 부부는 은행 대출까지 박박 끌어모아 낡은 아파트를 샀지만 높은 금리에 허덕이며 김치 하나를 두고 밥을 먹는 '영끌족'이자 2세 계획을 세우지 않는 '딩크족'이다. 임 감독은 "대본을 쓸 때 아파트값이 계속 떨어졌고 전세 사기가 속출했으며 금리는 치솟고 있었다"며 "부부 얘기하면 늘 아이 얘기를 먼저 하는데 아이가 없는 부부 얘기가 오히려 지금 시대상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연출 의도를 설명했다.

드라마 'LTNS'를 함께 만든 전고운(오른쪽)·임대형 감독. 티빙 제공

드라마 'LTNS'를 함께 만든 전고운(오른쪽)·임대형 감독. 티빙 제공


"영화 위기가 시장을 보수적으로" OTT로 떠난 이유

전 감독은 월세도 오르고 담뱃값도 오르자 집을 포기하고 행복을 찾아 나선 청년의 모습을 담은 영화 '소공녀'(2018)를 도발적으로 연출했고, 임 감독은 중년 여성의 삶과 동성애를 잔잔하게 다룬 영화 '윤희에게'(2019)로 주목받았다.

언뜻 결이 달라 보이는 두 감독은 코로나19 팬데믹 후 영화 시장이 확 쪼그라들자 위기의식에서 함께 뭉쳐 이 드라마를 만들었다. 전 감독은 "재정적 제작 부담이 커지면서 영화 시장이 보수적으로 변하더라"며 "OTT 시장이 개방적 이야기를 더 선호해 함께 드라마를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그 창작 실험의 화두로 지금 왜 성생활일까. 단도직입으로 물었더니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지금이 욕망을 억누르며 사는 시대라고 생각했어요. 그 욕망이 억눌리면 곪기 마련이잖아요. 적어도 우리 말이라도 편하게 해보자, 그런 마음이었어요. 드라마 공개 후 '수위가 세다'는 반응을 보고 좀 놀랐어요. 우리 사회가 생각보다 보수적이구나란 생각도 하게 되고요."(전 감독)

"성관계를 장려하는 드라마는 당연히 아니지만, 왜 우리는 그렇게 이 얘기를 부담스러워할까란 생각을 했어요. 금기시하는 데서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는 거잖아요. 먹고사는 얘기처럼 좀 허심탄회하게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마련돼야 하는 것 아닌가 싶어요."(임 감독)



양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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