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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기'는커녕 '추락'하는 중국 축구… 부동산과의 '잘못된 만남'

입력
2024.02.05 04:30
수정
2024.02.05 09:0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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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부동산 거품과 함께 붕괴한 '축구 굴기'

편집자주

5,000년간 한반도와 교류와 갈등을 거듭해 온 중국. 우리와 비슷한가 싶다가도 여전히 다른 중국. 좋든 싫든 앞으로도 함께 살아가야 할 중국. '칸칸(看看)'은 '본다'라는 뜻의 중국어입니다. 베이징 특파원이 쓰는 '칸칸 차이나'가 중국의 면면을 3주에 한 번씩 보여드립니다.


시진핑(가운데) 중국 국가주석이 부주석 재임 시기인 2012년 2월 아일랜드 더블린의 한 축구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구두를 신은 채 킥 시범을 보이고 있다. 그는 부주석 시절 "나의 꿈은 중국의 월드컵 진출·개최·우승"이라고 공공연히 밝히는 등 '축구 굴기' 프로젝트를 예고해 왔다. 더블린=AP 연합뉴스

'3전 2무1패', '270분간 0골'. 중국 남자 축구 대표팀이 '2023 카타르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대회에서 받아 든 성적표다. 해외 A급 감독·선수를 대거 중국으로 불러들여 자국 프로축구 리그를 육성한 뒤, 곧 세계 정상에 오르겠다던 큰소리가 무색해지는 처참한 결과였다.

중국은 "나의 꿈은 월드컵 우승"이라던 시진핑 국가주석의 전폭적 지원에 따라 2011년부터 '축구 굴기(崛起·우뚝 섬)' 프로젝트를 추진해 왔다. 당시 중국의 경제적 성장세와 '시진핑'이라는 새 지도자의 굳은 의지가 맞물려 있던 만큼, 중국 축구 발전을 의심하는 시선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10여 년이 흐른 지금, 중국 축구는 굴기는커녕 '퇴보'를 거듭하고 있다.

준우승→8강→무승... '축구 굴기'는 추락의 시작

지난달 22일 카타르 도하 칼리파 인터내셔널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조별리그 A조 카타르와 중국의 경기에서 0 대 1로 패한 중국 선수들(오른쪽)이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다. 중국은 이번 대회에서 3전 2무 1패라는 초라한 성적을 거뒀다. 도하=연합뉴스

20년간의 아시안컵 성적이 이를 명확히 보여 준다. '축구 굴기'라는 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던 2004년 대회에서 중국은 '준우승'이라는 꽤 괜찮은 성적을 냈다. 시 주석의 축구 굴기가 본격화하며 중국 프로축구 슈퍼리그(CSL)의 인기가 치솟았던 2015년에는 8강 진출에 머물렀다. 4년 뒤에도 똑같이 8강 문턱에서 멈춰 서더니, 이번 대회에선 48년 만의 '무승'이라는 굴욕을 안고 16강 진출마저 실패하고 말았다.

중국 남자 축구 대표팀의 주요 국제대회 및 최근 A매치 성적. 그래픽=신동준 기자


아시아 무대에서도 맥을 추지 못하는 실력이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에서 통할 리도 만무했다. 중국은 개최국인 한국·일본이 본선에 자동 진출했던 2002년을 제외하면, 단 한 차례도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다. 이제 △월드컵 본선 진출 △2030년 월드컵 개최 △2050년 월드컵 우승이라는 3단계 굴기가 실현될 것으로 여기는 중국인은 더 이상 많지 않다. 세계 축구계에서도 유례가 없는 국가 차원의 지지를 업고도 오히려 후퇴를 거듭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리톄 전 중국 축구 국가대표 감독의 모습. 그는 뇌물을 주고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매수했다는 등 각종 비리 혐의로 중국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 신화 뉴시스


당사자인 중국 정부는 '부패'에서 원인을 찾고 있는 듯하다. 중국 프로축구계는 최근 2년간 승부 조작, 뇌물 수수 등 축구계 비리를 근절하기 위한 사정 바람에 쑥대밭이 됐다. 2022년 11월 리톄 전 우한 줘얼 감독의 비리 혐의 포착으로 시작된 당국의 수사는 축구계 전반으로 확대됐다. 중국 체육계 거물인 천쉬위안 전 축구협회 주석까지 체포되면서 사정 바람은 정점을 찍었다.

천 전 주석은 결국 지난달 1심 공판에서 "8,100만 위안(약 150억 원) 상당의 뇌물을 받았다"고 자백했다. 위훙천 전 주석과 천융량 전 상무부비서장 등 협회 주요 간부들의 각종 비위 혐의도 재판에서 낱낱이 확인됐다. 슈퍼리그 감독 시절 경쟁팀에 금품을 주고 승부를 조작한 리 전 감독에 대한 수사도 사실상 마무리된 것으로 보인다.

헝다 위기와 함께 막 내린 광저우FC의 영광

지난달 28일 중국 베이징 차오양구의 한 축구장에서 어린이들이 유소년 축구 교실 수업을 받고 있다. 중국에선 축구가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 중 하나로 꼽히지만, 정작 국가대표팀은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다. 베이징=조영빈 특파원

축구계에 만연했던 부정부패를 걷어냈으니, 이제야말로 중국 축구는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된 것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압도적이다. 부동산 경제에 지나치게 의존적인 구조적 문제에 대한 고민 없이 중국 축구가 개선될 여지는 많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CSL은 축구 굴기 프로젝트의 몸통 같은 존재였다. 자국 프로축구를 세계적 리그로 끌어올린 뒤, 여기서 갈고닦은 실력으로 월드컵 무대에 나선다는 게 중국의 구상이었다.

실제 축구 굴기 프로젝트가 한창이었던 2010년대 중반 슈퍼리그는 화려했다. '슈퍼리그 육성'을 주문하는 시 주석 의중에 따라 각 구단은 세계적인 위상을 갖고 있는 감독·선수 영입에 집중했다. 2016년 상하이 선화가 이적료만 1,000만 달러(당시 환율 기준 약 118억 원)를 들여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출신 카를로스 테베스를 영입했고, 톈진 취안젠은 파리 생제르맹 공격수이자 우루과이 대표팀 선수인 에딘손 카바니를 데려오기 위해 5,000만 유로(약 616억 원)를 썼다. 장쑤 수닝은 브라질의 알렉스 테세이라 영입에 5,400만 달러(약 430억 원)를 쏟아부었다. 2015·2016년 리그에서 쓰인 이적료가 영국 프리미어리그 한 해 이적료를 훌쩍 뛰어넘었다는 분석도 나왔다.


한때 중국 최대 부동산 기업 중 하나로 꼽혔던 헝다가 광둥성 광저우시에 짓고 있는 축구장 건설 현장. 헝다는 120억 위안(약 2조2,000억 원)을 들여 관중 1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세계 최대 축구장을 짓겠다며 4월 착공했지만, 극심한 재정난으로 완공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광저우=로이터 연합뉴스

각 팀이 해외 선수 영입 경쟁에 혈안이 되다 보니, A급 선수를 영입할 수 있는 '재정 능력'의 확보 여부가 곧 해당 팀의 성적으로 이어졌다.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선 막강한 자금력이 필요했고, 자연스럽게 대형 부동산 개발 기업들이 슈퍼리그의 각 팀 구단주로 군림하기 시작했다. 부동산 개발 붐을 타고 성장한 이들 기업들엔 천문학적 규모의 구단 운영비를 감당하고도 남을 만큼의 재정이 충분했다.

헝다(에버그란데)가 대표적이다. 중국 부동산 기업 1, 2위를 다퉜던 대형 부동산 개발 업체 헝다는 2010년 광저우FC를 인수했다. 광저우 헝다로 이름을 바꾼 이 팀은 거금을 쏟아 세계적 선수들을 속속 영입했다. 이듬해인 2011년 슈퍼리그에서 첫 우승을 거머쥔 광저우는 7년 연속 리그를 제패했다. 나아가 AFC 챔피언스리그에서도 2013년과 2015년 두 차례 우승, 아시아 최고의 명문팀으로 거듭났다. 이 무렵 헝다는 1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초대형 축구전용 경기장과 축구전문학교 건설에도 수조 원을 쏟아부었다.

시각물_부동산 기업 소유 중국 프로축구팀

그러나 광저우의 영광은 10년 만에 막을 내렸다. 코로나19 사태와 함께 찾아온 중국의 부동산 유동성 위기 때문이었다. 재정 구조 악화에 시달리던 헝다는 2021년 채무불이행(디폴트)을 선언했다. 한때 280개 도시에서 1,300건의 개발 부동산 개발을 진행했던 헝다의 몰락으로 광저우 또한 극심한 재정난에 부닥칠 수밖에 없었다. 파울리뉴, 엘케손, 페르난지뉴 등 브라질에서 영입한 외국인 선수들도 하나둘 팀을 떠났다. 아시아 챔피언이었던 이 팀은 헝다가 디폴트를 선언한 지 꼭 1년 만인 2022년 2부 리그로 강등되는 굴욕을 맛봤다.

중국에서 부동산은 국내총생산(GDP)의 20% 이상을 차지한다. 지방 정부 세수의 약 30~40%가 정부 소유 부지 임대료에서 충당돼 중국인 개인 재산의 80%가 부동산이다. 막강한 내수 시장 덕에 부동산 개발사들은 채무를 안고도 개발 프로젝트를 멈추지 않았고, 중국의 제로코로나 정책으로 내수가 위축된 틈에 빚으로 쌓은 호황의 거품이 극적으로 터진 것이다. 440조 원이라는 채무 구조조정에 실패한 헝다는 결국 지난달 홍콩 고등법원으로부터 '청산' 명령을 받았다.

"부동산 업체들, 지방관리들과 관계 맺으려 축구에 투자"

시진핑(앞줄 왼쪽 두 번째) 중국 국가주석과 앙겔라 메르켈(세 번째) 당시 독일 총리가 2017년 7월 베를린에서 중국과 독일 간 12세 이하 유소년 축구 경기를 함께 관람하던 중 손뼉을 치며 즐거워하고 있다. 베를린=EPA 연합뉴스

광저우 헝다의 몰락은 시작에 불과했다. 한때 차범근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던 선전FC는 지난달 구단 자체가 해체됐다. 구단주인 대형 부동산 업체 카이사그룹이 유동성 위기를 맞고 디폴트에 빠지며 더 이상 정상적인 구단 운영이 어렵게 된 탓이다. 선전FC는 이미 지난해부터 알란 카르덱 등 외국인 선수들에게 임금을 지급하지 못할 정도의 자금난에 시달렸다.

1995년 창단해 30년 가까이 리그를 지켜온 충칭 량장도 2022년 5월 해체됐다. 모기업 당다이그룹이 2021년 달러채 상환에 실패, 디폴트에 빠지면서 구단 운영을 포기한 것이다. 이 밖에 부동산 업체 싱푸그룹이 구단주인 허베이FC도 지난해 자금난에 허덕이며 선수 임금은커녕 수도세와 전기세를 내는 데 애를 먹고 있다. 싱푸그룹도 2021년 디폴트를 선언했다.

2021년 기준 슈퍼리그 16개 팀 중 부동산 개발업체가 소유한 팀은 11개에 달한다. 2, 3부 리그까지 합치면 2020년 이후 39개 구단이 해체됐다.

전문가들은 "기이할 정도로 부동산 시장 의존도가 높은 축구계 구조가 자연스러운 성장의 방해 요인이 됐다"고 지적한다. 중국 스포츠연구소의 이븐 청 연구원은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과거 부동산 개발 업체가 지방 축구팀에 투자한 건 현지에서 부동산 개발 인허가를 담당하는 관리들과 관계를 맺기 위해서였다"며 "부동산 시장 침체와 함께, 중국에 대해 과거와 같이 투자하는 건 힘들어졌다"고 짚었다. 애당초 축구를 위한 투자가 아니라 부동산에 대한 투자였다는 얘기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지속적인 수익 구조 미비와 장기적인 축구 발전을 오히려 억누른 시진핑의 하향식 리더십이 중국 축구가 뒷걸음질 치고 있는 근본적 원인"이라고 짚었다.

베이징= 조영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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