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0대 중심 젊은 인구 1,000명 늘고
다른 지역 배 가까운 '관광객 증가율'
일반음식점 제과점 등 상점 10% 증가
곳곳에서 '소멸 위기' 탈출 신호 포착
시장 내 점포는 식당으로 빠르게 재편
부동산가격 상승... 다양성 실종 '과제'
“여기요, 여기! 이쪽 빨리 치워주시고, 어… 손님은 저쪽으로, 저쪽요!”
지난달 27일 오후 충남 예산시장. 골목마다 젊은이가 가득했고, 점포마다 주인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장터광장 테이블 120개는 다 찼고, 시장광장 관리인들이 경광봉을 흔들며 빈자리를 척척 안내했다. 건어물점 주인 김지준(78)씨는 “우리도 처음엔 이 분위기가 얼마나 갈까 했는데, 1년이 넘도록 꾸준하다”며 “새 식당 몇 개 들어선 것뿐인 낡은 시장이 연일 사람들로 붐비니 매일매일 놀란다”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예산군에 따르면 지난해 1월 5일부터 작년 말까지 예산시장을 찾은 이들은 모두 310만9,020명. 요리연구가 백종원씨가 운영하는 외식업체 더본코리아가 점포 5개를 리모델링해 선보인 지 1년 만에 군 전체 인구보다 40배 많은 사람이 찾은 셈이다. 천홍래 예산군 혁신팀장은 “1년 전 신장 개장 전까지는 도로와 면한 점포만 근근이 유지되고 안쪽은 썰렁했다”며 “1년 사이 이곳은 완전히 다른 곳이 됐다”고 말했다. 백씨가 직접 리모델링한 상점과 그의 컨설팅을 받는 업소는 모두 32개로 늘었다.
전통시장 활기에 젊은 인구 ‘쑥’
시장 안 골목은 어깨를 펴고 걷기 힘들 정도로 붐볐다. 신장 개장 전까지만 해도 드문 인적과 즐비한 폐점포들로 을씨년스럽던 그곳이 맞나 싶었다. 경기 수원에서 딸과 함께 수덕사-예당호를 거쳐 들렀다는 김희자(70)씨는 “너무 잘해놨다. 예산군은 소멸 위기 지역에서 빼도 될 것 같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렸다.
실제로 예산군은 인구 소멸 위기에서 빠르게 벗어나는 중이다. 행정안전부의 주민등록 인구통계(2023)에 따르면 예산군은 작년 말 기준 7만8,354명으로, 전년보다 969명 늘었다. 1992년 이후 30년 가까이 인구가 감소하다가 2022년 584명이 증가, 반등한 후 1년 새 증가폭이 더 커진 셈이다. 천홍래 팀장은 “연령대별로 보면 30대가 294명으로 크게 늘었다”며 “젊은 인구 유입으로 10대(85명)와 10대 미만(33명) 인구도 증가세로 돌아선 게 무엇보다 의미 있다”고 말했다.
이들의 창업 덕분인지, 인구가 늘면서 상업 시설도 증가했다. 식품위생업소 수는 지난해 1월 25일 기준 2,345개에서 지난달 2,586개로, 241곳(10%) 늘었다. 충남도 대변인실 관계자는 “도청이 있는 내포신도시 영향도 있지만 지난해는 예산시장 여파가 압도적이었다”고 말했다. 충남도청과 교육청 등이 집결한 내포신도시는 홍성군과 예산군에 걸쳐 있다.
예산시장 ‘온기’… 옆으로 옆으로
전통시장이 불붙인 온기의 확산세가 확연했다. 관광객 수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수덕사와 예당호 출렁다리 등 예산의 주요 명소를 찾은 관광객은 355만 명으로, 이는 전년(321만 명)보다 11%(34만 명) 증가한 것이다.
천 팀장은 “코로나 대유행 이후 전국적으로 관광객이 늘었지만, 예산 관광객은 다른 지역보다 확실히 더 큰 폭으로 증가했다”고 말했다. 인근 충남 공주시의 경우 지난해 349만 명이 찾아 전년 대비 7%(23만 명) 늘었고, 세종시는 6%(10만 명) 늘어난 175만 명을 기록했다. 예산의 관광객 증가율은 인근 지역 두배 가까운 셈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올해부터 예산시장 방문객도 측정을 예고한 상태다.
예산시장의 '전국구 명성' 덕분에 지역 농축산 농가의 수익도 증가했을 것으로 추산됐다. 새로 문을 연 식당과 더본코리아가 사과(카스텔라), 꽈리고추(소시지), 한우 등 지역 특산물을 이용해 먹거리를 개발한 덕분이다. 예산군이 지난해 8월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8개월 동안 시장 내 식당 식자재로 사과는 641kg, 대파 1.5톤, 쪽파 3.5톤, 쌀 4.5톤, 삼겹살 18톤 등 지역 산물이 소비됐다.
예산시장은 점포 정리 중
다만 식당들의 흥성거림과 별세계인 점포들도 있었다. 1년 반 전 시장을 처음 찾았을 땐 보이지 않던 ‘점포정리’ 상점들이 눈에 띄었다. 45년간 양은 냄비 등을 팔았다는 잡화점 주인 이수진(80)씨도 그중 한 명. “나이도 들고 그렇잖아도 접으려고 했다”는 이씨지만 얼굴 한 구석엔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이걸로 자식들 키워냈으면 됐고, 이렇게 분위기 좋을 때 넘겨줄 수 있어서 기쁘다”고 말했다. 시장 상인들에 따르면 1년여 전 점포 주인이 바뀌었고, 계약 연장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이씨가 그만두게 됐다. 18평짜리 점포 가격은 그사이 2배 이상 올랐다고 한다.
이불가게도 '점포정리 세일' 중이었다. 가게 주인은 “시장을 찾는 사람들은 많아졌지만, 그 때문에 우리 손님들은 주차할 곳도 부족해졌고 구입한 이불을 들고 시장통을 지나갈 수 없어서 더 장사가 안 된다”고 말했다. 쇠락해 가던 도시의 전통시장이 불씨를 붙이고 인구까지는 늘렸지만 다양한 상점들이 공존해야 할 시장은 거대한 식당으로 변모하고 있었다.
예산시장이 성공을 이어가려면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연 300만 명을 집객한 것만 해도 대단한 성과”라고 평가하면서 “지역 특산물 판매 증대, 구도심 상권 활성화 등으로 이어질 수 있는 정책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재구 예산군수는 “특산물 매장 설치, 예산시장과 구도심 상권 연결로 시장의 온기가 더 넓게 퍼지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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