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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홀린 '뮷즈'의 어머니, '초록매실' 1900억어치 판 베테랑 마케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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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홀린 '뮷즈'의 어머니, '초록매실' 1900억어치 판 베테랑 마케터였습니다

입력
2024.02.02 04:30
수정
2024.02.02 12:46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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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굿즈 '뮷즈' 완판 신화 주역
김미경 국립박물관문화재단 팀장 인터뷰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김미경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상품기획팀장이 자신이 기획한 뮷즈를 선보이고 있다. 윤서영 인턴기자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김미경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상품기획팀장이 자신이 기획한 뮷즈를 선보이고 있다. 윤서영 인턴기자

'뮷즈'. 뮤지엄(박물관)과 상품(굿즈)의 합성어다. 이 생소한 말은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이 제작하는 국립중앙박물관 상품을 통칭하는 신조어다. 2022년 국민 공모를 통해 박물관 상품 브랜드명으로 선정됐고 상표권 등록도 마쳤다. '반가사유상' '백제금동대향로' 등 유물을 소재로 한 박물관 상품에 턱턱 지갑을 여는 젊은 세대에게 뮷즈는 하나의 고유명사가 된 지 오래다.

박물관 '좀' 다니는 관람객들은 이제 전시를 보기 위해서만 박물관을 찾지 않는다. 전시실에서만큼이나 상품관(기프트숍)에 오래 머무르고, 뮷즈만을 사기 위해 박물관에 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국보 반가사유상을 작은 크기로 만든 '반가사유상 미니어처'는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멤버 RM이 소장한 사실이 알려지며 화제가 됐다. 누적 판매량만도 약 3만2,000개에 이른다. 지난해 뮷즈 매출액은 149억 원. 2017년 69억 원에 비하면 2배 이상 신장했다. 대체 지난 7년 사이 박물관 상품관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국립중앙박물관 상품관에 뮷즈를 사려는 관람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제공

국립중앙박물관 상품관에 뮷즈를 사려는 관람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제공


'뮷즈의 어머니' 된 전직 국민음료 마케터

'뮷즈 돌풍' 이면에는 박물관의 상품을 기획·개발하는 김미경(50)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상품기획팀장이 있다. 식음료 마케터로 오래 일한 그의 손을 거쳐간 건 웅진식품의 '초록매실' '아침햇살' '하늘보리'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상품들. 그가 초록매실을 담당했던 시기 이 음료는 부동의 1위를 차지하던 코카콜라를 역전하며 국내 음료 시장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연 매출 1,900억 원 메가톤급 히트에 모방 상품도 우후죽순 생겨났다.

매실 음료를 '국민음료'의 반열에 올린 김 팀장은 2016년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인 국립박물관문화재단으로 돌연 자리를 옮겼다. 십수 년 마케팅 경력을 토대로 조금 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서다. '반가사유상' '백제금동대향로' 등 선풍적 인기를 끈 뮷즈들이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손대는 것마다 '흥행 가도'를 달리는 비법은 무얼까.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김 팀장을 만나 '뮷즈 만드는 마음'에 대해 물었다.

높이 90.9㎝의 금동 반가사유상(국보 83호)을 15.5㎝ 사이즈로 축소한 미니어처. 현재까지 누적 3만2,000개가 넘게 팔렸다. 윤서영 인턴기자

높이 90.9㎝의 금동 반가사유상(국보 83호)을 15.5㎝ 사이즈로 축소한 미니어처. 현재까지 누적 3만2,000개가 넘게 팔렸다. 윤서영 인턴기자


MZ세대는 왜 뮷즈에 10만 원을 흔쾌히 지불하나

그는 자신이 기획한 뮷즈 중 어느 것 하나 애정이 가지 않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발언하는 김미경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상품기획팀장 옆으로 그가 기획한 뮷즈들이 놓여 있다. 왼쪽부터 오리모양 토기 미니어처, 반가사유상 미니어처, 금동대향로 미니어처. 윤서영 인턴기자

그는 자신이 기획한 뮷즈 중 어느 것 하나 애정이 가지 않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발언하는 김미경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상품기획팀장 옆으로 그가 기획한 뮷즈들이 놓여 있다. 왼쪽부터 오리모양 토기 미니어처, 반가사유상 미니어처, 금동대향로 미니어처. 윤서영 인턴기자

"딸이 고3인데, 인스타그램 인기 게시물에 금동대향로가 뜨더래요. '엄마 회사에서 만드는 거냐'며 '친구들이 사고 싶어 한다'고 말하더라고요. 정말 놀랐어요. 10대들이 9만9,000원짜리 유물 상품을 갖고 싶어 할 줄은 몰랐거든요."

뮷즈 돌풍의 중심에는 유물 기반 상품에 기꺼이 돈을 내는 젊은 세대가 있다. 재단이 지난해 매출액을 분석한 결과(오프라인 상품관 내국인 기준), 구매자는 △10대 11% △20대 13% △30대 49% △40대 16% △50대 12%로 나타났다. 기성세대가 역사와 문화재에 높은 관심을 갖고 지갑을 열 것 같지만, 뮷즈는 30대 이하 세대에서 압도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김 팀장은 그 이유를 "젊은 세대가 박물관을 '새로운 콘텐츠'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기성세대는 사극, 역사 다큐멘터리, 유물 등을 통해 익숙한 방식으로 역사적 사실을 받아들인다. 반면 젊은 소비자들은 실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상품에 역사를 결합할 때 '신선한 콘텐츠'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이들이 감각을 놓치지 않기 위해 공예·디자인박람회, 서울 여의도 더현대백화점 등 최신 유행이 모이는 곳을 제집 드나들 듯하는 것은 기본이다.

"젊은 세대는 자신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 '가치 소비'를 하는 경향이 있는데, 뮷즈는 그런 특징과 잘 맞는 아이템이에요. 10만 원 상당 '자개소반 무선충전기'나 20만 원이 넘는 도자기도 자신이 가치 있다고 판단하면 충분히 지불하죠."

백제 향로에 인센스 피우고, 신라 토기에 꽃 꽂고

'유물로 생활에 필요한 소품을 만들자.' 8년 전 처음 이 일을 맡은 김 팀장이 상품관을 둘러본 후 내린 결론이었다. 그전에도 박물관 상품과 상품관은 있었다. 다만 기념품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유물이 인쇄되거나 새겨진 수저 세트, 기념 자석, 공책, 연필, 지우개 등이 전부였다. 자체 제작 상품도 거의 찾기 어려웠다. 인사동에서 흔히 볼 법한 기성품이 매대를 차지했다. '우리 문화와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상품관이 이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뮷즈는 보기에도 예쁘지만 쓸모도 넘친다. 예컨대 도자 재질의 '오리모양 토기 미니어처'는 등 부분의 구멍을 활용해 디퓨저나 화병으로 사용할 수 있다. 국립대구박물관이 소장한 신라시대 오리모양 토기를 모티프로 삼았다. 1,000여 년 전, 조상들이 제를 지낼 때 주전자처럼 술이나 물을 담아서 따르는 데 사용했던 그릇이 오늘날 생활소품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요즘은 1인 가구가 많아 꽃을 다발로 사지 않잖아요. 꽃 한두 송이 꽂을 수 있는 꽃병으로 만들면 좋겠다 싶어 이 상품을 만들었죠."

보물의 과거 기능을 그대로 계승한 뮷즈도 있다. 발굴 30주년을 기념해 뮷즈로 다시 태어난 '금동대향로 미니어처'는 발매 일주일 만에 초도 물량이 완판됐다. 3D 프린팅 기법을 활용해 제작된 이 뮷즈는 본래 향로의 기능을 살려, 젊은 세대에 유행하는 인센스 스틱을 피울 수 있게 제작됐다. 백제 금동대향로(국보 제287호)는 백제인의 창의성과 조형성 등을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백제 금속공예 최고의 걸작품으로 꼽힌다.

백제 금동대향로 미니어처.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제공

백제 금동대향로 미니어처.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제공


뮷즈 공부하러...몽골, 태국, 아프리카 대륙에서도

요즘 뮷즈는 홍보 전략이랄 게 따로 필요 없을 정도다. 신제품을 발매하면 충성 고객들이 자발적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온라인 커뮤니티에 소식을 올리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글로벌 테크 액세서리 업체인 케이스티파이와 '인왕제색도' '청자 상감 구름 학무늬 매병' 등을 활용해 휴대폰 케이스 등을 출시했다. 몽골, 태국, 콩고민주공화국 등 새롭게 박물관을 설립하거나 운영 방식을 고민하는 다른 나라 박물관 관계자의 견학도 줄 잇는다. 뮷즈 열풍에 경복궁과 창덕궁, 덕수궁 등 고궁 굿즈를 판매하는 한국문화재재단의 매출도 처음으로 100억 원대를 넘어섰다.

설 전에 공개하는 올해 첫 개발 상품은 반가사유상을 모티브로 한 토우(흙으로 만든 인형) 상품이다. 수작업으로 제작된 이 상품은 외국인 관광객을 겨냥한 것이다. 김 팀장은 "과거 서울 명동, 남산 등 관광명소를 패키지 상품으로 여행하던 외국인들이 최근 개별 여행을 하며 박물관을 방문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박물관을 오가며 부담스럽지 않게 구매할 수 있는 작은 기념품을 본격적으로 개발할 것"이라 설명했다.

"'다음엔 뭐 만들 거냐'는 질문을 많이 들어요. 제 미션은 금동대향로처럼 우리가 잘 알지만 상품화되지 않은 것을 성공시키는 거예요. 그런 유물, 또 뭐가 있을까요?"

김미경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상품기획팀장이 곧 발매될 뮷즈 신상품인 '반가사유상 토우'를 들어 보이고 있다. 윤서영 인턴기자

김미경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상품기획팀장이 곧 발매될 뮷즈 신상품인 '반가사유상 토우'를 들어 보이고 있다. 윤서영 인턴기자


이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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