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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유출 막는다더니…' 자치단체 서울 기숙사 향한 곱지 않은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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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유출 막는다더니…' 자치단체 서울 기숙사 향한 곱지 않은 시선

입력
2024.01.24 15:30
수정
2024.01.24 15:34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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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 인재 키운다 앞다퉈 지었지만...
인구 감소에 청년 유출 논란 일어
건립 고민한 대구시·경북도 백지화
"위기 처한 지방대학부터 살려야"

강원도가 1975년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지역 출신 대학생을 위해 전국 자치단체 가운데 최초로 지은 관악학사 전경. 268명을 수용할 수 있다. 출처 관악학사 홈페이지

강원도가 1975년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지역 출신 대학생을 위해 전국 자치단체 가운데 최초로 지은 관악학사 전경. 268명을 수용할 수 있다. 출처 관악학사 홈페이지

비수도권 지방자치단체들이 서울이나 수도권 대학에 진학한 학생의 체재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서울에 건립한 기숙사가 눈총을 받고 있다. 한때 고장의 인재를 키운다며 앞다퉈 세웠지만, 지자체들이 인구소멸 위기에 놓이면서 최근에는 기숙사들이 청년 유출을 부추기고 있다는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24일 한국일보 취재에 따르면, 포항학사를 비롯해 서울시에 소재한 자치단체 기숙사들은 대학 입시가 마무리되는 이달 초부터 기숙사생을 모집하거나 일부는 마감했다. 향토생활관 또는 향토학사라 불리며 광역시·도가 직접 운영하는 서울시 대학생 기숙사는 1975년 전국 최초로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들어선 강원학사를 비롯해 10곳에 달한다. 여기에 시군 단위로 직접 운영하는 기숙사를 합치면 34곳이다.

기숙사는 자치단체 산하 교육재단이나 해당 지역 장학회가 운영한다. 기숙사 운영비 또한 독지가들이 지역 인재 양성에 써달라며 자치단체에 내는 기부금으로 충당된다. 이 덕분에 기숙사생들이 내는 비용은 2인 1실에 한 달 15만 원에서 최대 25만 원에 불과하다.

비용이 저렴한 데다 시설은 대학 기숙사보다 좋은 편이어서 모집 때마다 경쟁이 치열하다. 151명을 수용할 수 있는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포항학사만 해도 해마다 2.5대 1이 훌쩍 넘는다. 아침과 저녁식사가 제공되는 데다 건물 내 공동취사장과 세탁실은 물론 독서실, 체력 단련실, 휴게실 등 편의시설을 고루 갖추고 있고 무엇보다 관리인력이 상주해 고향의 부모들이 안심할 수 있는 게 큰 장점이다.

광역시·도 서울 기숙사 현황. 그래픽=강준구 기자

광역시·도 서울 기숙사 현황. 그래픽=강준구 기자

하지만 청년 유출을 막는 일이 자치단체의 지상과제가 되면서 이런 기숙사를 바라보는 시선이 예전 같지 않다. 경남도의회는 지난 연말 경남도 행정사무감사에서 서울 강남구 자곡동 남명학사 서울관을 둘러보고는 “청년 인구 감소가 심각한데 세금으로 인재 유출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있다”고 꼬집었다. 대구시와 경북도는 2021년 완공을 목표로 서울시에 지역 대학생 기숙사를 공동 건립하려고 했으나 지역에 써야 할 세금으로 청년인구 이탈을 가속화한다는 비판이 잇따르자 백지화했다. 당시 경북도 측은 “인재 유출을 막아야 하는 형편에 서울에 기숙사를 짓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이 있었다”며 “자체 타당성 조사에서도 기숙사는 필요하지만 교육환경 변화와 여론, 대규모 시설 건립 적정성을 검토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고 설명한 바 있다.

기숙사가 지방대학 육성에 역행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다영 포항시의원(국민의힘)은 “예전에는 서울로 대학을 많이 보낼수록 고장의 자랑거리였지만 이제는 고장의 인구소멸을 걱정할 때“라며 “위기에 처한 지방대학을 육성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인재를 키우는 정책이 우선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충북도가 2020년 서울 중랑구 중화동에 지은 충북학사 동서울관 내부 모습. 충북학사 홈페이지 캡처

충북도가 2020년 서울 중랑구 중화동에 지은 충북학사 동서울관 내부 모습. 충북학사 홈페이지 캡처

자치단체들은 향토 기숙사가 치솟는 집값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청년 지원 정책이며 살던 고장에 그대로 주소를 둬야 입소할 수 있어 인구 소멸과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포항학사를 운영하는 포항시장학회 장숙경 사무국장은 “포항학사에 들어가려면 최소 1년 이상 포항에 머물러야 하는데 청년 유출이라고 볼 수 있느냐”며 “지역 소재 대학에도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고 인접한 대구·경북권 대학 기숙사도 지원하고 있어 지방대학을 외면한다는 지적도 맞지 않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향토 기숙사는 그동안 지방에 살아 서울에는 연고가 없어 거처를 마련하지 못한 우리 고장 학생들의 고충을 덜어주기 위해 만든 것으로, 인구 정책과 결부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김정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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