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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증여세 개편 필요하지만... 과도한 '부의 무상이전' 방지해야"

입력
2024.01.31 12:0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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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룰 수 없는 숙제, 상속세 개편]
<하> 개편 어떻게
세제·세법 전문가 5인 좌담회
"명목세율 높지만 낮은 소득세 고려해야"
"과세 대상 너무 늘어… 공제 조정 필요"
유산취득세 동의… "누진율 강화" 주장도
"상증세 본질, 불평등 완화책 동반해야"

소득세제에 대한 보완세로서 상속세제를 규정함으로써 세수 확보와 아울러 실질적 평등의 원칙을 실현시킨다.

상속세법 제정 이유

정부가 1950년 밝힌 상속세법 제정 이유다. 불로소득 과세로 재정수입을 확보, 부의 세습·집중 완화로 경제적 균등을 도모하는 데 목적을 뒀다. 당시 최고세율은 90%였다. 1996년 소득 수준 향상에 전면 개정, 2000년 최고세율 50%(최대주주 할증 시 60%)로 조정한 게 현 상속·증여세다.

물가와 집값 상승에도 24년째 방치돼 세 부담이 중산층까지 확대됐고, 기업 경쟁력에도 영향을 준다는 목소리가 높다. 재정 부담은 물론, 선진국 대비 낮은 소득세 비중과 양극화 심화 등을 고려할 때 부의 재분배를 통한 불평등 완화가 중요하다는 반박도 만만치 않다.

한국일보가 전문가 5인 좌담회를 열어 상속·증여세제 개선 필요성과 방향을 들어봤다. 김완일(가나다 순) 세무법인 가나 대표, 박훈 한국납세자연합회장, 신승근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실행위원, 윤지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세진 국회입법조사처 재정경제팀장이 11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에 모였다.

상속·증여세제 개편 필요성과 방향 관련 본보 주최 전문가 좌담회 참석자들이 11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 대회의실에서 의견을 나누고 있다. 김예원 인턴기자

상속·증여세제 개편 필요성과 방향 관련 본보 주최 전문가 좌담회 참석자들이 11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 대회의실에서 의견을 나누고 있다. 김예원 인턴기자

-고세율, 대상 확대, 이중 과세 등의 지적이 있다.

김완일=20여 년 전 상속세 신고를 해 본 세무사가 별로 없었는데, 현재 1년에 3명 중 1명은 상속세 업무를 한다. 과거 사망자 대비 2% 남짓 상속세를 냈지만, 자산가치 상승 등을 법이 못 따라가 5% 수준이 됐다. 사실상 수도권에 집 한 채만 있어도 과세 대상이다.

이세진=명목세율은 높지만 각종 공제, 소득세와의 관계 등을 고려할 때 외국과의 단순 비교는 적절치 않다. 소득세 최고세율이 45%다. 근로든, 상속이든 개인이 얻은 소득이란 점에서 다르지 않아 상속세율만 낮추자는 건 논리적으로 박약하다. 스웨덴 등은 상속세 대신 자본이득세가 있고 생전 소득세를 많이 부과한다. 다만 총조세 중 상속·증여세 비중이 2021년 기준 2.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0.4%), 주요 7개국(G7·0.6%) 평균보다 높다. 국내총생산(GDP) 대비도 2011년 0.2%에서 2021년 0.7%로 증가세인데 상승폭이 OECD, G7 평균 0.1%의 5배다.

윤지현=이중 과세라 할 수 있겠지만, 금지돼야 할 이중 과세는 아니다. 부모가 세금을 냈다고 자식이 재산을 공짜로 얻는 건 개개인을 구별되는 납세의무자로 보는 우리 세제의 일관된 입장과 일치하지 않는다. 소득세는 개인이 일정기간 형편이 얼마나 나아졌는지를 따져 세금을 물리는데, 상속으로 단번에 굉장히 많은 소득이 발생하는데도 과세하지 말자는 것은 법적으로 맞지 않는 얘기다. 경제학에선 상속세가 소득세보다 왜곡이 적은 세금이라 본다. 문제는 우리가 이 세제에 어떤 기능과 역할을 부여할 것이냐는 점이다.

신승근=과세 대상이 늘었어도 5%도 안 된다. 자산·소득 양극화, 지역 격차가 큰 문제로 꼽히는데 향후 개편 방향에 부합하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생전 소비·투자를 많이 해야 경제가 활성화하는 측면도 있다. 현 상황에서 부담 완화는 어렵다고 본다.

-정부는 유산취득세로의 전환을 추진하는데.

=행정엔 유산세가 편하지만, 유산취득세가 합리적인 세금인 건 분명하다. 유산세나 유산취득세 그 자체론 세 부담 크기와 무관하다. 문제는 설계 과정에서 전체적 세금 부담을 늘리거나 줄이려는 시도를 슬쩍 끼워 넣는 것이다. 세부 내용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지난해 상속·증여세 개편을 못 한 이유는 올해 총선 때문으로 본다. 세 부담을 낮추려는 것으로 판단되는데, 상속세를 줄이면 다른 세금 부담이 늘어나야 한다. 정부가 계속 '부자 감세'를 하고 있는데 공평성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재산을 얼마나 받냐와 무관하게 상속재산총액을 기준으로 과세해 분쟁이 많이 발생한다. 유산취득세로 가되 세수는 공제금액을 조절, 세율을 종합소득세와 유사하게 적용하면 큰 변화는 없을 것이다.

박훈=상속세 유지 OECD 24개국 중 유산세는 한국 등 4개국, 유산취득세는 20개국이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고려해 전환에 찬성한다. 외국과 너무 다르면 기업·사람·자본의 유입과 유출에 좋지 않아 경쟁력이 약화하는 면이 있다. 캐나다, 스웨덴 등과 같이 자본이득세로의 전환도 가능하다.

세제·세법 전문가 상속·증여세 좌담회 주요 발언. 그래픽=강준구 기자

세제·세법 전문가 상속·증여세 좌담회 주요 발언. 그래픽=강준구 기자

-가업상속공제 등은 실효성 논란이 있다.

=공제받았다가 사업이 잘 안 돼 사후관리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토해내야 할 세 부담에 정말 쫄딱 망하는 꼴이 될 수 있다. 사업이 망하면 세금만 남아 상당히 위험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공제받는 사례가 많지 않다. 적절히 완화하면 기업 노하우를 훨씬 잘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1세대 경영주 은퇴 시점이라 고용 창출 등 국가 경제를 고려하면 기업을 유지하도록 세제 지원은 필요한데, 부의 세습 문제를 의식하다 보니 제도가 굉장히 복잡하게 만들어져 있다. 도입은 했는데 실제 작동은 어려워 이도 저도 아닌 게 돼 버린 상황이다. 가업승계가 활성화한 일본은 사전 증여를 많이 하는데 우리도 방향을 먼저 정해야 한다. 세금 감면보다 돈을 벌어 조금씩 갚아 나가게 하는 데 무게를 둬야 한다.

=기업지배구조 문제를 '가업'이란 말로 본질을 흐리면 안 된다. 현실적으로 국가 경제 대부분을 기업이 창출하는데, 출자지분을 가진 사람이 직접 경영하는 경우가 많아 상속·증여세가 경영권에 영향을 준다. 이런 이유로 1세대 경영주가 세금 부담 없이 자녀에게 지분을 물려주는 것이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인지를 따져야 한다. 기업의 출자지분 상속을 특별하게 취급할 것인지 등 본질을 정면으로 다뤄 공감대를 마련해야 할 부분이다.

-어떻게 개편돼야 한다고 보나.

=과도한 부의 무상 이전 방지는 필요하나, 최소한 상속인 생활의 질이 상속 개시 전후 크게 달라지지 않게 과세해야 한다.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등 자본소득 과세가 약화하고 있어 상속세를 통한 누진율 강화 필요성이 더 높아졌다. 유산취득세로 바꿔도 누진율을 강화하는 쪽으로 개편해야 된다. 증여세는 수증자가, 상속세는 피상속인이 세금을 내는 구조도 맞지 않다.

=배우자 상속세는 이혼 시 재산 분할과 균형을 맞춰야 한다. 자기 몫을 찾아가는 것이기에 이혼 시 재산 분할이 과세 대상이 아니라면 상속 재산도 마찬가지다. 최대주주 할증도 100% 주식 상속 시 기업가치의 120~130% 가액으로 상속세를 부담하게 되는 모순이 벌어져 손봐야 한다.

=상속·증여세가 많은 사람에게 '나의 문제'가 되면서 쟁점화했는데, 모든 국민이 아닌 소위 '초부자'에 초점을 맞춰 대상을 제한해야 한다.

=20년이 더 넘은 공제제도 조정이 급선무다. 공제제도와 과표는 고정돼 있는데 자산가격이 계속 올라 세금이 늘어나는 구조다. 물가연동제 도입도 합리성이 있다. 공제 조정, 유산취득세 전환 후 부족할 경우 명목세율 조정을 논의하면 된다.

상속·증여세제 개편 필요성과 방향 관련 본보 주최 전문가 좌담회 참석자들이 11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 대회의실에서 의견을 나누고 있다. 김예원 인턴기자

상속·증여세제 개편 필요성과 방향 관련 본보 주최 전문가 좌담회 참석자들이 11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 대회의실에서 의견을 나누고 있다. 김예원 인턴기자

-사회적 합의 도출이 큰 과제다.

=2004년 상속세를 폐지한 스웨덴은 이케아 등 기업 이탈이 영향을 줬다. 25개 세금 중 상속·증여세를 어떻게 끌고 갈 것인지 방향성을 제시하며 여론 향방을 살펴야 한다.

=예산 증액에 정부 승인이 필요해 야당도 여당 세법안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이 반복되는데 예산·조세 편성을 정부에만 맡기지 말고 국회가 나설 때가 됐다. 상설위원회나 특별기구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 법을 만들 때부터 국회가 관여하지 않으면 공평과세 도출은 어렵다.

=양극화, 세대 갈등, 인구감소 등 문제와 맞닿아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상속·증여세로 부를 재분배해도 불평등을 바로잡는 데 이를 순 없다. 그러나 세제가 이런 기능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는 신호를 공동체에 보내는 것도 중요하다. 세수 부족이 크게 드러나 있어 더 그렇다. 국회로 논의를 수렴해 기구를 구성, 사회적 합의를 도모해야 할 것이다.

[미룰 수 없는 숙제, 상속세 개편] 글 싣는 순서

<상> 먼저 나선 선진국

<중> 뒤처진 한국

<하> 개편 어떻게


세종= 이유지 기자
세종= 변태섭 기자
세종= 조소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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