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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키즈존 대신 '키즈OK존' 하라고요? 업주들이 "글쎄요" 시큰둥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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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키즈존 대신 '키즈OK존' 하라고요? 업주들이 "글쎄요" 시큰둥한 이유

입력
2024.01.12 04:3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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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지자체가 지원하는 아동친화 점포
지원금 30만원과 인증스티커 제공 그쳐
업주들은 사고시 배상위험 걱정 '회의적'
리모델링 모범사례 등 정책 틀 다시 짜야

노키즈존 안내문을 내건 매장 앞에서 아이를 안은 엄마가 서성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노키즈존 안내문을 내건 매장 앞에서 아이를 안은 엄마가 서성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 중구 명동에서 돈가스집을 운영하는 김모(40)씨는 3년 전부터 가게를 아동 동반 고객의 출입을 제한하는, 이른바 '노키즈존(No Kids Zone)'으로 바꿨다. 튀김, 국물 등 뜨거운 메뉴를 주로 취급하는데 아이들이 매장 안을 뛰어다니며 아찔한 상황이 자주 연출됐기 때문이다. 김씨는 "사고가 날까 봐 가슴 졸였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며 "위험을 무릅쓰고 돈을 물어주느니 아동 고객을 잃는 편이 낫겠다 싶었다"고 털어놨다.

지자체 지원은 시늉만... "동참 안 해요"

노키즈존은 여전히 한국 사회의 논쟁적 이슈다. '맘충'이라는 혐오적 표현을 써가며 특정 집단을 일률적으로 배제하는 건 명백한 차별이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거듭된 판단에도 확산세는 꺾이지 않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는 급감하는 출산율에 이런 아동차별 인식도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아동 고객을 받는 업장에 용품을 지원하는 등 '양육친화적' 분위기 조성으로 논란을 극복하려 애쓰고 있다. 하지만 업주들은 시큰둥한 반응만 보일 뿐, 요지부동이다. 정책의 방향성이 잘못됐다는 얘기다.

11일 서울시에 따르면, 유아나 아동을 받는 가게에 일부 비용을 보조하는 '서울키즈오케이존' 사업에 578곳이 참여하고 있다. 키즈오케이존으로 지정되면 지원비 30만 원과 인증스티커를 준다. 이 돈으로 어린 손님을 위한 메뉴와 식기 등 편의시설을 구비하라는 취지다. 서울에 이어 부산 동구, 광주 서구도 약 20개의 아동친화업소를 선정하고 관련 물품을 제공하기로 했다.

그러나 사업에 선뜻 동참하겠다는 업주는 그리 많지 않다. 서울 중랑구에서 키즈오케이존을 운영하는 A씨는 "아동은 성인에 비해 매출 이익이 적고 비품을 구매하기에 지원금도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 아동친화업소로 지정된다 한들 경제적 이익이 크지 않아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배상 위험 상쇄할 아동친화적 정책 만들어야"

서울시가 '서울키즈오케이존'에 등록된 업소에 제공한 스티커. 독자 제공

서울시가 '서울키즈오케이존'에 등록된 업소에 제공한 스티커. 독자 제공

더 큰 문제는 배상 공포다. 최근 5년간 숙박 및 음식점에서 발생한 어린이 안전사고는 2,943건(한국소비자원)으로 적지 않지만, 소송으로 비화할 경우 법원은 업주 측에 상당 부분 책임을 묻고 있다. 지난달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실태조사에서도 업주들은 김씨처럼 '과도한 배상책임 부담'(68%)을 노키즈존을 택한 주요 이유로 꼽았다. 서울 노원구의 카페 사장 이모(40)씨는 "과실이 아이와 부모에게 있다 해도 소송으로 가면 대부분 업주 책임이 조금이라도 인정된다"면서 "배상책임 보험금을 지원해주는 획기적 정책이 나오지 않는 한 '예스키즈존'을 내걸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금성 유인책으로 아동친화적 문화를 만들어 노키즈존을 줄이겠다는 당국의 발상은 실패했다는 의미다. 결국 관건은 배상 위험을 상쇄할 만한 정책 대안을 마련하느냐다. 업주들은 1회성 지원이 아니라 개업 단계에서부터 아이에게도 안전한 환경을 조성하게끔 도움을 주는 등의 전면적 정책 재설계를 요구하고 있다. 광주에서 숙박업을 하는 최모(63)씨는 "물품만 찔끔 줄 게 아니라 어떻게 해야 아동에게 안전한 공간을 만들 수 있는지 전문가 컨설팅을 연결해주는 편이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자체가 장기적 관점에서 아동에게도 유익한 방향을 좀 더 고민할 필요가 있다"며 "안전사고 부담을 줄일 수 있게 리모델링 모범사례를 만들거나 인식 개선에 예산을 투입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김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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