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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얼마나 아파야 아기를 버리나’ 실험한 731부대...'경성크리처' 비극, 이렇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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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얼마나 아파야 아기를 버리나’ 실험한 731부대...'경성크리처' 비극, 이렇게 나왔다

입력
2024.01.11 04:30
수정
2024.01.11 21:07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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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1부대 생체실험 다큐멘터리적 접근...
미국 자본 대거 투자 드라마서 이례적 시도
사료서 찾은 식민역사 흔적 드라마 곳곳에...
'백범일지' 따온 '윤동주 전당포 코트' 등장
'일본 한류' 이후 드라마 제작 번번이 무산...
"일본 의식해 출연하려는 배우 없었다"

드라마 '경성크리처'에 나오는 일본군의 전쟁포로 생체실험 모습. 넷플릭스 영상 캡처

드라마 '경성크리처'에 나오는 일본군의 전쟁포로 생체실험 모습. 넷플릭스 영상 캡처


드라마 '경성크리처'에 나오는 일본군의 전쟁포로 생체실험 모습. 넷플릭스 영상 캡처

드라마 '경성크리처'에 나오는 일본군의 전쟁포로 생체실험 모습. 넷플릭스 영상 캡처


중국 지린성 기록보관소가 일본 관동군이 땅속에 묻고 간 731부대 관련 문서 속에서 발견했다며 공개한 사진들. 일본의 만주국 민생부 보건국 직원들이 1940년 11월 지린성 눙안현에서 어린이들에게 페스트 방역 활동을 하는 모습. 사진 신화망

중국 지린성 기록보관소가 일본 관동군이 땅속에 묻고 간 731부대 관련 문서 속에서 발견했다며 공개한 사진들. 일본의 만주국 민생부 보건국 직원들이 1940년 11월 지린성 눙안현에서 어린이들에게 페스트 방역 활동을 하는 모습. 사진 신화망

"우리는 인간의 한계에 대해 여러 가지 실험과 연구를 진행했다". 지난 5일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경성크리처' 9회에선 일본군 가토 중좌(최영준)의 이 같은 대사가 깔리면서 일제가 저지른 생체실험의 참상을 담은 사진들이 약 15초 동안 줄줄이 나온다. 사진엔 조선인 등이 산 채로 해부를 당하거나 동상·독가스 실험에 동원된 모습이 흑백으로 담겼다.

드라마에서 일본군은 생체실험을 당한 이들을 "마루타"(일본어로 통나무)라고 부른다. 생체실험이 이뤄지는 병원 원장의 극중 이름은 이치로(현봉식)로, 2차 대전 때 생화학 무기를 개발한 일본군 731부대를 이끈 이시이 시로 부대장 실명과 비슷하다. 한국, 중국의 전쟁 포로를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벌인 일본의 전쟁 범죄는 '경성크리처'에 이렇게 압축됐다. 시즌 1, 2에 걸쳐 약 700억 원의 미국 자본이 투입된 드라마에 다큐멘터리 연출 기법으로 일본의 전쟁범죄 실상이 담긴 것은 이례적이다.

드라마 '경성크리처'에서 생체실험으로 만들어진 괴물을 경계하고 있는 일본군. 넷플릭스 제공

드라마 '경성크리처'에서 생체실험으로 만들어진 괴물을 경계하고 있는 일본군. 넷플릭스 제공


드라마 '경성크리처'를 쓴 강은경 작가. 시청률 40%를 웃돈 '제빵왕 김탁구'(2010)와 '낭만닥터 김사부' 시리즈(2016~2023) 등으로 시청자의 사랑을 받았다. 글라인 제공

드라마 '경성크리처'를 쓴 강은경 작가. 시청률 40%를 웃돈 '제빵왕 김탁구'(2010)와 '낭만닥터 김사부' 시리즈(2016~2023) 등으로 시청자의 사랑을 받았다. 글라인 제공


"731부대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 세계에 질문 던지고파"

제작진에 따르면 생체실험 사진은 731부대 관련 사료를 토대로 재현됐다. 동물실험 사진은 옛 자료 사진을 그대로 썼다. 10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경성크리처' 정동윤 감독은 "그 장면이 이 드라마의 핵심적인 부분"이라며 "역사적 사실을 최대한 담백하게 보여주려 음악도 다 빼고 내레이션으로 설명한 뒤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란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말했다.

드라마에서 생체실험으로 채옥(한소희)의 어머니 성심(강말금)은 '괴물'로 변한다. 그 후 모녀는 비극을 맞는다. 강은경 작가는 "(731부대 관련) 자료를 찾다 보니 '(뜨거운 불판 위에서) 엄마가 아이를 어느 시점에 포기하는지' 등 모성을 실험한 내용을 보고 며칠 동안 잠을 못 잤다"며 "너무 잔혹하고 가슴 아파 생체실험과 모성을 다루게 됐다"고 창작 계기를 들려줬다.

드라마 '경성크리처'에서 일본군에 고문당하고 있는 장태상(박서준). 넷플릭스 제공

드라마 '경성크리처'에서 일본군에 고문당하고 있는 장태상(박서준). 넷플릭스 제공


독립운동가 고 신석구 선생. 공훈전사자료관 홈페이지 캡처

독립운동가 고 신석구 선생. 공훈전사자료관 홈페이지 캡처


박서준 연기한 장태상에 '○○○ 있다', 독립운동가와 닮은꼴

'경성크리처'엔 식민 역사의 흔적이 곳곳에 녹아 있다. 항일 운동에 나서는 장태상(박서준)은 3·1운동 때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명 중 신석구 선생을 떠올리게 한다. 신 선생은 독립선언식에 참여하고 신사참배 거부 운동을 벌여 투옥됐음에도 재판장에서 "독립이 될 때까지 독립운동을 하겠다"며 국권 회복에 힘쓴 독립운동가다.

장태상은 드라마에서 전당포(금옥당)를 운영하는데 "신석구도 그의 나이 스물일곱 되던 해(1901)에 전당포에 나가 일을 하기 시작했다."(책 '신석구 민족의 독립을 위해 십자가를 지다'·이덕주 저) 장태상은 어려서 부모를 모두 여의었다. 공훈전사자료관 등에 따르면 신 선생도 7세 때 어머니를, 15세 때 아버지를 잃었다. 장태상은 아등바등 모은 돈으로 연회를 다니며 술잔을 기울이기 바빴다.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뛰어들기 전의 ) 신 선생도 민족사엔 거의 무관심한 사적인 삶을 살았고 (부모를 모두 여읜 뒤) 정신적으로 방황했다."(책 '자유독립을 위한 밀알 신석구'·김승태 저) 장태상은 친구인 권준택(위하준)의 밀고로 항일 운동에 참여한 정황이 일본군에 발각됐고, 신 선생도 동향 친구이자 독립선언 동지였던 정춘수의 변절과 친일 활동으로 힘들어했다.

드라마 '경성크리처' 전당포 금옥당에 보관 중인 '윤동주 코트'. 윤동주 선생이 후배들 밥 사 먹이느라 맡겨놓고 간 설정이다. 넷플릭스 영상 캡처

드라마 '경성크리처' 전당포 금옥당에 보관 중인 '윤동주 코트'. 윤동주 선생이 후배들 밥 사 먹이느라 맡겨놓고 간 설정이다. 넷플릭스 영상 캡처


드라마 '경성크리처' 속 시장 상인들이 일본군을 속이기 위해 모두 거리로 나와 독립 운동에 나선 이들을 돕는 모습. 넷플릭스 제공

드라마 '경성크리처' 속 시장 상인들이 일본군을 속이기 위해 모두 거리로 나와 독립 운동에 나선 이들을 돕는 모습. 넷플릭스 제공


"전당포? 서민들이 어떻게 버텼는지 보여주고 싶어"

장태상이 운영하는 전당포엔 '윤동주 코트'가 걸려 있다. 그 코트를 가리키며 장태상은 "윤동주 선생이 후배들 밥 사 먹이느라 맡기고 간 것인데 끝내 못 찾아간 것"이라고 말한다.

독립운동에 나섰던 의인들도 당시 전당포를 종종 이용했다. '백범일지'를 보면, 1925년 임시정부 경무국 경호관이었던 나석주 선생은 옷을 전당포에 맡긴 뒤 그 돈으로 고기와 반찬거리를 사 김구 선생 집을 찾아갔다. 아내를 잃고 괴로워하는 처지를 위로하기 위해서였다. 그날은 김 선생 생일이었다. 1년 뒤 나 선생은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을 던진 뒤 순국했다. 동료에게 영광스러운 생일상을 받은 것을 잊지 않기 위해 김 선생은 자서전에 "평생에 다시는 내 생일을 기념치 않기로 했다"고 썼다. 강 작가도 이 내용을 보고 감명을 받아 상상력을 더해 '윤동주 전당포 에피소드'를 넣었다. 드라마에서 전당포와 시장은 서민들의 독립운동 본거지다. 강 작가는 "자료를 찾아 보니 일본의 식민지배 실상을 미국이 시찰했을 때 지금의 종로와 서대문 시장 상인들이 단합해 가게 문을 다 닫는 방식으로 일본 경찰에 저항했다고 하더라"며 "그렇게 버티며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싶었다"고 드라마 기획 의도를 들려줬다.

드라마 '경성크리처' 속 채옥(한소희)과 장태산(박서준). 넷플릭스 제공

드라마 '경성크리처' 속 채옥(한소희)과 장태산(박서준). 넷플릭스 제공


'경성크리처'를 연출한 정동윤 감독. 넷플릭스 제공

'경성크리처'를 연출한 정동윤 감독. 넷플릭스 제공


"일본 10대 '731부대' 검색, 힘 돼"

'경성크리처'는 공개 하루 만인 지난달 23일부터 이달 9일까지 18일 동안 일본 넷플릭스 시리즈 부문 톱10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머물렀다. 일본의 민감한 과거사를 건드려 현지에서 철저히 외면받을 거란 우려와 달리 일본 시청자들이 드라마를 찾아 보고 있는 것이다. 강 작가는 "일본에선 외면당할 줄 알았다"며 "드라마 공개 이후 일본 인터넷에서 10대를 중심으로 731부대 검색량이 부쩍 늘었다는 얘기를 듣고 힘이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성크리처'가 제작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경성크리처' 제작 전 강 작가는 731부대를 소재로 한 드라마를 기획했는데 하겠다고 나선 배우들이 없었다. 일본 전쟁범죄를 비판한 드라마 투자에 선뜻 나서는 제작사도 찾기 어려웠다. 일제강점기에 각시탈을 쓰고 일본군과 맞서는 청년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각시탈'(2012)을 제작할 때 배우 7명이 주역 제안을 고사했다. 일본 시장 눈치를 보느라 일부 '한류 스타'들이 일제강점기 배경 드라마 출연을 꺼린 것이다. 강 작가는 "'일본 한류'라는 큰 물결이 생기면서 제작비가 많이 필요한 시대극에 '한류 배우'들이 출연 결정을 내리지 못하면서 여러 번 제작이 무산됐다"며 "박서준과 한소희에게 물어보니 '한류 배우니까 해야죠'라고 말하더라"고 제작 뒷얘기도 들려줬다. 시즌2는 올해 추가로 공개된다.

양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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