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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집도 없는데 ‘세컨드 홈’이라니

입력
2024.01.10 04: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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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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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이 없잖아. 서울 큰 병원에서 진료받으려고 모텔에서 산다잖아. 엄두가 안 나." 은퇴 후 전원 생활을 꿈꾸는 지인들이 대체로 지적하는 문제다. 2주택 부담이 두려울 법한데 서울 집을 아예 팔고 시골로 떠나겠다는 구상은 들어본 바 없다. 나름 성공한 이들의 고민을 이렇게 받아들였다. '때론 가혹한 세금보다 열악한 환경이 더 무섭다.' 이런 얘기도 보태졌다. "집이 없잖아. 두루 알아본 지역은 서울 사람들이 죄다 샀더라. 집값도 다 올랐어. 엄두가 안 나."

정부가 띄운 '세컨드 홈'이 길어 올린 기억이다. 국가 정책을 구태여 외국어로 명명한 게 못마땅하지만 알맹이 없는 올해 '경제정책방향'에서 그나마 참신한 건더기다. 딱히 내세울 게 없어서 앞세웠다는 뒷말도 관가에 나돈다.

취지는 아름답다. 밀집한 수도권 인구를 분산해 지방의 인구 소멸을 막고 덤으로 지역 부동산까지 살린다. 혜택은 솔깃하다. 기존 1주택자가 인구가 줄고 있는 지역의 주택을 한 채 더 사더라도 계속 1주택자로 보겠다. 즉 재산세, 종합부동산세, 양도소득세를 1주택자 기준으로 내면 된다. 국민 소득 3만 달러 시대에 진정한 1주택자의 본보기는 이제 '서울 집 한 채+시골 집 한 채'가 될 공산이 커졌다. '미완의 1주택'이라는 신조어도 떠오른다.

거기까지다. 인구 소멸과 부동산 침체라는 묵직한 주제가 다른 왈가왈부를 압도한다. 이번에도 감세의 열매는 부자들이 따먹게 됐다. '첫 집도 없는데 세컨드 홈이라니' 같은 무주택자의 푸념은 들어설 자리가 없다. "집 없으면 빚내 집 사라"에 이어 "집 있으면 촌에 집 사라"는 이분법만 남는다. 어떻게든 집을 사야 하는 나라가 됐다.

디테일에 깃든다는 악마를 외면하듯 세컨드 홈의 개념도, 대상도, 기준도 오리무중이다. 생소한 생활인구 개념을 들어 장밋빛 미래만 그렸다. 인구감소지역 89곳을 두고 시장은 벌써 "여긴 되네", "저긴 안 되네" 주판알을 튕기는데 정부 응답은 "추후 공개"가 전부다.

세컨드 홈은 그 역사가 100년을 넘었다는 영국 등 유럽에서도 개념 정리가 쉽지 않다고 평한다. <주거의 고정된 물리적 특성이 아닌, 주 거주지와의 관계 속에서 주거 사용 방식을 통해 정의되며 그러한 관계가 유동적으로 변하기 때문>이란다. 주말(휴가용) 주택, 은퇴 후 주거, 임대 투자 등을 아우른다는 얘기다. 우리는 그저 1주택자 간주, 세제 혜택에 방점이 찍혀 있다.

유럽이 겪은, 한국에도 닥칠 법한 부작용에 대한 언급도 없다. <△한시적, 계절적 사용 특성으로 인한 소음, 안전 문제 △의료시설, 교통, 상하수도, 공공 서비스 등 기반시설 부족 △소비 인구 유입 불안정으로 일자리 창출은 단순 서비스 직종에 제한 등 경제 효과 한계 △경관 훼손 등 환경 문제 △원주민과의 갈등> 등이다.

부동산 하면 투기를 떠올리는 이 땅에서 혹여 쏠림 현상은 지역 집값을 올려 원주민의 내 집 살 기회를 방해할 수 있다. 지방에 터를 박고 도시보다 적은 임금을 착실히 모아 보금자리를 마련하려는 청년의 상대적 박탈감은 더 클 것이다. 그마저 소외되는 지역은 또 어떡하나.

고로 지방은 안 보인다. '서울 중심 사고, 강남 눈높이 미래'만 아른거린다. 공언한 추가 대책을 지켜보겠다.

<>는 국토연구원의 '국토연구 115권(2022.12)'을 인용함.

고찬유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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