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3일 딸 주애와 함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차량인 중요군용대차 생산 공장을 현지 지도하고 있다. 조선중앙TV 캡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진 피해를 겪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에게 5일 위로 전문을 보냈다. 같은 날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으로는 200발 가까이 포를 쏘며 무력도발에 나섰다. 한일 양국을 상대로 상반된 메시지를 보내 공조의 틈을 벌리려는 술수로 풀이된다.
기시다 총리에 '각하' 칭호… 도호쿠·고베 때와 달리 직접 보내
김 위원장은 6일 노동신문에 실린 전문을 통해 "일본에서 불행하게도 새해 정초부터 지진으로 인한 많은 인명피해와 물질적 손실을 입었다는 소식에 접하고 당신과 유가족들, 피해자들에게 심심한 동정과 위문을 표한다"며 "피해지역 인민들이 하루빨리 안정된 생활을 회복하게 되기를 기원한다"고 전했다. 불과 2주 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4차 방류 결정을 두고 "세균전 전범자들의 후예가 또 하나의 특대형 범죄행위에 나섰다"고 맹비난한 것과 입장이 정반대로 달라졌다.
김 위원장이 직접 일본에 전문을 보내 위로한 것은 이례적이다. 2011년 도호쿠 대지진 때는 김영남 당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명의로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에, 앞서 1995년 고베 대지진 때는 강성산 총리 명의로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에게 위로의 뜻을 전했다. 하지만 북한 통치권자가 전면에 나선 적은 없었다.
특히 김 위원장은 전문 수신인을 '일본국 총리대신 기시다 후미오 각하'라고 적으며 존칭을 붙였다. 지난 2일 김 위원장의 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담화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가리켜 직책을 생략한 채 '윤석열'로 부르거나 심지어 '이 인간'으로 낮잡아 부른 것과는 대조적이다.
'통일 지우기' 박차… 김정은 이중행보에 "한미일 협력 균열 의도"
북한은 군사 행동 외에 외교적으로도 대남 적개심을 드러내고 있다. 김 위원장이 지난해 말 노동당 전원회의 결론에서 남북관계를 "더 이상 동족관계가 아닌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으로 선언한 후 북한은 본격적으로 '통일 지우기'에 나섰다. 대남기구인 노동당 통일전선부와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등을 국가 간 문제를 다루는 외무성 주도로 통폐합하는 작업에 착수했고, 대남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 홈페이지에 있던 '통일은 우리민족끼리' 코너도 '조선말대사전'으로 대체했다.
한일 양국을 향한 북한의 대조적 행보는 한미일 공조에 균열을 내고 김 위원장의 인도주의적 면모를 부각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이 한국에는 초강경 자세, 일본에는 유화적 태도를 내비친 데는 한미일 협력을 희석시키려는 의도가 담겼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정치·군사 문제와 인도주의 문제의 분리를 통한 정상국가 이미지를 제고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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