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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 90% 차지하는데... 단속도, 처벌도 쉽지 않은 '온라인 공연 암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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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 90% 차지하는데... 단속도, 처벌도 쉽지 않은 '온라인 공연 암표'

입력
2024.01.04 04:3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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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범준 "암표 문제로 예매표 전부 취소"
신고 4000건... 온라인 단속은 나몰라라
업계, 티켓거래사이트 4곳 공정위 신고

연말연초 공연이 이어지면서 암표 거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연말연초 공연이 이어지면서 암표 거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직장인 박모(26)씨는 지난달 14일 가수 임영웅 콘서트 티케팅에 도전했다가 실패했다. 사이트가 열리자마자 접속했지만, 몇 분 만에 표가 매진됐다. 그때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쏟아지는 티켓 판매글이 박씨 눈에 계속 어른거렸고, 결국 정가의 두 배나 되는 34만 원을 판매자 계좌에 입금했다. 티켓을 손에 넣었다는 기쁨도 잠시, 입금과 동시에 계정 차단을 알리는 메시지가 떴다. 박씨는 3일 "경찰서에 고소장을 낼 생각이지만 돈을 돌려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한숨 쉬었다.

유명 가수들의 공연이 이어지는 연말연초면 웃돈을 받고 티켓을 파는 '암표'도 기승을 부린다. 암표 자체도 불법이나, 최근 SNS 등 온라인 거래가 일반화하면서 돈만 꿀꺽하고 잠적하는 사기가 급증해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다. 고질병이라고 치부하기엔 현행법상 막을 방법조차 없는 게 더 큰 문제다. 급기야 업계에선 티켓 거래 중고사이트들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하기까지 했다.

공연시장은 '온라인 암표'로 시름 중

장범준은 1일 공연 티켓 예매를 전량 취소한다는 공지 글을 유튜브 커뮤니티에 올렸다. 유튜브 캡처

장범준은 1일 공연 티켓 예매를 전량 취소한다는 공지 글을 유튜브 커뮤니티에 올렸다. 유튜브 캡처

최근 가수 장범준의 콘서트는 공연 암표의 부작용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장씨는 1일 SNS에 "암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 티켓 예매를 전부 취소하기로 했다"고 공지했다. 3일부터 10회 차의 공연이 예정됐으나, 정상가의 2, 3배에 달하는 표가 거래된 사실을 적발한 탓이다. 정상적 구매를 호소해도 암표가 극성을 부리자 예매 취소라는 결단을 내렸다.

사례는 부지기수다. 임영웅 콘서트 'IM HERO TOUR 2023'의 인터파크 예매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모니터링 결과 부정예매로 추정되는 118건의 예매 건을 대상으로 강제취소 처리가 진행됐다"는 경고문이 뜬다. 최근 SBS '가요대전' 티켓을 판다고 한 뒤 잠적한 판매자가 체포된 일도 있었다. 실제 한국콘텐츠진흥원에 신고된 공연 암표 건수는 △2020년 359건 △2021년 785건 △2022년 4,244건으로 갈수록 폭증하고 있다.

피해가 계속 느는데도 처벌은 쉽지 않다. 암표 매매는 경범죄처벌법에 근거해 단속한다. 하지만 벌금이 20만 원에 불과한 데다 흥행장, 경기장, 역 등 오프라인 매매에 한정된다. 윤동환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음레협) 회장은 "암표의 90% 이상이 자동으로 온라인 예매 티켓을 반복해 사는, '매크로' 수법을 쓰는데 지금은 불법으로 인정되지도 않는다"고 지적했다.

개정법도 한계... 실력행사 나선 업계

암표 신고 건수 추이. 그래픽=김대훈 기자

암표 신고 건수 추이. 그래픽=김대훈 기자

3월부터 매크로를 이용한 티켓 부정 판매를 금지하는 개정 공연법이 시행되기는 한다. 위반하면 1년 이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하 벌금을 매기는 처벌 규정도 마련됐다. 다만 이 역시 한계는 뚜렷하다. 윤 회장은 "개정법은 판매, 알선을 상습적으로 한 사람만 처벌한다"고 설명했다. 구매자, 중개자 등으로 역할을 분담해 기업형으로 진화한 암표 업계의 실태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문화예술 분야를 전문으로 하는 백세희 변호사(디케이엘파트너스)도 "범죄 수익을 몰수하는 규정이 없어 수익이 벌금보다 크면 계속해서 범죄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구조적 맹점을 꼬집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업무방해죄나 사기죄 적용이 고작인데, 처벌 조건이 여간 까다롭지 않다. 백 변호사는 "업무방해죄의 법리상 피해자는 공연 제작자나 소비자가 아닌 예매처 등 티켓판매 중개업자가 돼, 매크로 활용 여부를 직접 파악해 피해를 입증해야 하는 수고가 든다"고 말했다. 사기죄 역시 법률상 친고죄는 아니나 사실상 피해자가 직접 고소장을 접수해 수사를 촉구할 수밖에 없다.

암표 거래 이용자 의견 조사. 그래픽=김대훈 기자

암표 거래 이용자 의견 조사. 그래픽=김대훈 기자

단속도 처벌도 쉽지 않은 현실에 실력행사에 나선 단체들도 있다. 한국대중음악공연산업협회(음공협)는 지난달 27일 리셀사이트 4곳에 대해 공정위에 불공정약관 심사 청구서를 신고했다. 이용약관에 암표나 불법 매매 관련 내용이 자세히 명시돼 있지 않고, 이용자에게만 책임을 전가해 불공정하다는 것이다. 음공협 관계자는 "거래 사이트는 암표 문제를 나 몰라라 하고, 이용자만 책임을 떠안아 행동에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음레협도 지난해 10월 온라인 암표를 경범죄처벌법 단속 대상에 포함시켜 달라고 법무부를 통해 공개 청원을 낸 후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서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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