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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검사 잡으려 출범한 공수처, 3년 만에 '콩가루 집안' 된 이유 [위기의 공수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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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검사 잡으려 출범한 공수처, 3년 만에 '콩가루 집안' 된 이유 [위기의 공수처]

입력
2023.12.25 04:30
수정
2023.12.25 11:58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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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공수처: ①스스로 해친 공정성]
출범 후 1년간 수사한 사건 40%가 윤석열 관련
문 정부의 검찰 황태자 이성윤엔 특혜소환 혜택
"능력 탓하기 전에 공정·객관성부터 필요" 지적

편집자주

얼마 전 공수처의 2인자(차장)가 내분 끝에 공수처 부장검사를 고소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고소장을 어디에 넣었을까요? 바로 서울중앙지검입니다. 비리 검사를 잡으라고 조직을 만들어줬더니, 자기들끼리 싸움을 하다가 결국엔 검사에게 사건을 들고가 해결해 달라는 코미디 같은 일을 벌인 겁니다. 공수처는 왜 이렇게 ‘콩가루 집안’이 된 것일까요? 한국일보가 전ㆍ현직 공수처 검사들과 법조계 인사들의 증언을 토대로 그 이유를 분석했습니다.

2020년 12월 9일 공수처법 개정을 두고 대립하고 있는 여야 국회의원들의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2020년 12월 9일 공수처법 개정을 두고 대립하고 있는 여야 국회의원들의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공수처는 바로 귀태(鬼胎)다. 귀신이 살아 태어나는 게 공수처, 태어나지 말아야 할 조직이 바로 공수처다."

(2019년 12월 정태옥 자유한국당 의원)

글로 쓰기도 민망한 이 모욕적인 언사는 2019년 12월 국회 본회의장에서 나왔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법안이 상정됐을 때, 당시 야당인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의원들은 법안 통과에 반대하며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에 나섰다. 그때 정태옥 의원은 공수처를 귀태(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존재)라고 칭하며 저주에 가까운 막말을 퍼부었다.

보란 듯 성과를 거두며 코를 납작하게 했으면 좋았으련만, 출범한 지 3년이 되어가는 공수처는 그때의 정태옥 전 의원이 '선지자'로 보일 만큼 철저히 실패한 조직이 됐다. 판사와 검사의 봐주기 카르텔을 깨는 '빛과 소금' 역할을 할 것이란 기대를 받았지만, 아직 '저 기관이 과연 필요한가'라는 점에서 아무런 증명을 해내지 못했다.

공수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이 기관을 반대했던 이들만 가진 건 아니다. 한때 공수처에 몸담았던 이들, 심지어 아직 그곳에 적을 두고 있는 사람들조차 "시작부터 잘못됐다"는 탄식으로 공수처 얘기를 시작한다. 최근에는 현직 공수처 부장검사가 지휘부의 정치적 편향을 고발하는 글을 올리자, 이에 발끈한 공수처 차장이 같은 식구(부장검사)를 명예훼손으로 검찰에 고소하는 일까지 있었다. 검사를 감시하고 수사하라고 했더니, 자기네 내부 문제를 검사에게 들고 가 해결해 달라는 촌극을 벌인 것이다. 검사, 판사, 고위 경찰관의 부패범죄 척결을 목표로 출범한 공수처는 어떻게 3년도 안 돼 '콩가루 집안'이라는 평가까지 듣게 됐을까.

시작부터 편향성 논란

공수처는 시작부터 삐거덕댔다. 토론과 사회적 합의가 아니라 욕설과 폭력이 난무한 '동물 국회'의 산물이었다. 공수처법이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2019년 4월부터 본회의를 통과한 그해 12월까지 국회는 극한의 대립을 계속했다. '검찰의 기소독점권 폐지'라는 여당(더불어민주당)의 명분, '친정권 권력기관의 탄생'이라는 야당의 반대가 정면으로 충돌했다. 현직 법무부 장관(조국)을 수사하는 당시 검찰총장(윤석열)과 청와대·여당 간 갈등이 격해지던 시기였다.

전문가들은 공수처가 '친(親)민주당 조직'이라는 탄생 프레임에서 신속하게 벗어났어야 했다고 조언한다. 민주당 주도로 탄생한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이 평가를 불식하기 위해 객관성·공정성·독립성을 보여주는 노력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공수처의 행보는 오히려 반대였다. 공수처는 출범 한 달 만인 2021년 3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사건을 수사했다. 그러면서 '핵심 친문 검사'인 이성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을 공수처장 관용차로 모셔 오며 '황제소환' 논란을 낳았다. 여기에 더해 이를 보도한 기자들의 취재원을 밝히기 위해 내사에 착수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초기 수사는 유력한 대선 후보로 떠오른 '윤석열 총장 사건'에 집중됐다. 한국일보가 공수처 안팎의 취재원을 통해 확인한 내용에 따르면, 2021년 1월 21일 공수처 출범 이후 20대 대통령선거 직전까지 공수처가 수사를 진행한 25개(사건번호 기준) 사건 중 11개가 윤 대통령 관련 사건이었다. 예를 들면 △한명숙 전 총리 모해위증 수사방해 의혹 △옵티머스 수사 축소 의혹 △고발사주 의혹 △판사 사찰 문건 작성 지시 의혹 등이 그것이다.

김진욱(왼쪽)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과 여운국 공수처 차장검사가 10월 19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있다. 고영권 기자

김진욱(왼쪽)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과 여운국 공수처 차장검사가 10월 19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있다. 고영권 기자

이런 편향적인 행보의 배경에 공수처 지휘부의 입김이 있었다는 뒷말도 무성했다. 김명석 공수처 부장검사는 최근 법률신문 기고에서 윤 대통령의 판사 사찰 문건 작성 지시 의혹 당시를 설명했다. 그는 "(한 검사가) 입건 여부에 부정적 의견을 내면 다른 검사에게 검토를 시키고, 또 부정적 의견을 내면 또 다른 검사에게 검토를 시키는 식으로 여러 검사를 거치다가 '입건 명령'이라도 하겠다고 성화를 부려 어쩔 수 없이 입건을 했다고 하길래, 농담인 줄 알았다"고 적었다. 이어 "수사에 착수하지도 않은 사건에 대해 미리 결론을 내리고 그 결론에 맞추도록 위와 같은 언행을 한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라며 지도부의 정치적 편향성을 저격했다.

고발사주 사건의 경우, 윤 대통령의 관여 정황이 충분히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사건을 정식 입건했다. 한 전 총리 모해위증 수사방해 의혹과 관련해 윤 대통령을 무혐의 처분할 때에도 윗선이 결재를 거부해 잡음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휘부의 정치적 편향은 내부 구성원들의 힘을 빼는 결과를 초래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공수처는 능력 부족보다, 정치적 고려가 있었다는 비판을 더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며 "수사기관의 공정성·객관성이 훼손되면 나중에 어떤 수사를 하더라도 신뢰를 받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한 전직 공수처 부장검사는 "서해 피격사건 유족이 '공수처가 절대로 수사하면 안 된다'고 했을 때 실상이 이렇구나 싶었다"며 "공수처는 그만큼 신뢰를 못 받았다"고 평가했다.

수사·기소 대상 불일치

전·현직 공수처 관계자가 말하는 공수처. 그래픽=박구원 기자

전·현직 공수처 관계자가 말하는 공수처. 그래픽=박구원 기자

편향성 논란이 계속되자 공수처는 출범 1년여 만인 지난해 3월 선별입건(고소·고발 사건 중 실제 수사할 사건을 선택해 입건하는 것) 제도를 폐지했다. 정치적 의도에 따라 수사할 사건을 고른다는 비판을 피하려는 조치였다. 그러나 이 역시도 결과적으로 독이 됐다. 검사 25명이 정원인 공수처에 물리적으로 너무 많은 사건이 몰렸다. 성과를 내야 된다는 압박감에 여러 사건을 동시에 수사하기 시작했다. 이달 기준으로 공수처에 접수된 사건은 총 7,854건인데, 이 중 381건은 수사가 진행 중이다. 공수처 수사심의위원을 했던 한 변호사는 "허위공문서 작성 같은 (단순한) 사건과 주요 사건이 같은 부서에 배당된다"며 "검찰 특수부와 고등검찰청을 합쳐놓은 느낌"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제대로 수사를 하기에 공수처 권한은 너무 작았다. 공수처법상 공수처 수사 대상은 고위공직자의 뇌물 및 직무 범죄인데, 기소는 △판사(대법원장 대법관 포함) △검사(검찰총장 포함) △경찰관(경무관 이상)만 가능하다. "수사 범위도 좁은데, 기소 대상은 그것보다 더 협소해 제대로 된 수사를 할 수 없는 구조"라는 게 법조계의 공통된 평가다.

예를 들어 검·경의 뇌물 수사는 기업의 배임·횡령 범죄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기업인의 비자금 조성 및 횡령과 관련해 사용처를 추적하고 추궁하다 보면, 공무원에게 건네진 뇌물이 밝혀지는 수순이다. 하지만 공수처의 경우 민간인인 기업인의 횡령 같은 범죄는 수사 대상이 아니다. 어떤 기업인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갑자기 자신의 뇌물 범행을 털어놓는 매우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공수처가 뇌물죄를 먼저 인지해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없는 구조인 셈이다. 실제 공수처 '1호 인지 사건'인 서울경찰청 김모 경무관의 뇌물 사건의 경우, 공여자로 지목된 대우산업개발 회장의 협조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사건이 표류했다. 공수처는 김 경무관의 구속영장을 두 차례나 청구했지만 법원에서 기각됐다.

기소 대상이 아닌 피의자는 공수처 수사를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어차피 기소 권한은 검찰에 있기 때문이다.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에 대한 표적감사를 주도한 혐의를 받는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은 공수처 소환 요구를 다섯 차례나 불응해 갈등을 빚었다. 공수처 경험이 있는 한 변호사는 "공수처는 수사실무를 전혀 모르는 아마추어들이 비현실적 이상에 치우쳐 만들어낸 기괴한 창작물"이라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공수처법 개정에 대한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수처가 작더라도 성과를 내야 이 같은 움직임에 힘이 실릴 수 있는데, 그러려면 기소 대상인 이들의 범죄에 수사력을 집중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공수처 수사심의위원을 맡고 있는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범죄의 단서를 잡을 수 있도록 수사 대상 범위를 좀 넓혀서 수사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적 중립성과 객관성을 강조하는 지적도 있다. 공수처 출신의 한 법조인은 "수사기관의 조직력은 공정성으로부터 나온다"며 "리더 스스로가 선호하는 정치적 노선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버리고 가운데(중도)에 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동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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