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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운 중국 화장실" 오명 벗자…시진핑 '화장실 혁명' 절반의 성공

입력
2023.12.25 08:00
수정
2023.12.25 14:4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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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중국 화장실 도농·빈부 격차
2015년 이후 공중화장실 37만 개 지어
베이징 등 주요 도시 화장실 대폭 개선
농촌 지역 화장실 여건 여전히 열악

편집자주

5,000년간 한반도와 교류와 갈등을 거듭해 온 중국. 우리와 비슷한가 싶다가도 여전히 다른 중국. 좋든 싫든 앞으로도 함께 살아가야 할 중국. '칸칸(看看)'은 '본다'라는 뜻의 중국어입니다. 베이징 특파원이 쓰는 '칸칸 차이나'가 중국의 면면을 3주에 한 번씩 보여 드립니다.


지난달 17일 중국 베이징 둥청구 난션거우 후통에 위치한 한 공중 화장실 내부의 모습. 신식 좌변기가 설치된 중국 대부분의 대도시 공중화장실과 달리 쪼그려 앉아 용변을 봐야 하는 화변기가 설치되어 있다. 사실상 사방으로 뚫려 있어 용변을 보는 모습이 노출될 수밖에 없는 민망한 구조다. 베이징=조영빈 특파원

지난달 17일 중국 베이징 둥청구 난션거우 후통에 위치한 한 공중 화장실 내부의 모습. 신식 좌변기가 설치된 중국 대부분의 대도시 공중화장실과 달리 쪼그려 앉아 용변을 봐야 하는 화변기가 설치되어 있다. 사실상 사방으로 뚫려 있어 용변을 보는 모습이 노출될 수밖에 없는 민망한 구조다. 베이징=조영빈 특파원

지난달 24일 찾아간 중국 베이징 둥청구의 난션거우(南深沟) 후통(胡同). 베이징 옛 모습을 간직한 '뒷골목'을 뜻하는 후통의 역사는 800년도 더 됐다. 그중에서도 난션거우 후통은 베이징의 중심 격인 톈안먼광장 바로 맞은편 주민 거주 지역 내 깊숙한 곳에 위치한 골목이다.

중국 전통 가옥이 옹기종기 모인 길 한편 공중화장실에 들어서자 변기에 쪼그려 앉아 용변을 보고 있는 남성이 눈에 들어왔다. 별도의 '문'도 없고, 그나마 설치된 칸막이마저 높이가 1m도 채 되지 않아 화장실에 머무는 동안 남성의 '용변 장면'을 피할 길은 없었다.

그에게서 창피한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도리어 한 손에는 담배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스마트폰 동영상을 시청하는 '여유'까지 흘러넘쳤다. 이날 둘러본 난션거우 후통 내 3개의 공중화장실 모두 변기 제품만 달랐지 용변 모습이 화장실 내부 어디에나 개방된 구조라는 점은 똑같았다.

지난달 17일 둘러본 중국 베이징 난션거우 후통의 또 다른 공중 화장실의 모습. 이날 찾아간 3개의 난션거우 후통 내 공중 화장실 모두 칸막이만 설치돼 있고 별도의 '문'이 없는 개방형 구조였다. 베이징=조영빈 특파원

지난달 17일 둘러본 중국 베이징 난션거우 후통의 또 다른 공중 화장실의 모습. 이날 찾아간 3개의 난션거우 후통 내 공중 화장실 모두 칸막이만 설치돼 있고 별도의 '문'이 없는 개방형 구조였다. 베이징=조영빈 특파원

화장실에서 우연히 만난 영국인 존에게 이 같은 중국식 화장실의 인상을 물었다. 중국에 거주한 지 5년째라는 그는 "처음엔 놀랐다. 하지만 이곳도 누군가의 생활 공간이고, 여전히 이곳 주민들은 이런 화장실을 사용하고 있지 않느냐"며 "존중한다"고 했다. 그는 "(문이 없어서) 용변을 보는 사람들끼리 서로 대화하는 모습도 종종 봤다"며 "어떤 의미에선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덧붙였다.

주요 도시 화장실 "24시간 젖지 않게" 관리

존처럼 후한 평가를 주는 사람도 있지만 중국의 화장실은 원래 오랜 기간 외국인들에겐 '공포의 대상'이었다. 사생활 보호가 되지 않는 특유의 구조와 오물투성이 끔찍한 위생 상태 때문이었다. 이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15년 4월 '화장실 혁명'을 선언, 중국 전역에 걸친 화장실 위생 정비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8년이 흐른 현재 시 주석의 혁명은 성공했을까.

중국 ‘화장실 혁명’의 주요 내용. 한국일보.

중국 ‘화장실 혁명’의 주요 내용. 한국일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화장실 혁명'과 관련한 주요 발언. 한국일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화장실 혁명'과 관련한 주요 발언. 한국일보.


중국의 화장실 혁명은 지난 수년간 적잖은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화장실 혁명의 중점 사업은 기존 구식 화장실 개조와 공중화장실 신축으로 압축된다. 중국 정부는 2015년부터 3년간 최소 200억 위안(당시 기준 약 3조2,000억 원) 이상을 투입해 현대식 공중화장실 약 5만7,000개를 개조·신축했다. 이후 2020년까지 다시 3년간 6만4,000여 개의 공중화장실을 신축한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관영 차이나데일리는 "(올해 10월 기준) 정부 예산으로 지어진 공중화장실은 중국 전역에 걸쳐 37만 개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화장실 혁명 선언 이듬해인 2016년에만 4,480만 대(1년 전 대비 12% 증가)의 변기가 팔려나가는 등 한동안 변기 제조 시장도 호황이었다.

지난달 17일 중국 베이징 둥청구에 위치한 한 상가 화장실 내부 모습. 비교적 말끔한 소변기와 반짝이는 타일로 꾸며진 벽면이 눈에 띈다. "공공장소에서는 흡연을 하지 말라"는 방송도 반복해서 흘러 나오고 있었다. 다만 변기의 경우 좌변기가 아닌 구식 화변기가 설치돼 있었다. 베이징=조영빈 특파원

지난달 17일 중국 베이징 둥청구에 위치한 한 상가 화장실 내부 모습. 비교적 말끔한 소변기와 반짝이는 타일로 꾸며진 벽면이 눈에 띈다. "공공장소에서는 흡연을 하지 말라"는 방송도 반복해서 흘러 나오고 있었다. 다만 변기의 경우 좌변기가 아닌 구식 화변기가 설치돼 있었다. 베이징=조영빈 특파원

베이징·상하이·선전 등 소위 중국의 1선 도시에선 주요 도로와 거리에서 어렵지 않게 공중화장실을 만날 수 있다. '24시간 축축하지 않은 화장실'을 목표로 공중화장실마다 최소 1명의 미화원을 고용해 관리하도록 하고 있다. 공중화장실 입구에는 빠짐없이 마지막으로 청소한 시간이 적혀 있다.

가오더디투 등 주요 지도 애플리케이션도 목적지 주변 공중화장실 위치를 안내하고 있다. 앞서 둘러봤던 '후통의 개방형 화장실'은 현재로선 작정하고 찾지 않는 한 대도시에선 더 이상 보기 어려워진 게 사실이다.

지방 찾은 시진핑 "화장실은 수세식인가" 질문

지난달 18일 중국 베이징 차오양구의 한 공중화장실 좌변기 위에 부착된 안내문. "당신의 안전을 위해 정확한 자세로 앉으라"고 쓰여 있다. 그 오른쪽으로는 올바른 좌변기 사용법이 그림으로 설명돼 있다. 일부 중국인들이 여전히 좌변기가 익숙하지 않은 탓이다. 베이징=조영빈 특파원

지난달 18일 중국 베이징 차오양구의 한 공중화장실 좌변기 위에 부착된 안내문. "당신의 안전을 위해 정확한 자세로 앉으라"고 쓰여 있다. 그 오른쪽으로는 올바른 좌변기 사용법이 그림으로 설명돼 있다. 일부 중국인들이 여전히 좌변기가 익숙하지 않은 탓이다. 베이징=조영빈 특파원

물론 중국 특유의 화장실 문화 흔적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양변기 안내문'이 대표적이다. 중국 내 다수의 공중화장실에는 "당신의 안전을 위해 변기에 바르게 앉아달라"는 문구가 벽에 붙어 있다. 쪼그려 앉아 용변을 보는 화변기가 여전히 익숙한 탓에 양변기 커버 위에 발을 딛고 용변을 보는 중국인이 적지 않다는 방증이다. 또한 어린아이들이 길가 어디에서든 배변할 수 있도록 엉덩이 부분만 노출시킨 일명 '개구멍 바지(중국명 카이당쿠)'도 여전히 아동복 매장에서 팔리고 있다.

중국 온라인 쇼핑몰에서 팔리고 있는 아동용 바지. 가랑이 부분을 뚫어 놓아 어디서나 편리하게 용변을 볼 수 있도록 디자인 된 옷으로 중국에선 '카이당쿠(일명 개구멍 바지)'로 불린다. 징둥닷컴 캡처

중국 온라인 쇼핑몰에서 팔리고 있는 아동용 바지. 가랑이 부분을 뚫어 놓아 어디서나 편리하게 용변을 볼 수 있도록 디자인 된 옷으로 중국에선 '카이당쿠(일명 개구멍 바지)'로 불린다. 징둥닷컴 캡처

14억 인민이 깨끗한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시 주석의 의지는 진심인 듯하다. 2017년 11월 시 주석은 공산당 간부들에게 "화장실 문제는 결코 사소한 게 아니다. 도시와 농촌 문명 건설의 중요한 요소"라며 화장실 위생 개선 작업을 재차 독려했다. 지방 시찰 때마다 현지 가정을 방문한 자리에서 "화장실이 수세식이냐"는 질문도 항상 해왔다고 관영 매체들은 전한다.

차이나데일리는 지난달 논평을 통해 "중국 사람들은 1960~70년대의 악몽(문화대혁명) 같은 역사 탓에 혁명이라는 단어를 잘 사용하진 않지만 '화장실 혁명'은 분명히 일어났고 승리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화장실 지을 돈 빚 갚는 데 사용한 지방정부

과거 중국에서 보기 어렵지 않았던 공중화장실 모습. 수세식 변기는커녕 칸막이조차 설치돼 있지 않다. 대도시에서 이 같은 화장실은 더 이상 찾기 어려워졌지만 일부 농촌 마을에는 여전히 남아 있다. 바이두 캡처

과거 중국에서 보기 어렵지 않았던 공중화장실 모습. 수세식 변기는커녕 칸막이조차 설치돼 있지 않다. 대도시에서 이 같은 화장실은 더 이상 찾기 어려워졌지만 일부 농촌 마을에는 여전히 남아 있다. 바이두 캡처

반면 "대도시에 국한된 혁명"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중국 농촌 지역에 새로 설치된 화장실 다수가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시 주석이 수년간 강조해온 '화장실 개조 사업'을 무시할 수 없어 신식 화장실을 지었다고는 하지만 싸구려 자재를 사용한 탓에 파이프에선 물이 새고, 겨울철 배관이 얼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는 것.

최근 수년간 지방정부를 짓누르고 있는 '재정난'도 영향을 미쳤다. 허난성 소도시 링바오시 당국은 최근 수년간 주요 도로 주변 주택 철거 작업을 벌여왔다. 신식 공중화장실 설치 부지를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올해 초까지 총 40여 채의 주택을 허물었는데도 정작 공중화장실은 단 한 개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재정 부족 때문이다. 랴오닝성 선양시도 2015~20년 사이 8만 개의 공중화장실을 짓는 데 1억 위안(약 170억 원)을 지출했다. 하지만 이 중 5만여 개는 부실 공사로 제대로 사용되지 못하거나 완공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중국 지방정부 부채는 최근 수년간 중국 경제의 숨은 뇌관으로 지목될 정도로 크게 늘었다. 중국 지방정부는 소유 부지를 건설업체에 매매·임대해 재정 수입 대부분을 충당해 왔다. 하지만 '제로 코로나19' 정책이 이어진 2020~22년 3년간 부동산 경기 침체가 심화하며 자금 조달이 어려워졌다. 지난 4월 말 기준 지방정부 채무 잔액은 37조 위안(약 6,600조 원)으로 집계됐다. 이코노미스트는 "상당수 지방 당국이 화장실 지을 돈을 급한 채무를 갚는 데 사용했을 수 있다"고 짚었다.

대도시만 이룬 '깨끗한 화장실'의 꿈


문화대혁명(1966~77년) 당시 산시성 옌안의 한 농촌 마을로 하방(下方)됐던 시진핑(맨 앞) 중국 국가주석이 농기구를 어깨에 메고 농사 일에 나서고 있다. 시 주석이 '화장실 혁명'을 추진하게 된 배경에는 하방 생활 당시 농촌 지역의 열악한 화장실을 보고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많다. 바이두 캡처

문화대혁명(1966~77년) 당시 산시성 옌안의 한 농촌 마을로 하방(下方)됐던 시진핑(맨 앞) 중국 국가주석이 농기구를 어깨에 메고 농사 일에 나서고 있다. 시 주석이 '화장실 혁명'을 추진하게 된 배경에는 하방 생활 당시 농촌 지역의 열악한 화장실을 보고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많다. 바이두 캡처

실제 중국 농촌 지역 공중화장실 환경은 여전히 열악하다. 공중화장실 수 자체가 적고, 그나마 있는 공중화장실도 바닥이 흥건히 젖어 있거나 오물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채 방치된 경우가 허다하다. 오지여서가 아니라 제대로 관리할 재정 여력이 부족한 탓이 크다. 중국 관영 간행물인 스마트농업저널은 지난 7월 기사에서 "일부 지방 지역에선 재정 문제로 화장실 신축·개조 프로젝트를 중단해야만 했다"고 고백했다. 가뜩이나 도농 간 빈부 차가 심각한 마당에 '화장실 빈부 차'까지 벌어지고 있는 양상이다.

시 주석이 '화장실 위생'에 큰 관심을 두게 된 명확한 배경은 분명하지 않다. 다만 문화대혁명(1966~76년) 기간 산시성 오지에서 7년간 하방(下方·문화대혁명 당시 마오쩌둥이 지식인들을 농촌으로 강제 이주시킨 조치) 생활을 했을 당시 농촌 마을의 화장실 현실을 마주한 데 따른 충격이 '화장실 혁명' 추진의 동력이 됐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실제 시 주석은 재임 기간 유독 농촌 지역 화장실 환경 개선 필요성을 자주 언급했다. 애당초 시 주석의 목표가 도시와 농촌이 공히 깨끗한 화장실을 갖는 것이었다면 그의 혁명은 '절반의 성공'에 머물고 있는 셈이다.


베이징= 조영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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