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완다로 난민 밀어내기' 법안, 하원서 가결
수낵, 대법원 제동에도 강경 난민 정책 고수
'땅 위' 아닌 '바다 위' 머물던 난민 1명 사망
영국 보수당 정권이 사법부의 제동에도 아랑곳없이 '초강경 난민 억제'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영국으로 온 난민을 아프리카 르완다로 보내 망명 심사를 받도록 하는, 이른바 '르완다 정책'이 대법원에서 위법 판결을 받자, 이를 무력화하는 법안을 12일(현지시간) 통과시킨 것이다. 무슨 수를 쓰든, 난민 유입을 막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조짐이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정부가 육지 숙박시설 대신 물 위에 있는 바지선에 머물도록 강요한 난민 한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비인권적 난민 정책에 대한 비판 여론은 더 불붙을 전망이다.
'난민 르완다 송환'법, 하원서 가결... 수낵 '안심'
영국 BBC방송과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이날 영국 하원에선 르완다 정책 관련 법안이 찬성 313표, 반대 269표로 가결됐다. 이 법안은 △르완다가 망명 신청자에게 안전한 국가이고 △법원은 국내외 인권법 일부 조항을 무시할 수 있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이는 지난달 대법원이 르완다 정책을 '위법'이라고 판단하게 된 법적 근거를 없애는 데 목적이 있다. 당시 대법원은 ①르완다에서 망명 신청자가 비인도적 대우를 받거나 본국으로 강제 송환될 가능성이 있고, ②이런 상황에서 영국이 르완다로 난민을 보내는 건 국내외 인권법을 위배한다고 볼 소지가 있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이번 법안은 내년 초 추가 표결을 거쳐야 최종적으로 의회를 통과하게 된다. 그러나 '난민을 외국으로 보낸다'는 큰 틀을 하원이 승인했다는 사실에 리시 수낵 총리는 일단 안심하고 있다. 12일 투표 전 제1야당인 노동당은 물론, 보수당에서도 반대 움직임이 감지됐었기 때문이다. 전전긍긍했던 수낵 총리는 이에 보수당 의원들을 상대로 '추가 논의 과정에서 법안이 수정될 수 있다'며 설득에 나섰다. 심지어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 참석차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 간 보수당 의원을 불러들여 투표에 참여하도록 하기도 했다.
난민, 바지선에 태우더니... 난민 1명 배 위서 사망
보수당 정부의 이 같은 무리수는 늦어도 2025년 1월까지 총선을 치러야 하는 상황과 맞물려 있다. 수낵 총리는 지난해 10월 취임하면서 '불법 이민 최소화'를 공언한 만큼, 성과를 내는 게 무엇보다 시급하다.
그러나 부작용도 상당하다. 이날 영국 남부 포틀랜드 해안에 접한 바지선 '비비 스톡홀름'에선 20대 남성이 선박 내부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경찰 조사가 진행 중이지만, '자살'이라는 데 무게가 실려 있다. 영국 난민협의회 엔베르 솔로몬 대표는 "많은 망명 신청자가 고립감, 절망감을 호소하고 자살 충동을 느낀다"며 "이번 사망 사건에 대한 독립적 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앞서 영국 정부는 '(난민의 일시 숙소로 사용할) 호텔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며 8월부터 망명 신청자 500명가량을 배에 태웠다. 영국 안팎에서는 "목숨을 걸고 바다(영불해협)를 건너온 사람들을 바다 위에 두는 건 고문·박해나 다름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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