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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십만 원 위로금'으로 끝난 '알라딘 전자책 해킹 사태'가 남긴 질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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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십만 원 위로금'으로 끝난 '알라딘 전자책 해킹 사태'가 남긴 질문들

입력
2023.12.12 04:30
수정
2023.12.12 16:46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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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 출판사 '공급 중단' 강수 끝 7개월 만에 최종 합의
① 터무니 없이 적은 위로금 수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
② 전자책 시장 크는데 취약한 보안 논의 '걸음마 수준'
③ 디지털출판콘텐츠 '공공재' 취급하는 인식 개선 필요

한국출판산업문화진흥원 통계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국내 전자책 시장 규모는 4,620억 원으로 5년 새 3.7배 성장했다. 하지만 전자책 생태계의 핵심인 디지털출판콘텐츠를 지키고 존중하는 기술과 제도, 인식은 이에 걸맞게 변하고 있을까. 초유의 '알라딘 전자책 해킹 사태'가 남긴 질문은 그래서 묵직하다. 게티이미지뱅크

한국출판산업문화진흥원 통계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국내 전자책 시장 규모는 4,620억 원으로 5년 새 3.7배 성장했다. 하지만 전자책 생태계의 핵심인 디지털출판콘텐츠를 지키고 존중하는 기술과 제도, 인식은 이에 걸맞게 변하고 있을까. 초유의 '알라딘 전자책 해킹 사태'가 남긴 질문은 그래서 묵직하다. 게티이미지뱅크

초유의 '전자책 해킹 유출 사태'를 둘러싼 출판계와 인터넷 서점 알라딘의 갈등이 합의로 일단락됐다. 지난 5월 한 고등학생이 알라딘이 보유한 각 출판사의 전자책 약 72만 권을 해킹해 유포한지 7개월 만이다. 알라딘은 지난 7일 피해를 입은 출판사들에 위로금을 지급하기로 했고, 각계가 참여하는 재발 방지 대책 논의 기구 신설을 추진하기로 했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완벽한 '해피 엔딩'은 아니다. 디지털 저작권의 취약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고, 대형 유통 플랫폼 기업과 출판사들 사이의 힘의 불균형도 거듭 확인됐다. 출판계에 묵직한 질문을 남긴 셈이다.

7개월간 지지부진 협상... '전자책 공급 중단' 초강수까지

국내 대형 인터넷 서점 중 하나인 알라딘의 1년 매출은 4,000여억 원 수준이다.

국내 대형 인터넷 서점 중 하나인 알라딘의 1년 매출은 4,000여억 원 수준이다.

피해 규모는 정확한 산정조차 어렵다. 해킹범은 빼돌린 전자책 중 5,000권의 파일을 텔레그램 익명 대화방에 올렸다. 직접 피해를 입은 출판사가 500곳이고, 소설 '파친코' '보건교사 안은영' 등 베스트셀러도 퍼졌다. 온라인에서 쉽게 공유되고 무한 복제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전자책 파일 유출은 출판 시장에 재앙이나 다름없다.

한국출판인회의는 '전자책 불법유출 피해출판사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를 꾸리고 피해 출판사 중 140곳을 대리해 집단 대응에 나섰다. 피해 보상안을 두고 협상이 진척되지 않자 지난달 대책위는 "알라딘에 전자책 신간 공급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하는 강수를 뒀고 알라딘은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내며 맞섰다. 출판사들이 이달 1일부터 전자책 신간 공급을 중단하고 내년 2월부터는 종이책 등 모든 단행본 공급을 끊기로 하고서야 알라딘이 물러섰다.

이와 별개로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 역시 알라딘과의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유출된 유료 저작물 1,934종의 62.5%와 관련된 282개 출판사로부터 법적 권한을 위임받은 출협은 '알라딘 전자책 유출피해 조사단'을 구성해 지난 4개월 간 외부 보안업체와 함께 심층 조사를 했다. 출협 관계자는 "알라딘에 책임을 정확히 묻기 위해 피해 출판사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알라딘 전자책 유출 사태 일지. 그래픽=강준구 기자

알라딘 전자책 유출 사태 일지. 그래픽=강준구 기자


터무니없이 적은 위로금... 출판사 '울며 겨자 먹기'

지난 6월, 인터넷 서점 알라딘의 전자책 해킹으로 인해 불법 유출 피해를 입은 출판사 관계자들이 서울 마포구 한국출판인회의에서 열린 간담회에 참여하고 있다. 한국출판인회의 제공

지난 6월, 인터넷 서점 알라딘의 전자책 해킹으로 인해 불법 유출 피해를 입은 출판사 관계자들이 서울 마포구 한국출판인회의에서 열린 간담회에 참여하고 있다. 한국출판인회의 제공

대책위는 초반 협상에서 알라딘에 보상금으로 30억 원을 요구했으나, 최종 합의 액수는 이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종당 100만 원에 미달하는데, 디지털 저작권의 무한 유포라는 불가역적 피해를 입은 출판사 입장에서는 적은 액수다. 유출 피해를 입은 한 출판사 대표는 "합의 금액이 결코 많다고 할 수는 없으나 그렇다고 큰 거래처인 서점을 망하게 할 순 없어서 수용했다"고 말했다.

출판업계는 '플랫폼이 책임을 지는 선례를 남겼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한다. 이를 거꾸로 보면,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를 입고도 개별 보상을 받았다는 사실에 만족해야 할 정도로 출판사들의 처지가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알라딘에 유출 의도가 없었고 △정확한 피해 규모를 산출하기 어려워 법적 싸움도 불리하다는 전망이 많았다. 표정훈 출판평론가는 "이번 사태가 앞으로 유사한 형태로 재발될 가능성이 충분하므로 '보상이 이뤄졌다'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협상을 이끈 이광호 한국출판인회의 회장(문학과지성사 대표)은 "싸움이 지난해지면 출판사와 서점 양측에 큰 피해를 입힐 것이라는 생각에 출판계가 강력한 대오를 유지하면서도 길게 가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고 설명했다.

전자책 시장 무럭무럭 자라는데... 제도적 논의 이제 첫걸음

'디지털 저작권 관리(DRM)'는 디지털 콘텐츠에 대한 접근과 복제를 제한하는 핵심 보안 기술이다. 리디 제공

'디지털 저작권 관리(DRM)'는 디지털 콘텐츠에 대한 접근과 복제를 제한하는 핵심 보안 기술이다. 리디 제공

한국출판산업문화진흥원 통계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국내 전자책 시장 규모는 4,620억 원으로 5년 새 3.7배 성장했다. 전자책 스타트업 '리디'는 기업 가치가 1조 원을 훌쩍 넘는다. 전자책 생태계의 근간이 되는 저작권을 지키는 노력은 선행되고 있을까.

이번 사태의 핵심은 서점마다 제각각인 '디지털 저작권 관리(Digital Rights Management, DRM)'였다. DRM은 허가된 사용자만 디지털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게 하는 보안 기술인데, 서점이나 도서관 등이 자체 개발해 쓰면서 취약점이 발생한다.

알라딘 전자책 해킹범은 알라딘의 DRM을 해제할 수 있는 문자키인 '복호화키'를 얻어 범행을 저질렀다. 같은 방식으로 예스24도 복호화키가 유출된 것으로 알려져 전자책에 대한 취약한 보안은 사실상 업계 전반의 문제였다. 서울시 전자도서관에서도 유사한 취약점이 발견돼 올 초 보안을 강화했다.

이에 합의안에 재발 방지에 대한 기술적인 노력을 하고 출판 산업의 여러 주체가 함께 대책을 논의하는 기구를 만드는 내용이 들어간 것은 의미가 적지 않다. 양측은 출판계, 서점계, 정부, 공공기관이 참여하는 '디지털출판콘텐츠 불법유통 근절 협의체'(가칭)를 구성하자는 데 일단 공감대를 이뤘다.

전자책은 공공재 아냐... 귀중한 지적재산 존중하는 문화 필요

콘텐츠를 이용할 때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상식으로 통하지만, 책은 '공짜 공공재'로 여겨지는 경향이 크다. 전자책의 저작권을 보호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시급한 이유다.

올해 7월 교육부는 예스24의 전자책 무료 구독 서비스인 '이북드림(e-북드림)'을 출판사와 협의 없이 확대해 논란을 빚었다. 전국의 청소년과 교원들이 전자책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사업으로, 예스24의 전자책 플랫폼 '크레마클럽'을 이용하면 1만4,000여 종의 단행본 전자책을 볼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최대 5권이었던 대출 권수를 무제한으로 풀어버리면서도 교육부와 예스24는 출판사나 저작권자와 상의하지 않았다. 지난해에는 출판유통기업 웅진북센이 국립국어원의 '말뭉치 구축사업'에 참여하면서 1만6,000여 종의 전자책 저작권을 무단 사용하기도 했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는 "저작물은 출판사에는 생명이나 마찬가지인 재산"이라며 "사업자, 도서관, 공공사업 주체 등이 매뉴얼·계약서에 보안 관련 내용을 담아서 알라딘과 유사 사태가 발생했을 때 충분한 보상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보안을 강화하거나 정부에서 표준 DRM을 구축하는 것이 작은 불안을 해소하는 효과는 있겠지만, 세계적인 추세는 해킹한 콘텐츠를 사용했을 때 수치심을 안기는 방식으로 사회적 압박을 주는 '소셜 DRM'"이라며 이용자들의 인식 변화를 강조했다.

이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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