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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 '캡슐커피제국'의 암투... '이 배우'가 상쇄했다

입력
2023.12.09 04:3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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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캡슐 커피 네스프레소의 역사

편집자주

※이용재 음식평론가가 흥미진진한 역사 속 식사 이야기를 통해 ‘식’의 역사(食史)를 새로 씁니다.

미국 할리우드 스타 조지 클루니의 네스카페 광고 속 모습. 네스카페 유튜브 영상 캡처


커피 원두를 볶고 있는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발견 자체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사건이라 할 수 있는 커피는 1900년대 초반에 다시 한번 큰 변화를 겪는다. 1903년 베네치아의 사업가인 루이지 베제라가 한 잔씩 추출하는 에스프레소 머신을 발명한 것이다. 뜨거운 물로만 커피 원두의 맛과 향 성분이 깃든 기름을 우려냈었던 종전까지의 방식과는 달리 압력으로 좀 더 압축된 정수를 추출하는 게 에스프레소의 핵심이었다.

많은 커피 애호가가 에스프레소만으로도 충분하다며 만족할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커피는 1980년대 말 또 한 번의 크나큰 변화를 겪는다. 에스프레소와 흡사하게 크레마(황갈색 미세한 거품층)가 올라간 한 잔의 커피를 추출해 주는 캡슐 커피 시스템이 등장한 것이다. 맛과 향을 엄밀히 비교하자면 에스프레소와 사뭇 결이 다르지만 캡슐 커피 시스템은 이를 갈음하고도 남는 간편함을 강점으로 내세운다.

영국 런던의 바에선 1954년부터 가찌아의 머신을 이용해 에스프레소를 팔기 시작했다. 가찌아 홈페이지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사업가였던 루이지 베제라가 발명한 에스프레소 머신의 모습. 베제라 홈페이지


에스프레소→캡슐 커피, 두 번째 격변

캡슐 커피의 시초는 '네스프레소'다. 그 역사는 이렇게 시작됐다. 1975년 다국적 식품 기업 네슬레의 스위스 본사 에릭 파브르가 입사한다. 농업 발명가의 아들인 덕분에 파브르는 잘하면 발명도 돈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포장 사업부에 입사해 연구 개발 및 홍보 판매 부서 양쪽과 교류하며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그가 네슬레에서 일하기 시작했던 1970년대는 즉석커피의 시대였다. 우리에게도 너무나도 익숙한 동결 건조 커피, 특히 네슬레의 ‘네스카페’ 브랜드는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현실 속에서도 파브르는 이탈리아인 아내 안나마리아 덕분에 에스프레소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맛있는 에스프레소를 집에서 간편하게 추출해 마실 수는 없을까. 이 호기심의 답을 찾아내기 위해 그는 아내와 함께 이탈리아로 커피 여정에 나선다. 그리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시음한 결과 로마의 카페 ‘산에우스타키오’의 에스프레소가 가장 맛있다는 결론을 내린다. 이후 단골이 되어 계속 매장을 들락거리며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직원들에게 질문도 하던 어느 날, 그는 한 바리스타의 커피 추출 광경을 보고 깨달음을 얻는다. 에스프레소 추출의 핵심인 압력 레버를 여러 번에 나누어 당기는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에스프레소를 내리는 모습. 로마=AFP 연합뉴스


이탈리아에서 찾은 깨달음

'아, 저렇게 레버를 여러 차례 나눠 당겨주면 물이 스치고 간 커피 원두를 스치고 지나가기 전에 최대한 공기를 불어넣어 줄 수 있겠지.' 더불어 공기의 20%는 산소이므로 원두 속의 맛과 향을 품은 기름이 산화되어 좀 더 빠르게 추출될 수 있을 것이란 생각까지 미쳤다. ‘공기+물+커피 기름=에스프레소’라는 공식을 떠올린 깨달음이었다.

이탈리아에서 얻은 깨달음을 바탕으로 그는 개발에 착수했다. 추출을 위한 기기만큼이나 맛과 간편함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시스템이 중요했다. 이는 간 원두뿐만 아니라 커피 추출을 위한 필터와 멤브레인(막)을 내장한 캡슐로 압축됐다. 개발 초창기에 캡슐은 중산모를 닮은 반구형이었으나 곧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형태로 변경됐다.

시대를 너무 앞서가는 선구자는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파브르 또한 그러했다. 당시 동결 건조 커피 네스카페는 너무나도 잘 팔리고 있었다. 네슬레는 파브르의 새로운 커피 시스템과 비전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 탓에 처음 특허를 낸 지 10년이 지난 1986년에 이르러서야 네스프레소 브랜드와 캡슐 커피의 출범을 승인했다.


10년 뒤에나 세상에 나왔지만... 네스프레소의 고전

무려 10년이나 걸려 뒤늦게라도 승인을 받았으니 출범과 동시에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네스프레소는 고전했다. 커피 시장은 그렇게 녹록지 않았다. 그 시장을 뚫기 위해 네스프레소도 전력을 현명하게 짜지 못했다. 일단 추출 기기의 덩치가 너무 컸고 디자인도 매력적이지 못했다. 기업용으로 초점을 맞춘 것 또한 판단 착오였다.

제대로 된 호응을 끌어내지 못해 퇴출 위기에 처한 네스프레소에 1988년 장 폴 가이야르가 합류한다. 가이야르는 원래 담배 홍보 전문가로 필립모리스에서 의류 브랜드 말보로 클래식스를 출범시킨 인물이다. 네스프레소가 존폐 위기에 처해있음을 감지한 가이야르는 바로 네스프레소의 이미지 쇄신에 착수한다.

“나는 네스프레소를 커피계의 샤넬 같은 브랜드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시크하게 말이죠.” 가이야르는 와인 산업에서 실마리를 얻어 네스프레소를 럭셔리 브랜드로 새 단장했다. 일단 기기의 가격을 내리는 한편 생산은 전문 업체에 하청을 맡겼다. 곧 커피 추출기 생산 기업인 터믹스에서 추출 기기가 등장했고 이후 크럽스나 알레시 등 또 다른 기업들도 그 시장에 가세했다. 네스프레소는 이들 브랜드의 친숙함을 등에 업고 유럽의 지역 시장에 수월하게 진출할 수 있었다.

가이야르는 캡슐에도 변화를 주었다. 원 디자인의 알루미늄 양을 대폭 줄이는 한편 가격은 50% 올렸다. 생산하는 데 전기를 많이 잡아먹는 알루미늄은 네스프레소의 최대 약점이었다. 알루미늄은 무한정 재활용이 가능하지만 그것을 제대로 활용하는 데는 현실적으로 제약이 따랐다. 현재 재활용 알루미늄을 80% 활용한 캡슐을 내놓고 있지만 정작 캡슐 자체의 재활용률은 아직까지도 30%대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그냥 버려진다는 얘기다.

네스프레소 커피 이미지. 네슬레 제공


커피를 삶의 일부로... 그 변화의 내전


이런 기술적 성장통을 거쳐 네스프레소는 기업보다 개인을 주 소비자층으로 겨냥하기 시작했다. 네스프레소가 단순한 커피가 아닌 삶의 한 방편으로 자리 잡기를 바라는 전략이었다. 그렇게 ‘네스프레소 클럽’이 출범했다. 소비자가 캡슐을 구매하면서 제공한 개인정보는 구매 습관 등 홍보에 필요한 전략을 수입하는 데 쓰였다. 투명 잔에 커피를 담아 크레마를 강조하는 이미지 또한 가이야르의 작품이었다.

가이야르가 몰고 온 변화 덕분에 네스프레소는 드디어 상업적 궤도에 올라서기 시작했다. 어쩌면 파브르도 간절하게 바라왔었던 네스프레소의 성공이었지만 그는 행복할 수 없었다. 발명가인 자신의 공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 그를 가이야르는 오늘날까지도 ‘기술자에 불과했던 인물이고 내가 네스프레소라는 브랜드를 만들었다’고 폄하하고 있다.

가이야르와 반목을 겪은 끝에 파브르는 결국 네스프레소를 떠난다. 파브르는 이를 ‘쿠데타에 의한 퇴출’, 가이야르를 ‘악마’라 칭하며 날을 세웠다. 네스프레소에 얽힌 공적을 모두 거머쥐려 했었던 가이야르 또한 네슬레에 천년만년 머무르지는 못했다. 1997년 가이야르는 네스프레소를 떠나 미국 지사로 옮겨갔다가 최고경영자와 갈등을 겪고 네슬레를 떠난다. 오늘날 네슬레와 네스프레소에서 가이야르의 자취는 거의 지워지고 찾아보기 어렵다.

네스프레소 광고 속 할리우드 스타 조니 클루니(왼쪽)의 모습. 네스프레소 유튜브 영상 캡처


조지 클루니, 네스프레소의 전성기

네스프레소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영화배우 조지 클루니를 빼놓을 수 없다. 가이야르 덕분에 네스프레소가 궤도에 올라설 수 있었지만 브랜드로서의 완성은 클루니의 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적이면서도 우아한 한편 소탈하고 그러면서도 윤리적으로도 올바른 그의 이미지가 네스프레소에도 성공적으로 덧씌워졌다. 그가 2006년 모델을 맡고 나서 캡슐 커피는 커피 시장 자체에 비해 5배나 더 빨리 성장했다. 오늘날 클루니는 일부 나라에서 배우보다 네스프레소의 광고 모델로서 더 유명하다.

클루니의 광고를 통해 네스프레소는 전 세계적으로 확고한 이미지를 쌓아 올렸지만 정작 그의 모국인 미국 시장을 확실하게 정복하지 못했다. 미국의 커피 문화에는 나름의 독특한 구석이 있었다. 간 원두를 필터에 담고 뜨거운 물을 부어 내린 드립 커피를 물처럼 즐겨 마셔왔기 때문이다. 특히 스타벅스가 대중화되기 전까지 적은 양의 에스프레소를 모사한 커피의 입지는 가정용으로는 매우 좁았다.

그런 현실 속에서 미국에서는 자국의 브랜드인 큐리그가 드립 커피를 내려주는 캡슐 시스템으로 시장을 선점했다. 네스프레소와 달리 플라스틱 캡슐을 쓰는 큐리그는 인수 합병을 통해 닥터페퍼 그룹의 일원으로 거듭나 막대한 브랜드 파워로 미국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해 왔다. 하지만 네스프레소도 2012년 드립 커피처럼 많은 양을 내려주는 ‘버츄오’ 시스템을 출시함으로써 대응을 시작했고 이후 시장의 격차를 조금씩 줄여 왔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시장의 중심축으로 떠오를 Z세대의 구미에 더 잘 부응하는 브랜드가 향후 시장의 우위를 점할 거라 내다보고 있다.

음식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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