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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오랑 소령의 '아주 특별한' 출연

입력
2023.12.03 16: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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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서울의 봄'에서 정해인(왼쪽 사진)이 연기한 특전사령관 비서실장 오진호(왼쪽)는 김오랑 소령(훗날 중령 추서)을 모델로 삼았다.

'서울의 봄'에서 정해인(왼쪽 사진)이 연기한 특전사령관 비서실장 오진호(왼쪽)는 김오랑 소령(훗날 중령 추서)을 모델로 삼았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기폭제가 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다룬 영화 ‘1987’엔 김윤석, 하정우 등 주인공 외에 명품 배우가 대거 특별출연한다. 그중 가장 돋보인 배우를 꼽으라면 단연 강동원일 것이다. 김태리가 분한 ‘연희’를 시위 현장에서 구해주는 잘생긴 남학생이 얼굴의 두건을 내렸을 때 극장 여기저기서 놀람의 탄성이 쏟아졌다. 그가 분한 배역이 이한열 열사라는 것 또한 반전에 가까웠다.

□특별출연은 감독과 배우의 친분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종종 우정출연이라 하는 것도 그래서다. 영화 개봉 전까지 출연진 목록에 공개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1987’의 강동원처럼 관객에게 깜짝 선물이 되기도 한다. 톱스타 전도연이 영화 ‘백두산’에 단역인 이병헌 아내 역으로 깜짝 출연한 것은 “감독과 밥을 먹다 호기로 ‘내가 뭐라도 해줄게’라고 뱉은 말 때문이었다”고 한다.

□침체돼 있던 극장가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는 영화 ‘서울의 봄’에도 전두광(황정민), 이태신(정우성) 등 주인공 못지않게 강렬한 눈길을 끄는 배역이 있다. 특별출연한 배우 정해인이 연기한 오진호 소령이다. 12∙12 군사 쿠데타 당시 반란군이 들이닥친 육군 특전사령관실에 유일하게 남아 사령관을 지키려다 전사하는 역할이다. 영화에서 사령관 지시로 부하들이 모두 떠나지만 그는 “혼자 계시면 적적하지 않겠느냐”며 끝까지 곁을 지켰다. 오 소령의 실제 모델은 당시 정병주 특전사령관 비서실장이던 김오랑 소령(1990년 중령 추서)이다.

□김성수 감독은 드라마 ‘D.P.’ 속 정해인 연기에 감동을 받아 지인을 통해 특별출연을 성사시켰다고 한다. 영화는 그의 죽음까지만 담고 있지만 사후 주변 인물의 삶도 비참했다. 시신경 질환을 앓던 부인 백영옥은 남편 죽음의 충격으로 실명한 채 힘든 삶을 살다 석연찮은 ‘실족사’로 떠났고, 그가 목숨으로 지켜냈던 정병주는 쿠데타 부당성을 주장하다 1988년 야산에서 의문사했다. 영화는 잠깐 스치듯 전하지만, 그날 밤 김오랑 외에 반란군에 끝까지 맞서 싸우다 전사한 정선엽 병장도 있었다. 그들조차 없었으면 그날의 역사는 더욱 암흑 같았을 것이다. 영화에서만이 아니라 현대사 속에서도 주인공은 아니었을지언정 아주 특별했다고, 매우 감사하다고 전한다.

이영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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