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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은 냄새에 보기도 흉한"... 굴 1번지의 '잿빛 동산'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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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은 냄새에 보기도 흉한"... 굴 1번지의 '잿빛 동산' 정체

입력
2023.11.28 04:30
수정
2023.11.28 21:16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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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취 몸살, 굴 천국]
굴 껍데기 처리 골머리
바다에 버리지만 한계


23일 경남 통영의 한 굴 작업장에서 굴 채취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통영=변태섭 기자

23일 경남 통영의 한 굴 작업장에서 굴 채취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통영=변태섭 기자

23일 경남 통영시 광도면에 위치한 굴 작업장. 엄청난 양의 굴이 여러 그물에 한가득 쌓여 있었다. 그 뒤 스테인리스 작업대 양옆으로 줄지어 선 여성 80명이 분주하게 손을 놀렸다. 채취한 생굴은 작은 바구니에 모으고, 굴 껍데기는 작업대에 달린 구멍으로 밀어 넣었다. 커다란 작업장에 굴이 머금은 ‘바다 내음’이 가득했다.

굴 껍데기는 작은 컨베이어 벨트를 통해 작업장 밖으로 운반된 다음 파쇄됐다. 야적장에 쌓기 위해서다. 부서진 굴 껍데기를 덤프트럭에 싣는 과정을 지켜보던 직원 김종대씨는 “처리할 방법이 마땅치 않아 아주 골칫거리”라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난달부터 굴 까기 작업을 시작한 이곳에선 매일 수십 톤의 굴 껍데기가 나온다. 그는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야적장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차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악취가 난다고 시청에 민원을 넣는 경우도 잦아요. 보기도 흉하고···.”

23일 경남 통영 소재 굴 작업장의 직원이 분쇄를 위해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이동 중인 굴 껍데기를 바라보고 있다. 통영=변태섭 기자

23일 경남 통영 소재 굴 작업장의 직원이 분쇄를 위해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이동 중인 굴 껍데기를 바라보고 있다. 통영=변태섭 기자

야적장에는 성인 남성 키 높이의 ‘굴 무덤’ 10여 개가 있었다. 300톤 안팎의 굴 무덤에선 굴 껍데기에 있는 유기물이 부패하면서 ‘썩은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김씨는 “굴 수확기가 끝나면 처리하지 못한 굴 껍데기가 더 많이 쌓일 테고, 따뜻한 봄부턴 부패도 더욱 빨리 진행돼 악취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곳뿐 아니라, 해안선을 따라 들어선 굴 작업장마다 굴 껍데기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중국에 이어 세계 2위인 굴 생산량의 70~80%를 책임지는 통영이 굴 껍데기 처리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재활용 방안이 마땅치 않아 현재는 바다에 일부 버리는 식으로 급한 불만 끄고 있다. 수산물 소비량이 늘면서 발생하는 수산부산물도 급증하고 있어 이를 자원화‧재활용할 수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국민 1인당 수산물 소비량은 2000년 36.7㎏에서 2021년 68.4㎏까지 확대됐다. 수산물의 생산→유통→가공 단계에서 뼈‧지느러미‧내장‧껍데기 등 다양한 부산물이 나오지만 상당 부분은 폐기된다. 재활용한 수산부산물(21만8,000톤‧2020년 기준)은 발생량의 19.5%에 그친다. 사업장폐기물 재활용률(84.3%)과 비교하면 매우 저조한 수치다. 그중에서도 패류(조개류) 부산물의 재활용률(19.4%)은 어류(25.1%), 갑각류(23.0%)와 비교하면 가장 낮다.

수산부산물 연간 발생 현황. 그래픽=신동준기자

수산부산물 연간 발생 현황. 그래픽=신동준기자


실제 이날 방문한 통영 도산면 소재 한 비료제조업체 야적장에는 파쇄한 굴 껍데기가 10년 넘게 쌓여 수십 m 높이의 ‘잿빛 동산’을 이루고 있었다. 악취 민원 등으로 매년 쏟아져 나오는 굴 껍데기를 굴 작업장 인근에 둘 수 없게 되자, 굴 껍데기로 비료를 만드는 재활용업체가 처리량을 웃도는 물량을 떠안은 결과다.

그마저도 포화 상태에 이르러 2020년부터 통영 내 재활용업체에 굴 껍데기 반입이 금지됐다. 현재 통영은 인근 고성군 재활용업체에 넘기거나 해양 투기를 활용, 굴 껍데기 처리에 나서고 있지만 역부족인 상황이다. 통영 등 전국에서 나오는 굴 껍데기는 매년 25만~30만 톤 안팎이다.

최재석 경상대 해양식품공학과 교수는 “정부가 굴 껍데기를 건축자재‧매립재로 재활용할 수 있도록 관련 기준을 완화하거나, 껍데기의 주성분인 칼슘을 활용한 고부가가치 상품을 개발하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윤웅 한국수산부산물자원화협회장은 “제철소에서 쓰는 수백만 톤의 석회석 중 5%만 대체해도 굴 껍데기 처리 문제의 상당 부분을 해결할 수 있다”며 “포스코‧현대제철과 사용 확대 등에 대해 논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굴 껍데기의 90% 이상은 석회석과 같은 탄산칼슘으로 구성돼 있다.

정부도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하고 굴 껍데기 재활용을 위한 전처리 시설을 지원하고 있다. 이와 함께 굴 껍데기를 공유수면 매립재로 쓸 수 있도록 법령 개정도 준비 중이다. 강미숙 해양수산부 양식산업과장은 “굴 껍데기 재활용 유형을 늘리고, 판로를 확보해 재활용 활성화를 도모하겠다“고 말했다.


통영= 변태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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