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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가 배상하라"... 이제야 활짝 웃은 이용수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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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가 배상하라"... 이제야 활짝 웃은 이용수 할머니

입력
2023.11.23 18:55
수정
2023.11.23 22:32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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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법, 일본정부 위안부 책임 인정]
2심 "국가면제 적용 불가, 한국 관할 인정"
일본 정부, 윤덕민 대사 초치 등 즉각 반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23일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대회의실에서 열린 일본 상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 1심 패소 취소 판결 결과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조용선 민변 회장으로부터 꽃다발을 받은 뒤 미소 짓고 있다. 뉴시스

"1심 판결을 취소한다. 일본 정부(피고)는 피해자(원고)에게 별지 목록에 따른 청구금액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

23일 서울고법 민사33부(부장 구회근) 재판장이 주문(판결의 결론)을 읽자, 법정에선 '헉' 하는 반응과 함께 환호성이 터졌다. 일본 정부가 일제강점기 당시 위안부의 피해를 책임져야 한다는 첫 번째 항소심 판결이 나온 순간이었다. '한국 법원이 일본의 주권행위를 재판할 수 없다'는 법리를 깨고 나온 판결에, 이용수(95) 할머니의 얼굴에도 오랜만에 웃음꽃이 피었다. 이 할머니는 2007년 미국 하원에서 피해 사실을 처음 알리며 위안부 문제를 국제적 이슈로 만든 이다.

이날 서울고법 재판부는 위안부 피해자 이 할머니와 다른 피해자 유족들이 2016년 12월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각하 판결한 1심을 깨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각하는 소송이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 재판부가 본안을 심리하지 않고 재판을 끝내는 것. '재판할 사안이 되지 않는다'고 본 1심과 달리, 항소심은 "한국 법원이 일본 정부를 당사자로 하는 손해배상 소송의 재판을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1심의 핵심 논리는 '주권국가가 다른 나라 법원에서 재판받지 않는다'는 국가면제 법리였는데, 항소심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항소심은 "국가면제와 관련한 국제법 체계가 개인의 재판청구권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이행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유엔 국가면제협약과 해외 입법·판결 등을 비춰보면 '사망이나 상해를 야기하는 등의 불법행위'에 관해서는 가해국의 국가면제를 인정하지 않는 내용이 다수 확인된다"는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뒤 두 손을 높이 들어 올리며 기뻐하고 있다. 뉴스1

일본 정부의 행위가 한국 법원의 판단 대상이 된다고 전제한 재판부는 더 나아가 실체적 판단을 통해 '일본 정부에 배상 책임이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위안부 피해자들은 매일 수십 명의 일본 군인들로부터 원치 않는 성행위를 강요당해 무수한 상해를 입거나 임신·죽음의 위험까지 감수해야 했으며, 종전 이후에도 정상적 사회생활에 적응할 수 없는 손해를 입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일본제국 공무원들은 일본의 옛 형법에서 금지하는 '국외 이송 목적 약취·유인·매매' 행위를 했는데, 정부가 이를 적극적으로 조장하거나 방조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배상금은 피해자당 2억 원씩으로 책정됐다. 재판부는 "피해자 1명당 위자료(정신적 손해배상금)는 2억 원을 초과하는 게 타당하다"고 했지만, 현행법상 원고가 청구한 금액을 초과해 선고할 수는 없었다.

1심 판결 당시 "너무 황당하다"고 토로했던 이용수 할머니는 2심 승소 직후 법정 밖에서 두 팔을 연신 들면서 눈물을 흘렸다. 이 할머니는 "일본이 빨리 공식 사죄를 하고 법적인 배상을 해야 한다"고 기뻐했다. 양현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피식민 경험이 있는 약소국들은 항소심 판결 같은 논변을 기다려왔다"며 "세계적으로 피해 구제를 선도할 수 있는, 피해자 회복의 초석이 될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판결과 별도로 실제 배상금을 받기는 쉽지 않다. 일본 정부는 2021년 1월 '배춘희 할머니(별세) 등 위안부 피해자 11명에게 1명당 1억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확정받고도 지금껏 배상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피해자들은 배상금을 받기 위한 강제집행 절차에 돌입했지만 일본 정부는 관련 서류를 송달받지 않는 등 전혀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이 소송 역시 피고가 일본 정부여서 강제징용 판결(전범기업이 피고)처럼 자산 압류 등을 통해 배상을 강제하는 것이 어렵다. 국내에 있는 일본 정부의 외교공관 등은 외교관계 관련 국제법인 비엔나 협약에 따라 매각을 강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21일(현지시간) 기자들에게 북한의 3차 군사위성 발사 계획을 이야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 정부는 이날 판결 소식이 알려지자 즉각적으로 반발했다. 오카노 마사타카 외무성 사무차관은 윤덕민 한국 대사를 초치해 "판결은 극히 유감이며 일본 정부로서는 결단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또, 일본 외무성은 가미카와 요코 외무상 명의의 담화문을 통해 "이 판결은 국제법 및 양국 간 합의에 위배되는 것"이라며 "(한국에) 국가로서 스스로 책임을 다해 즉시 국제법 위반 상태를 시정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강구하도록 재차 강하게 요구한다"고 밝혔다.


박준규 기자
도쿄= 최진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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