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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라니에 미안해해야 하는데 우리는 오히려 미워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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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라니에 미안해해야 하는데 우리는 오히려 미워하죠"

입력
2023.11.23 09:0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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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라니 초상을 담은 사진집 '이름보다 오래된' 펴낸 문선희 작가


문선희 작가가 서울 중구 일우스페이스에서 열린 고라니 사진전에서 자신의 작품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문선희 작가 제공

'고라니' 하면 농작물을 먹어 치우는 골칫덩이나 찻길사고(로드킬)에 희생되는 또는 찻길사고를 유발하는 존재로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사람에 의해 연간 20만 마리 이상이 희생된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얼마나 될까. 그래도 될 만큼 고라니의 수가 많고 농민들이 받는 피해가 클까.

우연히 찻길에서 만난 고라니에 매료돼 고라니 파고들기에 나선 이가 있다. 구제역과 조류독감 매몰지를 기록한 사진집 '묻다'로 정부의 방역대책과 살처분 정책을 비판했던 문선희(44) 작가다. 문 작가는 서울 중구 일우스페이스에서 가진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처음에는 고라니로부터 영감만 받으려고 시작했다"며 "하지만 파고들수록 고라니 관련 정책의 부조리함을 알게 됐고, 나라도 이를 알려야겠다는 다짐이 들었다"고 밝혔다. (☞관련기사: 농작물 1만5000원어치 먹었다고 수렵되는 비운의 동물, 고라니)

서울 중구 일우스페이스에서 열린 문선희 작가의 고라니 사진전. 고은경 기자

문 작가가 2013년부터 10년에 걸쳐 지역 야생동물센터와 국립생태원 등에서 촬영한 고라니 50여 마리의 얼굴은 최근 발간한 사진집 '이름보다 오래된'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관련기사: '멸종위기종'이자 '유해야생동물'인 고라니에게 물었다 ... "너의 이름은") 문 작가는 이 작품으로 2023년 일우사진상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했고, 최근까지 일우스페이스에서 고라니 사진전을 열었다.

문 작가는 몸을 낮춰 우연히 눈을 마주치게 된 고라니의 얼굴을 보고 그 고유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면서 이를 사진에 담기로 했다. 그는 "고라니의 얼굴이 각각 다르다는 점, 그리고 다를 것이라고 상상조차 못 했다는 점에 충격을 받았다"며 "이 얼굴들을 사람들에게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으로 작업에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문선희 작가가 서울 중구 일우스페이스에서 열린 고라니 사진전에서 자신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고은경 기자

하지만 고라니 촬영이 쉽지만은 않았다. 야생동물은 본능적으로 사람과 눈을 마주하는 것을 피하는 습성이 있어서다. 여기에 수풀이나 갈대 속에 있는 고라니의 얼굴을 온전하게 촬영하는 것도 과제였다. 이를 위해 문 작가는 고라니가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할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는 "사람이 고라니를 바라보는 시선이 아니라 고라니가 우리를 바라보고 직접 말하는 느낌을 전달하고 싶었다"고 했다.

문 작가는 보는 이들을 온전히 고라니의 얼굴에만 집중시키기 위해 사진의 배경을 과감하게 지웠다. 이와 더불어 흑백으로 보정하고, 고라니 얼굴의 각기 다름을 보여주기 위해 신부화장을 해주듯이 털 한 올 한 올까지 세심하게 작업했다고 한다.

고라니의 영문 이름은 물 사슴(Water Deer)이다. 물을 좋아해 습지, 강가 등에 주로 살며 수영도 곧잘 한다. 문선희 작가, 가망서사 제공


국제적 멸종위기종이지만 농작물을 먹어 치운다는 이유로 지난해에만 15만 마리의 고라니가 포획으로 희생됐다. 문선희 작가, 가망서사 제공

문 작가는 사진촬영에 그치지 않고 고라니 실태와 정책에 대해서도 조사했다. 이를 통해 그는 2015년부터 현상금으로 지급된 비용이 고라니로 인한 농작물 피해액보다 많다는 점을 발견해내기도 했다. 그는 "고라니의 개체 수에 대한 정확한 통계조차 없는 상황에서 고라니를 너무 쉽게 포획하고, 죽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우리는 고라니에게 미안해해야 하는데 오히려 미워하게 된 것 같다"며 "지금이라도 현재의 정책이 맞는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은경 동물복지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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