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살림 흔드는 예산 증액 요구]
재정준칙 도입 땐 예산 증액 견제
여야 모두 처리 미온적, 뒷전으로
국회 상임위원회가 각종 내년도 예산안 사업을 증액하고 있으나 이를 측면 견제할 재정준칙 입법화는 감감무소식이다. 보수, 진보 모두 공감하고 있는 재정준칙은 국회 논의로만 넘어오면 뒤로 밀리기 일쑤다. 박근혜 정부, 문재인 정부에서 무산됐던 '재정준칙 흑역사'가 윤석열 정부에서도 이어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20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재정준칙을 담은 국가재정법 개정안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경제재정소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여야가 지난해 9월 국회에 올라온 재정준칙을 두고 1년 넘게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는 뜻이다.
재정준칙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 관리재정수지 적자를 각각 60%, 3% 이내로 묶는 게 골자다. 정부가 나랏빚 확대를 수반하는 국채 발행으로 재정을 함부로 쓸 수 없도록 제어하는 장치다.
두 지표 모두 확장 재정, 코로나19 대응에 많은 예산을 쓴 문재인 정부 시기 크게 올랐다. 국가채무비율은 2018년 35.9%에서 내년 51.0%(전망)로 뛴다.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는 2018년 0.6%에서 2022년 5.4%까지 치솟았다가 내년 3.9%로 다소 내려간다.
재정준칙을 도입하면 정부는 매년 이듬해 예산안 규모를 제한적으로 늘릴 수밖에 없다. 이에 더해 지금처럼 국회가 던지는 '예산 증액 폭탄'을 방어하는 간접 효과도 기대된다. 여야가 예산을 늘리거나 새로 끼워 넣는 과정에서 정부 찬성을 거쳐야 하는 '증액 동의권'에 힘을 실어줘서다. 정부가 국회 요구대로 이듬해 예산을 늘렸다간 재정준칙을 어기기 쉬우니 자제해 달라고 맞설 수 있는 식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국회 상임위의 예산 증액 요구가 전체 예산 총량을 확대해야 한다는 압박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재정준칙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재정준칙은 올해 초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도 보였다. 기재위 경제재정소위가 3월 재정준칙을 심의하던 중 여야 모두 수긍할 수 있는 법안 수정안을 기재부에 제출해 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이 경제재정소위에서 사회적경제법을 함께 처리할 것을 주장하면서 재정준칙은 표류하기 시작했다. 민주당에만 책임을 묻기도 어렵다. 국민의힘 역시 재정준칙 필요성을 수차례 '말'로 강조한 것과 달리 법안 추진을 위한 '행동'에는 적극적이지 않아서다.
이에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재정준칙이 박근혜 정부, 문재인 정부 때처럼 폐기 수순에 들어갔다는 관측도 나온다. 박근혜·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했던 재정준칙 입법화 역시 국회에서 뒷전으로 밀렸다. 재정준칙은 당장 표심을 자극하지 않는 중장기 과제인 탓에 여야 모두 미온적이었다. 여야가 재정준칙을 무산시킨 공범인 셈이다.
연관기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