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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도 학대'.. 이젠 법적으로도 인정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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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도 학대'.. 이젠 법적으로도 인정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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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2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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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주의 '동물복지 이야기'

경기 의왕시 외부에서 길러지고 있는 개가 처량하게 앉아 있다. 짧은 목줄에 묶여 비를 피할 곳이 없지만 현행법 상 소유자를 동물학대로 처벌할 수 없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제공

경기 의왕시 외부에서 길러지고 있는 개가 처량하게 앉아 있다. 짧은 목줄에 묶여 비를 피할 곳이 없지만 현행법 상 소유자를 동물학대로 처벌할 수 없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제공

동물보호단체에게 접수되는 동물학대 신고 중 상당수는 ‘소유자가 있는데 동물은 방치되고 있다’는 내용이다. 대상은 주로 야외에서 길러지는 개들이다. 동물이 처한 상황도 대동소이하다.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짧은 길이의 줄에 묶여 있거나, 닭장이나 작은 상자에 가둬 기르거나 그마저도 없이 영하의 날씨에 야외에서 기른다는 사연도 있다. 밥이나 물을 주지 않고 음식물 쓰레기를 먹인다는 제보도 있다. 거주지가 아닌 야산이나 농막에 묶어두고 돌보지 않는다는 제보도 심심찮게 들어온다. 동물보호단체 ‘동물자유연대’에 따르면 2019년 단체에 접수된 학대 의심 제보 중 38.3%가 열악한 사육환경, 18.5%가 방치 사육에 대한 제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동물보호법은 동물을 방치하는 사육 행태를 막아설 수 없다. 동물의 소유자가 사료와 물의 공급 등 동물을 적절히 사육·관리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만 있어서다. 그나마 2017년 ‘애니멀 호딩’(무분별한 수집 사육)을 금지하기 위해 발의된 동물보호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반려동물 사육·관리 의무’가 마련됐다. 올해 한 번의 추가 개정을 거쳐 목줄은 2m 이상이어야 하고, 어두운 공간에서 장기간 사육하지 않을 것 등이 의무에 포함됐지만 의무 위반 행위가 ‘상해를 입히거나 질병을 유발했다’는 인과관계가 인정될 때만 학대로 본다는 한계가 있다. 너무 짧은 줄에 묶거나 음식물 쓰레기를 먹여 상해나 질병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제3자가 증명하기도 어렵고, 동물이 심각한 피해를 입는 것을 사전에 예방할 수 없다는 점도 문제다.

다행히 국회에서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할 수 있는 동물보호법 일부개정안이 발의됐다.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을 살펴보면, 사료와 물을 주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라는 권고는 ‘적정한 사육·관리’ 조항을 ‘하여야 한다’로 바뀌며 동물 소유자의 의무를 강화했다. ‘동물에게 적합한 사료와 물’이라는 포괄적인 표현도 ‘동물의 종류, 특성, 나이 및 건강 상태 등을 고려하여’로 구체화됐다. 이 조항은 동물이 굶주림만 모면하도록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동물의 상태에 맞는 적절한 영양을 제공하는 것, 즉 ‘긍정적인 복지(Positive welfare)’ 개념이 반영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올해 8월 소셜 미디어에 올라온 동물 방치 사육 현장. 이곳에서 지내던 동물들은 비좁은 공간에서 짧은 목줄에 묶인 채 여름을 나야 했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제공

올해 8월 소셜 미디어에 올라온 동물 방치 사육 현장. 이곳에서 지내던 동물들은 비좁은 공간에서 짧은 목줄에 묶인 채 여름을 나야 했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제공

또한 ‘외부 위험을 막아주고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할 것’을 의무화해 동물을 악천후에 몸이 피할 장소도 없이 기르는 행위, 또는 몸을 움직이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좁은 공간에 가두거나 짧은 줄에 묶어서 기르는 행위를 금지했다. 동물이 질병이 걸리거나 부상당한 경우 역시 신속하게 치료하거나 필요한 조치도 의무화했다.

반려동물 소유자가 사육 관리 또는 보호 의무를 위반해 ‘상해를 입히거나 질병을 유발하는 행위’만을 동물학대로 규정했던 기존 조항에 ‘고통’을 추가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즉, 물리적 상해를 입히지 않았더라도 소유자가 돌봄 의무를 다하지 않아 동물이 고통을 겪고 있다면 동물학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비록 단어 하나가 추가된 것에 불과해 보이지만 변화의 폭은 클 것이다. 이는 동물의 신체 기능을 훼손하지 않는 선이라면 어떻게 다루든 상관없는 물건처럼 취급하던 기존의 관점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동물도 고통을 느끼는 존재라는 것, 정신적 상태의 중요성을 법에서 인정했다고 볼 수 있다.

해외 주요 국가들은 소유자가 동물에게 최소한의 돌봄을 제공할 것을 법으로 의무화하고 있다. 이는 독일, 영국, 미국, 호주 등 서구권 국가뿐 아니라 아시아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대만의 동물보호법은 적절하고 깨끗한 먹이와 물, 안전하고 청결하고 환기가 되고 침수되지 않는 환경과 적절한 쉴 곳, 케이지에서 사육하는 경우 충분한 공간과 운동 기회, 묶어서 기르는 경우 몸길이보다 긴 목줄 등 의무를 구체적으로 규정했다. 의무를 위반해 동물에게 미친 위해의 정도에 따라 처벌 규정에도 차등을 둔다. 위반 후 기한 내 시정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동물이 부상을 입지 않았더라도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싱가포르 또한 동물 소유자의 관리 의무를 준수하지 않았을 경우 법을 위반한 것으로 보는데, 특히 동물 관련 산업 종사자의 법 위반에 대해서는 일반인보다 4배까지 벌금을 부과한다.

이미 한국의 시민 인식도 변하고 있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가 전문조사업체에 의뢰해 국민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2 동물복지에 대한 국민인식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91%가 동물에게 물, 사료, 눈·비를 피할 집 등 기본적인 관리 제공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답했다. 동물을 폭염, 한파에 야외에 방치하거나, 너무 짧은 줄이나 좁은 공간에 가두어 키우는 것도 동물학대로 보고 금지해야 한다는 응답도 80% 이상으로 높게 나타났다. 동물을 대하는 방식에 대한 최소한의 기준을 마련하는 일은 동물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동안 동물 방치는 관행적인 사육 행태로 여겨져 제재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는 사회적 비용을 더욱 늘리는 결과를 불러왔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제공

그동안 동물 방치는 관행적인 사육 행태로 여겨져 제재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는 사회적 비용을 더욱 늘리는 결과를 불러왔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제공

동물을 방치해 기르는 관행은 동물복지를 훼손할 뿐 아니라 유기동물 관리에 쓰이는 사회적 비용이 증가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야외에서 길러지는 개들이 임신과 출산을 끊임없이 반복하면 책임질 사람이 없는 동물의 숫자는 늘어난다. 태어난 동물들은 길에서 배회하다가 누군가가 신고하면 동물보호소로 들어오고, 대부분 보호 기간 이후 안락사된다.

임신한 상태로 들어온 동물이 보호소에서 새끼를 낳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길에서 떠돌던 개들이 산으로 들어가면 이른바 ‘들개’로 전락하고 퇴치의 대상이 된다. 문제점을 인식한 정부는 2022년부터 전국적으로 ‘마당개 중성화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이렇게 동물을 포획하고, 일정 기간 보호하고, 안락사하고, 중성화 수술로 동물의 숫자를 줄이려는 모든 과정에 세금이 쓰이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동물을 기르는 사람에게 구체적인 법적 의무를 지우면, 대책 없이 동물을 기르는 사람들도 줄어들 것이다.

물론 아직 연령대나 지역, 살아온 배경 등에 따라 동물복지 인식 차이가 커서 동물을 기르는 방식도 제각각이다. 법이 개정된다 해도 당장 일선에서 법을 집행할 행정력도 부족하다. 반려동물 등록제 역시 시행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동물등록은 여전히 저조하다. 충분한 계도 기간을 두고 제도를 홍보하는 동시에, 동물을 기르는 사람이 동물을 어떻게 돌보아야 하는지 지침을 상세히 만들어 시민 인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세계동물보건기구(World Organization for Animal Health · WOAH)는 좋은 동물복지(Good animal welfare)에 대해 “동물이 건강하고, 편안하고, 영양이 풍부하고, 안전하고, 고통, 두려움, 괴로움과 같은 불쾌한 상태를 겪지 않고, 동물의 신체적, 정신적 상태에 중요한 행동을 표현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정의한다. 동물이 극도로 부정적인 상태만 피하도록 하는 것이 동물복지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번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우리 사회가 동물복지를 정의하는 방식이 국제적 기준에 한 단계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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