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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자발적 탄소시장 '불량배출권 양산' 거드는 국내 기업들

입력
2023.11.13 04:3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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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배출권 거래시장 부실 인증 속
화석연료사업으로 발급받은 배출권
델타항공 등 탄소중립 홍보에 쓰여
정부 규제 바깥 그린워싱 횡행 우려

환경·사회·지배구조(ESG)경영에서 빠른 성과를 추구하는 기업들은 종종 과장된 홍보, 즉 그린워싱에 빠지곤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환경·사회·지배구조(ESG)경영에서 빠른 성과를 추구하는 기업들은 종종 과장된 홍보, 즉 그린워싱에 빠지곤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세계 최대 민간 탄소배출권시장에 등록된 국내 기업의 '탄소감축 사업' 상당수가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낮거나 이미 배출권을 받은 적이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들 기업은 '친환경 인증'을 받아 발급받은 탄소 배출권을 되팔아서 수익을 내고 있는데, 이렇게 유통된 '부실 배출권' 일부는 보잉, 델타 등 해외 유수 대기업의 탄소중립 홍보에 사용됐다. 민간 배출권시장은 각국의 법적 규제와 무관하게 탄소 감축 실적을 인정받고 배출권을 거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최근 각광받고 있지만, 인증이 부실해 되레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으로 이어진다는 지적이다.

12일 기후환경단체 플랜1.5와 한국일보가 자발적 탄소배출권 운영 기관인 베라(Verra)에 등록된 국내 감축사업을 분석한 결과, 등록이 완료된 사업 10개 중 3개, 심사 중인 사업 2개 중 1개가 화력발전사업이었다.

현대제철의 폐가스 발전소가 대표적인 사례다. 현대제철은 2010년부터 당진제철소에서 발생하는 부생가스를 활용한 발전소를 운영하면서 이 사업을 탄소감축 사업으로 두 차례 베라에 등록했다. 발전소가 없었다면 가스가 대기 중 방출돼 오염이 컸을 것이라는 게 등록 이유다.

문제는 부생가스 발전소가 국내 배출권거래제에서는 탄소배출시설로 분류되고 있다는 것이다. 발전소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만큼 배출권을 구매해야 운영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또 석탄발전소와 마찬가지로 대기오염 물질 배출 시설에 부과되는 지역자원시설세 대상이기도 하다.

부생가스 발전소의 온실가스배출량은 액화천연가스(LNG)의 3배로 추정된다. 환경부에 따르면 2019년 현대그린파워의 배출량은 1,083만5,566톤으로 전체 기업 중 9위였다. 2007년 포스코도 유사한 발전사업을 교토의정서(2005~2020) 체제 때 운영됐던 유엔의 청정개발체제(CDM)배출권 시스템에 등록하려 했으나 효과가 인정되지 않아 반려됐다.

충남 당진에 위치한 현대제철의 당진제철소 전경. 현대제철 제공

충남 당진에 위치한 현대제철의 당진제철소 전경. 현대제철 제공

현대제철 측은 “친환경 제철소를 표방하던 시기에 마침 외부 컨설팅사로부터 자발적 탄소감축 인증을 받으라고 제안받았던 것”이라며 “감축 인증만 받았을 뿐 배출권을 확보한 건 아니다”라고 답했다.

그러나 이 배출권은 2012년부터 올해 6월까지 꾸준히 발급돼 판매됐다. 보잉·델타 등 항공사, 배달의민족의 모기업인 딜리버리히어로 등이 주요 구매자다. 충남 당진시가 탄소중립을 위해 구매를 한 기록도 있다. 이 중 델타항공은 배출권 구매효과를 내세워 ‘세계 최초의 탄소중립 항공사’라는 홍보를 해오다 지난 5월 집단소송을 당했다. 효과가 불분명한 방법으로 탄소중립을 주장해 소비자를 기만했다는 이유다.

2009년에 등록된 LG하우시스의 울산공장 연료전환 사업은 석유를 다른 화석연료인 LNG로 대체한 것이다. LNG는 석유보다 탄소배출이 적지만, 이보다 온실효과가 80배 높은 메탄이 배출된다. 다만 LG하우시스는 베라에 등록만 했을 뿐 배출권을 발급받아 판매한 기록은 없다. 한국동서발전은 같은 LNG를 사용한 울산4복합화력발전소에 대해 감축사업 인증을 베라에 요청해 심사가 진행 중이다.

서울지하철 9호선 사업도 베라에 등록됐다. 대중교통으로서 온실가스 감축에 일조한 것은 맞지만, 당시 민자사업에 참여한 기업들이 서울시로부터 일정 수준의 수익을 보장받았다는 것이 문제다. 유엔CDM 등에서는 감축사업의 경제성이 부족해서 추가 투자가 필요할 경우에만 배출권을 발급한다. 그러나 등록을 대행한 스위스 회사 그뤼터컨설팅이 시 지원 사실을 숨긴 서류를 제출했음에도 베라는 이를 검증하지 못한 것이다. 이미 유엔CDM에 등록돼 배출권을 발급받은 사업의 일부를 베라에도 등록해 재활용한 사례(영양풍력 등)도 있었다.

국내 자발적배출권시장 추진 흐름... 비슷한 문제 경계해야

각국 기후정책이 강화되고 탄소 무역장벽이 도입되면서 탄소감축이 급해진 기업들은 자발적 배출권을 구매해 실적을 채우고 있다. 2021년 거래된 자발적 배출권 규모는 약 19억8,500만 달러(약 2조6,200억 원)로 2018년에 비해 281%나 커졌다. 이 중 베라의 점유율은 70%가 넘는다.

그러나 자발적 탄소배출권의 감축 실적은 어디까지나 추정에 불과한 데다, 위 사례처럼 부실 사업을 인정하는 경우도 많아 신뢰성 문제가 계속 제기되고 있다. 지난 1월 영국 가디언의 보도에서도 베라의 산림탄소상쇄 배출권의 90%가 효과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유럽의회는 지난 5월 자발적 배출권을 구매해 탄소를 감축했다고 주장하는 광고를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환경부는 지난해 베라 등의 배출권을 구매한 뒤 탄소중립 광고를 한 일부 기업에 그린워싱이라며 시정명령을 내렸다.

최근 국내에서도 대한상공회의소 등에서 자발적 탄소시장을 추진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지만 정부 규제 밖이라 비슷한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권경락 플랜1.5 활동가는 “정부나 국제기구와 달리 모니터링과 검증이 불분명한 민간 탄소배출권의 경우 향후 불량 배출권이 발생하더라도 제재할 방법이 없다”며 “배출권 품질을 보장할 만한 엄격한 기준을 세우되, 정부 배출권거래제를 강화해 제도 내에서 온실가스를 관리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신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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