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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년 전 오뚜기가 내민 손 덕분에 죽다 살았죠"...OEM 회사도 한 식구처럼 여긴다

입력
2023.11.22 09:00
수정
2023.11.22 10:08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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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업 위기 당면업체, 오뚜기와 계약으로 부활
37년 동안 OEM사로서 '옛날당면' 생산 주력
엄격한 품질 관리·위생 점검…상생 아이콘 부상

편집자주

세계 모든 기업에 환경(E), 사회(S), 지배구조(G)는 어느덧 피할 수 없는 필수 덕목이 됐습니다. 한국일보가 후원하는 대한민국 대표 클린리더스 클럽 기업들의 다양한 ESG 활동을 심도 있게 소개합니다.

동순덕식품공업사 생산현장. 오뚜기 제공

동순덕식품공업사 생산현장. 오뚜기 제공


7일 찾은 부산시 사하구의 동순덕식품공업사 생산 공장에는 사람 몸집만 한 고구마 전분 가루 포대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밀가루 없이 오직 고구마 100% 함유량의 이 전분 가루들은 당면을 만드는 데 쓰일 원재료다. 천장에 매달린 크레인 집게가 전분 포대를 하나씩 집어 대형 드럼통 안에 붓자 여러 차례 반죽 끝에 투명한 면발들 뽑아져 나왔다. 끓는 물에 들어가 삶아진 당면 줄기들은 다시 냉동과 건조를 거쳐 노란 포장지에 쌓여 완성됐다. 이 제품이 오뚜기의 '효자' 상품 '옛날 당면'이다.

이 회사는 37년째 오뚜기의 주문위탁생산(OEM) 업체로서 옛날당면 생산을 책임지고 있다. 연 면적 약 8,264㎡ 크기 공장에서 직원 40여 명이 만드는 옛날당면 생산량은 하루 약 8.5톤(t)가량으로 6개의 OEM 회사에서 납품하는 전체 옛날당면 생산량의 약 4분의 1을 차지한다. 삼대째 내려오는 가업을 잇고 있는 이보나(55) 대표는 "아버지가 '당면은 과학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해마다 수확한 고구마에 따라 당면 식감이나 색깔이 달라져 신경 쓸 부분이 많다"며 "해마다 똑같은 품질의 당면을 만들기 위해 오뚜기와 끊임없이 소통하고 논의한다"고 설명했다.



폐업 고민하던 시기 오뚜기와 맞손…37년 간 이어져

7일 부산 사하구 동순덕식품공업사에서 이보나 대표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부산=나주예 기자

7일 부산 사하구 동순덕식품공업사에서 이보나 대표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부산=나주예 기자


이 대표의 할아버지는 1944년 중국에서 한국으로 이주해 와 부산에 당면 생산 업체를 차렸다. 대학을 갓 졸업한 이 대표의 아버지도 이 공장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소비자들이 당면 제품을 외면하면서 사업에 위기가 왔다. 당면 제품 전반의 품질 저하가 문제였다. 1980년대 중반까지 식품 안전 기준이 없던 상황에서 당면은 가내 수공업 제품이 주류를 이뤘다. 곳곳에서 당면을 만들며 가격 경쟁이 시작됐고 당면에 포함된 고구마 전분 함유량이 줄면서 당면 제품의 맛과 식감이 떨어졌다. 판매량도 해마다 줄었다.

이 대표의 아버지 또한 판매처 확보와 수금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폐업을 고민하던 상황에서 나타난 동앗줄은 오뚜기와 맺은 OEM 계약이었다. 이 대표는 "'범표 당면'이라는 자사 브랜드가 있었지만 더 좋은 품질의 제품을 만들자는 뜻에서 포기하고 100% 오뚜기에만 납품하고 있다"며 "질 좋은 당면을 만들어보자는데 오뚜기와 의기 투합한 덕분에 회사도 빠르게 성장했다"고 말했다. 1986년 우리 전통 식품 복원이라는 사명감을 갖고 당면 사업에 진출한 오뚜기와 동순덕식품공업사가 맺은 인연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처음부터 결과가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밀가루 등을 섞지 않고 고구마 전분만 사용해 쫄깃한 면발을 되살렸지만 문제는 기존 제품의 1.5배를 뛰어넘는 가격이었다. 그럼에도 값을 내리지 않고 농협 주부대학 등을 찾아 시식 행사를 열며 맛과 품질로 승부했다. 주부들을 중심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출시 4개월 후부터 판매가 늘기 시작했다. 포장 단위도 300g, 500g, 1,000g으로 넓히는 등 판매 전략도 다양화했다.



상생 위해 협력사 역량 강화 지원

동순덕식품공업사 생산현장. 오뚜기 제공

동순덕식품공업사 생산현장. 오뚜기 제공


오뚜기와 30년 넘게 상생을 이어올 수 있었던 요인은 '윈윈'이 가능한 파트너십 덕분이었다. 임직원 수 십 명인 중소기업이 품질 관리를 꼼꼼하게 하는 건 쉽지 않다. 오뚜기는 ①협력사에 정기적으로 현장 실사를 하고 ②원부자재 투입부터 완제품 생산에 이르기까지 품질 관리 기준 가이드 라인을 제공하고 사전·사후 점검을 시행하고 있다. ③옛날 당면 OEM사끼리는 분기 별로 서로의 공장을 찾아 품질이나 위생 관리에 대한 피드백을 주고받는 '제3자 감시' 시스템도 있다. 이 대표는 "오뚜기 품질 보증실로부터 문제점 평가 및 개선 방안을 전달받는다"며 "시스템이 부족한 중소기업 입장에선 품질을 끌어올리는데 큰 도움을 받는다"고 말했다.

원재료 수급에 난항을 겪을 땐 오뚜기가 돕는다. 1992년 고구마 품귀 현상으로 전분 가격이 세 배 이상 뛰자 동순덕식품공업사는 오뚜기에 지원을 요청했다. 이 대표의 아버지와 함께 직접 제주도로 날아간 창업주인 고(故) 함태호 명예회장은 현금 3억 원을 들고 와 1년 치 전분 물량을 계약할 수 있게 지원했다.

자금 사정이 좋지 않은 협력사를 위해 오뚜기는 설이나 추석 등 명절 기간 하도급 대금을 일찍 준다. 지난해 명절에는 원료 업체, 포장 업체 등 협력사 82곳에 244억 원을 평균 50여 일 앞당겨 전액 현금으로 지급했다. 협력사 및 대리점을 대상으로 동반 성장 펀드를 만들어 오뚜기 혼자 자금을 출자해 저금리 대출도 제공한다. 2022년 대출 금액은 평균 잔액으로 총 111억 원이었으며 감면된 이자 비용 3억7,800만 원을 지원했다.



목표는 오직 좋은 먹거리 위한 '제품 안정성 강화'

오뚜기 식품안전과학연구소 개소식. 오뚜기 제공

오뚜기 식품안전과학연구소 개소식. 오뚜기 제공


오뚜기의 상생 경영은 계속되고 있다. 올 4월에는 경기 안양시의 오뚜기 중앙연구소에 '식품안전과학연구소'가 문을 열었다. 식품안전과학연구소는 1983년 오뚜기 식품연구소 소속의 분석 파트로 시작해 2005년 식품안전센터로 승격됐는데 품질보증본부 차원에서 오뚜기 제품의 안전성을 책임지기 위해 만들었다. 유해 물질 저감, 식품 분석법 개선, 환경오염 물질 분석·처리 시스템 개발, 농가 업사이클링 지원 등 다양한 영역의 식품 안전 검증과 연구를 통해 상생 경영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다.

협력사와의 성과 공유제도 계속할 예정이다. 협력사와 함께 신기술을 개발하거나 공정 개선, 원가 절감 등을 추진하고 그 성과를 공유한다. 오뚜기 관계자는 "원료, 포장, 부품의 국산화로 협력사의 매출을 끌어올려 경영 안정화에 이바지하려 한다"고 강조했다.


오뚜기 로고.

오뚜기 로고.




부산= 나주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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