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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애정결핍" 성인 돼서도 엄마 원망하는 딸, 어쩌죠

입력
2023.11.13 04:3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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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정우열의 회복’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정우열 원장이 <한국일보>와 함께 진행하는 정신 상담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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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구원 기자

저는 20대 딸을 둔 50대 직장인입니다. 짧은 연애 후 결혼을 해서 바로 아이를 낳았습니다. 아이를 낳고 두 달 후부터 별거를 했고, 20년 넘게 따로 살다 지난해 이혼했습니다. 아이는 친정의 도움을 받아 혼자 키웠는데 사춘기쯤부터 사이가 멀어졌어요. 성인이 된 딸은 엄마에게 사랑을 받지 못했다며 매일 불만을 토로합니다. 최대한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다가가고 있지만 폭주하는 딸을 보면서 너무 무력감이 듭니다.

신혼 시절 남편은 저와 아무 상의도 없이 시댁 식구들과 얘기해 직장을 그만뒀습니다. 그때부터 시작된 별거로 저는 늘 어두웠습니다. 어린 시절 무서운 엄마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런 엄마가 되지 않으리라 다짐했지만 쉽지 않았어요. 제 기억에 부모님은 자식들에게 매우 희생적이었지만 엄격하셨어요. 부부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엄마로부터 늘 "아빠 닮아서 네가 이렇다" 하는 비난을 들었고, 남동생을 편애하는 모습을 보면서 원망이 쌓였습니다.

남편 없이 아이를 키우다 보니 초초한 마음에 아이를 닥달하고 옥죄었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 딸이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걸 듣고 깨달았어요. 한없이 착하고 순했던 딸은 고등학교에 가서 반항을 시작했습니다. 대학을 다른 지역으로 가면서 반항심이 하늘을 찔렀어요. 어린 시절 학대를 당했다고 울부짖고, 본인이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이었다며 억울해했습니다. 대학 시절 상담을 받고 "애정결핍"이라는 말을 들은 후로는 모든 것을 엄마 탓으로 돌렸습니다.

대학생이 된 딸은 저 보란 듯이 무기력하게 생활했습니다. 딸과 제가 가장 많이 부딪친 지점입니다. 코로나19에 따른 비대면 수업으로 2년 동안 거의 집에만 있었는데 대부분 침대에서 생활했습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도 그 생활이 이어지면서 "아르바이트라도 해야 하지 않냐"며 참았던 잔소리를 했어요. 동네 영어학원 강사 자리를 얻어 한동안 잘 나가는가 싶더니 머지 않아 원장이 마음에 들지 않고 힘들다며 그만뒀어요. 자신의 진로에 대해 관심 없는 태도로 일관하니 모든 일에 계획을 세워야 마음이 놓이는 저로서는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괴롭습니다.

여행이라도 가서 진지하게 이야기를 해보고 싶지만 도무지 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본인이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에 대해서는 무반응입니다. 자신의 잘못에 대해 반성이 없고 엄마 탓, 환경 탓만 하면서 허송세월하는 딸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 역시 친정 엄마에 대한 불만이 많았지만 엄마에게 할 말 안 할 말은 가려서 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사춘기를 한참 전에 지나 성인이 된 딸을 언제까지 지켜만 봐야 할까요.

저는 평소 진실성 없는 사람들을 극도로 싫어했습니다. 내가 진정 마음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진심을 다하고, 소수의 사람들은 저의 이런 마음을 알아주고 인정해주는 편이에요. 내 진심을 몰라주는 딸에게 어느 날은 "내가 죽어야 마음을 알아주겠냐"라고 했어요. 딸은 "죽지도 못할 거면서"라며 소리를 지르더군요. 그런 딸을 볼 때마다 무력감을 느끼지만 그대로 두면 딸이 미래를 포기해버리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됩니다. 부모가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요.

박진희(가명·55·회사원)

진희씨, 모든 부모는 자식이 성인이 되더라도 부모로서 역할을 다하기 마련입니다. 그만큼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정서적으로 끈끈하게 연결돼 있다는 것이죠. 그런 자녀가 마음의 어려움을 토로할 때, 그것을 부모의 탓으로 돌릴 때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자녀의 문제가 내 탓인 것 같은 죄책감이 밀려들고 하루빨리 바로잡고 싶다는 조급한 마음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세상에 완벽한 부모는 없습니다. 당연히 자녀에게 생기는 문제가 오직 부모 탓은 아니지요. 다만 부모는 자식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기 때문에 부모가 자식에게 끼친 영향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딸의 인생에서 부모를 비롯한 중요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경험한 것들이 지금의 성격이나 문제해결 방식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딸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딸을 남편 없이 홀로 양육했던 진희씨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진희씨는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에서 아쉬움을 느끼며 성장한 것 같아요. 딸이 상담자로부터 '애정결핍'이라는 말을 들었던 것처럼 진희씨 역시 딸과 비슷한 상황에서 성장했을 거예요. 내 존재 자체를 인정받지 못하고 거절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쌓이다 보면 타인에 대한 신뢰감을 형성하기가 어려워집니다.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남들보다 쉽게 불안과 긴장을 느끼고, 그러다 보니 오히려 이상적인 관계에 대한 환상을 키우기도 하지요.

게티이미지뱅크

인간관계에서 진실성이 없는 사람을 극도로 싫어한다고 했었지요. 사람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누구나 이중성이 있고, 때로 이해관계에 따라 행동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진희씨는 '100% 진실'이라는 엄격한 잣대에서 사람을 이상화하고, 기준에 맞지 않으면 선을 긋지요. 사람을 통합적으로 판단하고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이상적인 관계에 대한 기준이 높기 때문에 사람에 대해 느끼는 다양한 감정을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이 있고, 한 번 불편한 감정이 생기면 오래 지속되는 것이죠.

딸이 왜 멀어졌을까요. 부모에 대한 신뢰와 사랑은 존재 자체를 인정받고 정서적으로 편안함을 느끼는 과정에서 자랍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긍지를 갖기 위해서는 생애 처음 만난 타인인 부모로부터 인정받고, 지지를 받아야 하죠. 진희씨의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딸을 키우는 양육 자체에 책임감을 느끼고 최선을 다했지만 진희씨 역시도 딸의 내면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수용하는 데 부족함이 있었을지 모릅니다. 말로는 딸을 이해하고 싶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완벽하고 이상적인 모녀 관계를 요구하면서 오히려 딸을 통제하는 식으로 흘러온 것 같아요.

게티이미지뱅크

그럴 때 자녀는 어떨까요. 엄마의 마음을 알아서 헤아리기보다는 그런 패턴이 반복되는 것 자체에 압박과 괴로움을 느끼겠지요. 진희씨의 딸도 엄마가 내 진심은 몰라주면서 지나치게 많은 것을 요구하고 바라고 있다고 생각할 거예요. 정서적인 결핍을 느낄 때 제대로 채워줄 사람이 없었고, 은연 중에 엄격한 통제 속에서 자라왔다면 아이는 성인이 돼서도 독립을 이루기가 쉽지 않습니다. 딸이 엄마에게 힘든 것을 의논하지 않고 반항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겉으로 보기에 독립심이 강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정반대의 상황일 가능성이 커요. 사춘기 때부터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속으론 두렵고 불안하고 자신의 마음을 잘 몰라주는 엄마에게 여전히 화가 나 있을 겁니다.

정서적 지지는 사춘기뿐 아니라 성인기 자녀와의 관계에서도 중요해요. 딸이 진로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개입해야 한다는 걱정은 지극히 부모의 기준에서 아이를 보는 거예요. 지금 중요한 것은 정서적인 기반이 취약한 딸을 보다 편안하게 지지하고 지켜봐주는 겁니다. 끊임없이 '애정결핍'을 이야기하는 것은 딸이 부모에게 보내는 일종의 신호입니다. 딸의 부족한 면을 부각하거나, 부모가 걱정한다는 표현을 하기보다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냄으로써 지나치게 높은 불안을 낮춰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인 된 딸과의 관계나 친밀감 그 자체에 지나치게 집중하는 것은 진희씨 또한 딸을 독립된 인격체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죠. 머리로는 딸의 독립을 원하지만 내심으로는 딸의 삶을 여전히 통제하고 싶은 욕구가 여전히 강한 거예요.

게티이미지뱅크

진희씨, 딸이 독립된 인격체로 성장해야 할 중요한 시기를 지나고 있다면 당신도 중년이라는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흔히 이야기하는 '중년의 위기'가 딸이 정서적으로 독립하는 시기와 맞물리면서 내면의 불안이 증폭된 측면도 있어요. 이 시기에 흔히, 성장과정에서 겪었던 부모와의 갈등이 자녀와의 관계에서 재현됩니다. 강조하고 싶은 건 진희씨가 딸에게 느끼는 답답함의 근원은 딸에 대한 진희씨의 사랑이 부족하거나 딸의 능력이 부족해서 생긴 문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독립된 인격체로 단단한 토대를 이루는 과업이 사춘기 시절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성인기까지 영향을 미쳐 정체돼 있는 것이죠.

자녀와의 힘의 균형에서 우위를 점하던 과거 패턴에서 벗어나서 자녀에게 삶에 대한 통제권을 온전히 넘겨주고,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여주는 것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하지만 진희씨는 무의식적으로 지나온 삶을 돌아보며 마음이 복잡할 겁니다. 그런 감정 에너지가 딸에 대한 걱정 또는 딸과의 관계에 대한 집착으로 향하지 않도록 하려면, 주변 믿을 만한 사람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하며 내 삶의 의미를 재정립해야 합니다. '중년의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죠. 진희씨가 먼저 변화해서 딸이 편안하고 건강하게 성장하는 길을 응원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 딸 역시 한 사람의 인격체로서 삶을 시작할 수가 있다는 점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딸에 대한 진희씨의 깊고 따뜻한 사랑을 지지하며 중년의 위기 속에서도 자녀의 앞날을 걱정하는 모든 부모님들께 응원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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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손효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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