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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 희생자보다 더 많은 사람이 죽는다

입력
2023.11.07 19:00
수정
2023.11.14 14:16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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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영
박주영부장판사

편집자주

<어떤 양형 이유> <법정의 얼굴들>의 저자인 박주영 판사가 세상이란 법정의 경위가 되어 숨죽인 채 엎드린 진실과 정의를 향해 외친다. 일동 기립(All rise)!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국가 재난 수준인 자살 상황
모든 자살은 타살이란 인식
위기 구출에 총력전 펼쳐야

법원과 죽음은 떼려야 뗄 수 없다. 숱한 죽음 중에서 나는 자연사가 아닌 변사(자살, 타살, 과실사, 재해사)를 주로 다룬다. 요즘 같은 시대에는 부고가 별다른 뉴스거리도 못 되지만 나라 안팎으로 정말, 죽어도 너무 많이 죽는다.

2014년 2월 26일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이라는 메모와 함께 70만 원이 든 현금 봉투를 남기고 자살한 송파구 세 모녀 사건이 있은 지 10년이 다 되어 간다. 상황이 나아졌을까? '일가족 자살'로 검색해 본 2023년 결과는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다. 사망 사례만 추렸다. 1월(인천, 40대 남성과 10대 형제), 3월(부산, 50대 부부/인천, 40대 부부와 자녀 셋/부천, 30대 엄마와 자녀), 4월(경기 광주, 60대 부부와 20대 딸/진안군, 60대 부부), 5월(노원구, 30대 남편이 아내 살해, 아들과 자살/평택, 30대 엄마와 아들), 7월(전주, 40대 남성이 부모와 형 살해 후 자살), 8월(울산, 40대 부부와 자녀 2명), 9월(송파구, 40대 여성, 초등학생 딸, 남편, 시어머니, 시누이/대전, 50대 부부와 20대 딸/영암, 50대 남편이 장애인 아들 세 명과 부인 살해 후 자살), 10월(울산, 40대 여성과 10대 두 아들/부산, 부부와 20대 딸). 올 한 해 현재까지 대략 50명이 가족에 의해 살해되거나 함께 생을 마감했다.

67세 남성(클렌징폼 절도), 41세 남성(음주운전 재범), 50세 여성(위증), 40세 남성(음식에 파리 있다는 리뷰 쓴 고객에게 삭제하라고 협박), 75세 남성(집행유예 기간 중 바나나우유 절도), 이 사람들은 최근 사망한 내 재판부의 피고인들이다. 이들 외에도 1년 6개월 남짓 동안 11명이나 죽었다. 사망보고서에 사인이 없어 상황을 정확히 알긴 어려우나, 대부분 혼자 어렵게 살던 사람들이므로 고독사했거나 스스로 생을 마감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중 바나나우유만 훔치던 칠순 노인이 기억에 남는데, 알츠하이머 환자를 보호시설에 보내지 않고 왜 자꾸 기소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픽=김문중기자

그래픽=김문중기자

죽음은 남녀노소, 지위고하, 빈부를 가리지 않지만, 내가 법정에서 본 죽음은 취약계층만을 집요하게 공격했다. 어떤 이가 취약할까. 돈, 질병 등 여러 요소가 있지만, 사랑에서 멀어진 사람들이 가장 약했다. 자신에 대한 사랑, 사적 사랑(가정)과 공적 사랑(복지)의 영토로부터 멀어질수록 죽음에 쉽게 무너졌다.

대한민국은 1년에 약 1만3,000명이 목숨을 끊는 나라다. 2019년 12월 이후 최근까지 4년 동안 코로나19로 사망한 사람이 3만5,000명 정도인데, 4년간 자살자는 5만2,000명에 달한다. 비공식 자료에 의하면, 개전 후 1년 동안 러시아의 침공으로 전사한 우크라이나 군인이 1만7,500명 정도다. 잘못된 선택으로 인한 사망자가 코로나19보다 많고, 대규모 전쟁과 맞먹는다. 이 정도면 비상사태를 선포할 만한 국가적 재난 아닌가. 마약과의 전쟁이나 카르텔에 대한 선전포고도 좋지만, 진짜 가공할 적은 자살이다. 지금이라도 총력전에 돌입해 사지에 몰린 사람들을 구출해야 한다.

팍팍한 시대다. 그래도 어떻게든 버텨보자. "과거의 내가 지켜준 삶이야, 절대로 자살 안 해"(넷플릭스, '아리스 인 보더랜드') 이 대사처럼, 현재의 나는 살려고 안간힘을 다해 버둥댄 과거의 내가 만든 소중한 성과물이다. 이제 와서 이상한 선택을 한다면 과거의 나를 볼 면목이 없다. 이건 자살도 아니다. 살아남고자 열망했던 어제의 나를 살해한 것이다. 모든 자살은 타살이다.

박주영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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