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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다처방, 셀프처방, 대리처방... 마약류 확산 '거점' 떠오른 병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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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다처방, 셀프처방, 대리처방... 마약류 확산 '거점' 떠오른 병원들

입력
2023.11.08 04:0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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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제공 의심 의사, 이선균 사건 '키맨'
병원 마약류 관리 심각... 온갖 편법 동원
처벌은 쉽지 않아... "자정노력 병행돼야"

마약류 투약 혐의로 입건된 배우 이선균이 4일 인천 논현경찰서에서 2차 소환조사를 마친 후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마약류 투약 혐의로 입건된 배우 이선균이 4일 인천 논현경찰서에서 2차 소환조사를 마친 후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6일 오후 서울 강남구의 한 병원. 최근 유명 연예인들이 연루된 마약 투약 사건과 관련해 유흥업소 관계자에게 마약류를 제공한 의혹을 받는 의사 A씨가 운영하는 곳이다. 그의 소환 조사까지 저울질하는 경찰 입장과 달리 진료를 기다리고, 밝은 표정으로 손님을 맞는 직원들 얼굴에서 별다른 위기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지난달 입건된 A씨도 계속 진료를 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현재 마약류 투약 혐의를 받는 배우 이선균(48) 사건에서 혐의를 입증할 핵심 인물로 떠올랐다. 이씨가 간이시약 검사와 정밀 검사에서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경찰은 '과다처방, 셀프처방' 등 그가 편법으로 마약류를 건넸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사실 여부를 떠나 병원을 통한 마약류 확산의 책임이 의사에게 있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환자가 아무리 마약을 처방받기 원해도 의사의 윤리의식만 굳건하다면 '유통 연결 고리'는 끊어질 수밖에 없다. 빈틈이 많은 병원 마약류 관리 체계의 개선이 시급해 보인다.

보건당국 경고 허점 파고든 '과다처방'

A씨가 환자들에게 마약류를 과다 처방·투약한 정황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과 최연숙 국민의힘 의원실이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올 4월 A씨 병원은 간단한 시술에 프로포폴을 과다처방한 사례가 73건 적발돼 사전알리미 경고를 받았다. 투약 내역도 다양했다. 1~6월 환자 450명에게 9건의 마약류를 7,400여 개 처방했는데, 20대 여성 한 명에게 659개(8건)를 처방한 일도 있었다.

지금은 폐업한 A씨의 또 다른 병원도 지난해 4월 프로포폴 과다투약 사례 1건이 확인돼 경고를 받았다. 통상 사전알리미 경고를 받으면 식약처가 3개월간 모니터링을 진행하는데, 이 기간 관리 부실 문제가 개선되지 않을 경우 '처방·투약 행위 금지' 등의 행정조치가 내려진다. 하지만 모니터링 기간만 조심하면 경고 효력이 사라져 A씨가 일종의 '자숙'기간을 거친 후 새로운 병원에서 다시 마약류를 소홀하게 관리했을 가능성이 있다.

비단 A씨 병원만의 문제가 아니다. 8월 여론의 공분을 산 '롤스로이스 사건'에서도 차량을 몰다 20대 여성을 쳐 중태에 빠트린 가해자의 단골병원이 지난해 환자들에게 프로포폴을 과다처방한 사실이 밝혀졌다. 경찰은 마약류를 필요 이상 처방한 것으로 의심되는 병·의원 21곳과 환자 13명을 들여다보고 있다.

까다로운 처벌 입증... 수위도 낮아

마약 상습 투약 혐의를 받는 배우 유아인(본명 엄홍식)이 9월 2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김예원 인턴기자

마약 상습 투약 혐의를 받는 배우 유아인(본명 엄홍식)이 9월 2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김예원 인턴기자

과다처방 못지않게 셀프처방도 만연해 있다. 감사원 자료에 따르면, 2018년 5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스스로에게 마약류를 처방·투약한 횟수가 연간 50회가 넘는 의사가 44명이나 됐다. 이 중 12명은 1년에 무려 100회 이상 투약했다. 지난해 12월에 제주에서는 내과의원을 운영하는 의사가 약 2년간 6회에 걸쳐 본인에게 필로폰 처방을 하고 투약한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이범진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마약퇴치연구소장은 "셀프·과다처방 증가가 수치로 확인되는 만큼 의료계 전반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마약류 처방 과정의 허점을 드러내는 '대리처방'도 심각하다. 최근 불구속 기소된 배우 유아인 사례가 대표적이다. 검찰 공소장에는 유씨가 지인과 가족을 동원해 스틸녹스정, 자낙스정 등 마약류 1,000정 이상을 처방받은 정황이 적시됐다. 이미 숨진 1,635명의 명의로 마약류 의약품 5만1,642개가 처방된 사실도 국정감사를 통해 공개됐다. 필요한 서류만 충족되면 병원이 자체적으로 부적격자를 걸러낼 방법이 없는 것이다.

이처럼 병원이 마약류 범람의 '거점'이 되는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음은 계속 울리고 있다. 박진실 마약사건 전문 변호사는 "오·남용 의혹을 받아도 의사에겐 '처방권'이 있어 수사기관이 진료 외 목적임을 입증해야 해 처벌이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 면허가 취소되지 않는 한 의사들은 언제든 현업 복귀 길이 열려 있고, 설령 취소돼도 재발부가 까다롭지 않아 마약류 잡음이 근절되지 않는 요인으로 꼽힌다. 이해국 가톨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불법·편법처방을 막기 위한 법·제도적 규제뿐 아니라 가이드라인 제정 등 의료계의 자정 노력도 병행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서현 기자
권정현 기자
전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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