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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으로 낳은 자식이요? 아뇨. 그냥 제 자식"… 가정위탁으로 맺어진 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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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으로 낳은 자식이요? 아뇨. 그냥 제 자식"… 가정위탁으로 맺어진 모자

입력
2023.11.07 10:0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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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정위탁제도로 만난 아동 17년 양육
"아이가 주는 행복, 육아의 힘듦보다 훨씬 커"
가족 화목, 인격적 성장… "과감히 참여하길"

삽화=신동준 기자

삽화=신동준 기자

“우리 막내아들이 대학에 꼭 붙어야 할 텐데… 수능시험이 다가오니까 제가 더 긴장해서 잠을 설치곤 해요.”

서울 노원구에 사는 강용숙(66ㆍ가명)씨는 재수생 아들을 둔 엄마다. 이미 손주까지 본 적지 않은 나이에 2년째 수험생 뒷바라지를 하려니 애간장이 탄다. 성적이 기대만큼 오르지 않을 때는 아들에게 한바탕 잔소리를 늘어놓기도 한다. 그러다 어느새 훌쩍 자라 듬직해진 뒷모습을 마주하면, 아들의 외로웠던 어린 시절이 문득 떠올라서 가슴 한편이 저릿해진다.

용숙씨와 아들 인호(19ㆍ가명)군은 조금 특별한 모자지간이다. 둘 사이엔 ‘위탁’이라는 단어가 붙는다. 인호군은 용숙씨가 2006년 서울시가정위탁사업에 참여하면서 만난 위탁아동이다. 두 살배기가 성인이 될 때까지 17년간 살 비비며 키웠다. 지난달 23일 서울 중구 무교동 서울시가정위탁지원센터에서 만난 용숙씨는 “소중한 내 아들을 만나게 해 준 가정위탁제도를 널리 알려서 기쁨과 보람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용숙씨는 2000년대 초 TV를 시청하다 자막으로 ‘위탁가정 모집’ 공고를 접했다. 고민도 안 하고 전화번호를 눌렀다. 몇 년 전 남편 직장 때문에 잠시 호주에 머물던 시절 알게 된 가정위탁제도가 이상하게도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기 때문이다. 남편은 물론 당시 대학생이던 아들과 딸도 용숙씨의 결심을 적극 지지했다.

서울시 가정위탁제도 홍보 현장. 서울시 제공

서울시 가정위탁제도 홍보 현장. 서울시 제공

가정위탁은 부모의 사망, 이혼, 실직, 질병, 가출, 학대 등 사유로 보호가 필요한 18세 미만 아동을 위탁가정에서 일정 기간 양육하는 제도다. 위탁아동과의 나이 차이가 60세 미만이고 친자녀를 포함해 자녀 수가 4명 미만이며 아동학대 및 가정폭력 전력이 없는 가정을 대상으로 심사와 교육을 거쳐 선정된다. 용숙씨도 인호군을 품에 안기까지 수개월간 부모 교육을 받았다.

인호군은 상처가 많은 아이였다. 두 돌이 지났는데도 말할 줄 아는 단어는 고작 ‘할미(할머니)’ ‘맴매’뿐이었다. 집에 손님이 오면 커튼 뒤에 숨어 나오지 않았고, 손가락에 용숙씨 옷자락을 돌돌 말아 묶고선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용숙씨는 두 자녀를 키운 내공과 여유로 묵묵히 기다렸다. 그는 “결국엔 시간이 해결해 주더라”고 했다. 인호군은 그 흔한 ‘중2병’도 없이 잘 자랐다. 어느새 식성과 취향, 심지어 생김새까지 가족과 닮아 갔다. 친정어머니가 ‘사위가 몰래 밖에서 낳아 온 자식 아니냐’고 농담할 정도였다. 용숙씨는 “시간이 지나고 보니 가슴으로 낳은 자식이 아니라, ‘그냥 내 자식’이 돼 있더라”며 미소 지었다.

가정위탁은 친가정 복귀를 목표로 한다. 하지만 인호군은 돌아가지 못했다. 가정위탁 초기에는 친엄마가 가끔씩 찾아와 아이를 만났지만, 2년여 뒤 친권을 포기했다. 친엄마는 당시 10대였다. 용숙씨는 펑펑 우는 어린 엄마를 달래며 말했다. “내 연락처는 죽을 때까지 바꾸지 않겠다. 아이가 보고 싶으면 언제든 연락해도 좋다. 다만, 다시 만날 때 부끄러운 엄마는 아니었으면 한다.” 용숙씨는 “이기적인 마음인 건 알지만, 솔직히 내심 기뻤다”며 “아이를 보낸다는 상상만 해도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고 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용숙씨는 한때 인호군을 입양하려고도 했다. “서류가 없어도 내 아들”이라고 단언하면서도, 법적 인정을 받으려 했던 데는 이유가 있다. 위탁부모에겐 위탁아동과 관련해 아무 권한이 없다. 아이가 학교에 입학할 때 필요한 서류를 떼는 일조차 불가능했다. 아이가 응급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친권자가 아니라서 보호자 동의서에 사인도 못했다. 한번은 인호군이 해외 교환학생 체험을 다녀오더니 서럽게 울었다. 친구들은 복수여권인데 인호군만 단수여권이라 색깔이 달랐던 것이다. 위탁가정의 미성년자에겐 친권자의 친권 행사가 어렵고 후견인이 없다는 이유로 단수여권이 발급된다. 용숙씨는 “꼭 그렇게 눈에 띄게 차별해야 하냐”며 “남몰래 울기도 많이 울었다”고 했다.

‘돈 받고 아이 키운다’는 편견도 상처가 됐다. 위탁가정에는 양육보조금(월 30만~50만 원)과 아동 용돈(월 3만~6만 원), 대학입학금(300만 원), 자립정착금(1,500만 원) 등이 지원된다. 해마다 증액되고 있지만 아이를 키우기엔 부족하다. 용숙씨는 “돈 얼마 받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억장이 무너진다”며 “위탁부모, 위탁아동을 사회가 따뜻하게 바라봐 줬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용숙씨는 가정위탁을 평생 가장 잘한 선택이라 확신한다. 가족이란 울타리가 더 튼튼해졌고, 용숙씨 부부와 두 친자녀 모두 인격적으로 훨씬 성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위탁가정사업 참여자가 많지는 않다. 현재 서울시 위탁가정은 656가구. 조부모를 포함한 친인척이 대다수이고, 비혈연 위탁가정은 59가구뿐이다. 서울시는 위탁가정을 상시 모집하고 있다. 용숙씨는 “주저하지 말고 과감히 동참해 달라”고 호소했다. “한 생명을 돌보는 건 분명 힘든 일이에요. 하지만 아이가 주는 행복과는 비교할 수 없죠. 저는 가정위탁 덕분에 참된 사랑, 베푸는 삶, 존재의 가치를 깨달았어요. 우리에게 와준 막내아들이 고마워요.”

김표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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