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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균 출연작이 하필이면 CJ ENM 영화

입력
2023.10.28 12:01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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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의 배우 이선균(왼쪽부터)과 김희원, 주지훈이 5월 22일 제76회 칸국제영화제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칸=연합뉴스

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의 배우 이선균(왼쪽부터)과 김희원, 주지훈이 5월 22일 제76회 칸국제영화제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칸=연합뉴스

“하필이면.” 요즘 영화인들을 만나면 나오는 말이다. 배우 이선균이 마약 투약 혐의로 수사받고 있는 현실에 대한 탄식이다. 영화계가 불황을 맞이한 지금, 대형 악재까지 터졌으니 앞이 더 어둡게 느껴질 만하다.

이선균이 출연한 영화와 드라마, 광고 관계자들은 다들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한숨이 더 크고 길 수밖에 없는 곳이 있다. 국내 최대 엔터테인먼트 회사인 CJ ENM이다. CJ ENM은 이선균이 출연한 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의 투자배급사다.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는 덩치가 큰 영화다. 짙은 안개가 낀 공항대교에서 연쇄 추돌 사고가 발생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군이 비밀리에 개발한 특수 생명체가 봉쇄된 대교에서 풀려나고, 사람들은 아비규환의 상황을 맞이한다. 생명체를 컴퓨터그래픽(CG)으로 묘사하는 데 큰돈이 들어갔다. 제작비는 185억 원이다. 개봉 비용을 포함하면 들어가게 될 돈이 200억 원을 훌쩍 넘어간다. 대작으로서 손색없는 규모다. 이선균은 청와대 안보실 행정관 차정원을 연기했다. 대교에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인물이다. 시종 스크린 한가운데에 있는 캐릭터라 편집 등을 통해 이선균의 역할을 최소화하기조차 어렵다.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는 당초 올 연말 또는 내년 초 개봉 예정이었다. 지난 5월 칸국제영화제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돼 화제를 모았으니 공개가 빠를수록 좋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선균이 마약 투약 혐의를 받으면서 개봉 시기가 불투명해졌다. 범죄가 확인되면 개봉 자체가 힘들어질 수 있다. 배우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으나 한계가 있다. 일반적으로 배우들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면 출연료의 2배가량을 물어준다는 조건으로 출연계약서를 작성하고는 한다. 자잘한 사고조차 저지른 적이 없는 이선균이 이보다 엄격한 조건으로 계약서에 서명했을 리는 없다. 게다가 그는 오스카 4관왕 영화 ‘기생충’(2019) 출연 배우로 몸값을 한껏 끌어올린 스타다. CJ ENM은 주연배우 한 명 잘못 캐스팅했다가 거액을 날릴 위기에 처했다.

최근 CJ ENM의 상황은 회사 설립 이래 최악이다. 제작비 137억 원 영화 ‘유령’은 고작 관객 66만 명을 모으는 데 그쳤고, 286억 원을 쏟아부은 ‘더 문’은 흥행 참패(관객 51만 명)했다. 추석 극장가에서 흥행몰이 기대를 모았던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은 관객 191만 명(26일 기준)으로 극장 손익분기점(240만 명 추정)을 아직 넘지 못했다. CJ ENM이 올해 개봉한 영화들 중 돈을 벌어들인 경우는 아예 없다.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가 쌓인 악재를 날려주기는커녕 CJ ENM에 더 큰 부담만 지우게 됐다.

CJ ENM 고위 관계자들은 지난 6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주최한 파티에서 영화사업 철수설을 완강히 부인했다. 역대 최고 흥행(1,761만 명) 영화 ‘명량’(2014)을 선보였고, ‘기생충’의 위업을 달성한 투자배급사가 영화사업을 쉽게 포기할 리는 없다. 포기해서도 안 된다. 하지만 이선균이 몰고 올 파장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 큰손 CJ ENM이 흔들리면 한국 영화계도 뒤흔들리는 구조다. “하필이면 CJ ENM 영화냐”는 한탄이 예사로 들리지 않는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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