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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1층'에서 '오줌권'을 외치다

입력
2023.10.12 22:00
수정
2023.11.09 13:46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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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수동 일대에서 접근성 리서치 중인 무의 자원봉사자.

서울 성수동 일대에서 접근성 리서치 중인 무의 자원봉사자.

소위 '힙하다'는 서울 성수동에서 식당, 카페 등에 경사로를 설치하고 접근성 확대 정책을 만드는 '모두의 1층'이란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실제 이 경사로를 휠체어 이용자들이 많이 사용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설치한 점포 정보를 프로젝트 홈페이지에 넣으면서 주변 가까운 장애인화장실이 어디 있는지도 함께 실었다. 화장실 가기가 무서워 외출하면 물을 못 마시고 밥을 굶기까지 하는, 휠체어를 타는 아이 얼굴이 아른거렸다.

휠체어를 타는 지인이 외부 행사에 갔다. 주최 측에서 이 지인이 온다는 걸 알고 휠체어 경사로는 마련했는데 장애인화장실을 알아보는 건 깜박했던 모양이다. 담당자는 달려나가 근처 다른 대형건물 장애인화장실을 알아봐서 알려줬다. 지인은 단념하고 있다가 반색했다.

이 경우엔 장애인화장실을 운 좋게 찾을 수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 장애인화장실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아무리 큰 건물이라 해도 남녀 1개씩만 만들면 되고 공공건물이 아닌 민간 소유의 경우엔 설치 의무도 느슨해서다.

이걸 잘 알기에 나는 딸과 함께 가야 하는 곳이 있을 때 제일 먼저 장애인화장실이 있는지부터 챙긴다. 휠체어로 들어갈 수 있는 매장이라고 하더라도 대형 건물에 입점한 곳이 아니라면 장애인화장실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근처의 대형 건물이나 공공시설을 검색하거나, 정 안 되면 지하철역 화장실을 이용하게 된다. 무의에서 서울 시내 휠체어로 갈 수 있는 매장 정보 조사 대상을 지하철역 90여 개 주변 지역으로 정한 이유다.

그래서 서울시 '약자와의 동행'팀에서 연락 와서 시민과 함께 장애접근성 데이터를 모으고 싶다며 어떤 정보가 좋겠냐고 조언을 구했을 때 강력히 주장했다. "화장실 정보를 모으자"고. 자원봉사 시민들이 장애인화장실 사진을 찍어서 데이터를 수집하는 형식이다.

서울 성수동 일대에서 접근성 리서치 중인 무의 자원봉사자.

서울 성수동 일대에서 접근성 리서치 중인 무의 자원봉사자.

사실 화장실 정보를 모은다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다. 건물 앞에 경사로가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하는 매장 접근성 정보와는 달리, 장애인화장실 정보는 건물 안에 들어가서 직접 살펴야 해서 정보를 모으기가 까다로워서다. 더 큰 문제는 장애인화장실이 제대로 관리가 안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는 거다. 장애인화장실에 청소도구를 쌓아 놨다든지, 잠가놓고 아예 운영하질 않는다든지, 시설이 고장 나도 방치한다든지 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장애인화장실 설치를 할 때 휠체어가 그 안에서 제대로 회전을 할 수 있는지, 세면대나 변기는 잘 이용 가능한지 다양한 요소가 있는데, 기준에 맞추어 설치하지 않더라도 민간 건물 운영자의 경우는 큰 제재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시가 주도해 장애인화장실 정보를 시민이 모으는 캠페인 자체가 시민들에게도, 시에도 일종의 '학습 효과'가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시민들이 만든 민간 장애인화장실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게 되는 건 덤이다.

프로젝트 홈페이지에 화장실 관리 가이드라인을 정리해 넣었다. 서울시 전역을 다니면서 장애인화장실 수백 개를 보며 느꼈던 점을 쏟아놨다. '잠그지 말고 항상 운영해 달라. 항상 여는 게 어렵다면 관리자 연락처를 붙여 달라'는 기본적인 요청부터 시작하여 '대변기 옆 공간 중 넓은 공간은 휠체어 사용자들이 옮겨 앉을 때 사용하니 휴지통이나 청소도구가 놓여 있지 않게 해 달라'는 내용까지 세부적이다.

많은 휠체어 이용자가 괜찮은 장애인화장실을 발견하고는 '유레카'를 외치는 걸 보면 서글프다. 심리학자 매슬로의 5단계 욕구 이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오줌권', 즉 생리적 욕구는 행복이나 자아실현 이전 가장 기본적인 욕구다. 이런 측면에서 서울시의 '휠체어도 가는 화장실 찾기' 프로젝트는 단순히 화장실 정보를 모으는 것 이상이다. 시민들이 평소엔 가볼 일이 없는 장애인화장실을 가보고 '내가 휠체어를 탔다면 여기에서 휠체어를 돌릴 수 있을까'라고 상상하는 것, 빌딩 운영자들이 장애시민을 이용자와 고객으로 좀 더 선명히 인식하는 것. 모든 시민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존중하겠다는, 현장의 변화는 그렇게 시작될 것이다.


홍윤희 장애인이동권증진 콘텐츠제작 협동조합 '무의'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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