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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인간으로 안 보는 이스라엘·하마스...잔혹한 보복전에 민간인 대량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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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인간으로 안 보는 이스라엘·하마스...잔혹한 보복전에 민간인 대량학살

입력
2023.10.12 04:30
수정
2023.10.12 10:32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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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팔 갈등 사망자 2,255명 넘어서
키부츠서 아기 시신만 40구 발견
가자에 금지된 백린탄 사용 주장도
지상전 시작되면 피해 더 커질 듯

10일 가자지구 시파 병원으로 한 남성이 이스라엘의 보복 폭격으로 다친 아이를 안아 옮기고 있다. 가자=AFP 연합뉴스

10일 가자지구 시파 병원으로 한 남성이 이스라엘의 보복 폭격으로 다친 아이를 안아 옮기고 있다. 가자=AFP 연합뉴스

버스를 기다리다가, 축제에서 춤을 추다가, 집안일을 하다가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총격에 이스라엘 민간인들이 무참히 살해당했다. 이스라엘은 ‘피의 복수’를 다짐하면서 하마스가 통치하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주택, 학교, 병원, 구호단체 사무실 등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 폭격을 퍼부었다. 반인도적 살상무기로 사용이 금지된 ‘백린탄’을 쐈다는 증언도 나온다.

이스라엘의 극우 정부와 하마스의 극단적인 보복전은 무력 충돌이 시작된 지 나흘째인 11일(현지시간) 기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서 각각 1,200명과 1,055명의 사망자를 내면서 폭주했다. 부상자는 8,000명을 넘었다. 참혹한 전장에는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에 대한 물음만 대답 없이 떠돌고 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서로를 인간으로 대하지 않기에 보복은 끝없이 잔인해졌다.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가자지구의 ‘완전한 포위’를 명령하면서 “하마스는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이니 그에 맞게 행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하마스는 모든 이스라엘인을 군인으로 간주한다. 민간인에 대한 공격을 서슴지 않는 이유다.

하마스, 이스라엘 곳곳서 민간인 학살

미 뉴욕타임스(NYT)는 10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공격을 담은 폐쇄회로(CC)TV와 휴대폰 영상 등을 공개했다. 왼쪽 상단 사진부터 시계방향으로 이스라엘 남부 사막지대에서 열린 음악 축체 노바 페스티벌과 크파르 아자, 스데로트, 비에레 키부츠에서 일어난 민간인을 상대로 한 하마스의 잔혹한 총격의 순간을 보여준다. NYT 캡처

미 뉴욕타임스(NYT)는 10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공격을 담은 폐쇄회로(CC)TV와 휴대폰 영상 등을 공개했다. 왼쪽 상단 사진부터 시계방향으로 이스라엘 남부 사막지대에서 열린 음악 축체 노바 페스티벌과 크파르 아자, 스데로트, 비에레 키부츠에서 일어난 민간인을 상대로 한 하마스의 잔혹한 총격의 순간을 보여준다. NYT 캡처

미국 워싱턴포스트(WP)와 CNN방송 등은 10일 오전까지 전투가 계속된 이스라엘의 크파르 아자의 대학살 현장을 보도했다. 농업 공동체 키부츠가 있던 이 지역을 탈환한 이스라엘군은 시신 수습을 시작하며 참상을 공개했다. 아기를 포함해 온 가족이 집 안에서 총살당한 사례가 수없이 확인됐고, 발견된 아기 시신만 40구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목이 잘린 채 숨진 어린이가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커피가 든 찻잔과 우유 한 병이 놓인 식탁 아래의 얼룩진 핏자국은 지난 7일 하마스의 기습 공격이 파괴한 주말 아침의 평화로운 풍경을 고스란히 보여준다고 WP는 전했다. 이스라엘군 관계자는 “그저 아침 식사를 하려던 평범한 시민들이 희생됐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남부 베에리 키부츠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 영상에는 무장한 하마스 대원이 키부츠로 진입하려는 자동차에 총격을 가하는 모습이 담겼다. 이 지역에서만 100명 이상의 희생자가 확인됐다. 스데로트의 한 버스 정류장에서는 민간인 7명의 시신이 뒤엉켜 있었다.

10일 이스라엘 크파르 아자 키부츠에서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에 의해 살해된 주민들의 시신이 수습된 채 바닥에 놓여 있다. 크파르 아자=AP 연합뉴스

10일 이스라엘 크파르 아자 키부츠에서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에 의해 살해된 주민들의 시신이 수습된 채 바닥에 놓여 있다. 크파르 아자=AP 연합뉴스

하마스는 시신 260구가 나온 음악 축제 ‘슈퍼노바 페스티벌’에서 총을 난사하면서 도망치는 이들에게 조준 사격을 하기도 했다. 한 생존자는 CNN 인터뷰에서 “시신들 사이에 몸을 숨겨 탈출했다”면서 “우리는 그저 축제를 즐기려는 청년들이었다”고 울분을 토했다.

‘아비규환’ 가자지구… 거대한 감옥 됐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주민들이 11일 이스라엘 폭격으로 무너진 건물 사이를 걷고 있다. 가자=AFP 연합뉴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주민들이 11일 이스라엘 폭격으로 무너진 건물 사이를 걷고 있다. 가자=AFP 연합뉴스

이스라엘이 하마스에 대한 ‘끝장 보복’을 선언하면서 전면 봉쇄한 가자지구 역시 생지옥이 됐다.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에서 1,300개 이상의 목표물을 타격했다. 하마스 관련 시설을 겨냥했다지만 학교 48곳, 병원 7곳이 파괴됐다고 미국 뉴욕타임스가 팔레스타인 당국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학교가 노약자와 민간인들의 대피소로 쓰이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피하지 않은 것이다. 유엔 건물도 공격을 받았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가자지구의 주민들을 향해 “즉시 떠나라”고 경고했지만, AP통신은 대부분이 대피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스라엘이 통행로인 에레즈와 라파 검문소를 사실상 폐쇄한 탓에 나갈 수도 없는 처지다. 지하실로 대피했던 약 30여 가구의 가족들이 건물이 무너지면서 그대로 갇히는 참상도 벌어졌다고 영국 BBC방송은 전했다.

전력, 수도, 식량 등의 보급도 중단됐다. 전기를 공급하는 가자지구의 유일한 발전소는 연료가 바닥나 가동을 멈췄다. 가자지구의 한 여성은 아이의 분유조차 떨어져 가는 상황을 한탄하며 “이스라엘을 공격한 것이 내 아이였나”라고 호소했다. WP에 따르면 200만 명이 넘는 가자지구 인구의 절반이 어린이다.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주거지역에 백린탄을 사용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백린탄은 한번 불이 붙으면 쉽게 꺼지지 않고, 꺼질 때까지 뼈와 살을 파고들며 타올라 제네바협정 등에서 금기시하는 무기다. 가자지구 주민 모하메드 알 무그라비는 “가자지구에서 이제 안전한 곳은 남아 있지 않다”고 말했다.

가자지구 지상군 투입 임박…확전 가능성

11일 레바논과 국경을 접한 이스라엘 북부 갈릴리에 이스라엘의 탱크가 늘어서 있다. 갈릴리=AFP 연합뉴스

11일 레바논과 국경을 접한 이스라엘 북부 갈릴리에 이스라엘의 탱크가 늘어서 있다. 갈릴리=AFP 연합뉴스

이미 막대한 인명 피해가 발생했지만, 양측의 확전 분위기는 뚜렷해졌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지상군 투입이 임박했다는 전망도 나왔다. 이스라엘군은 10일 예비군 30만 명과 탱크를 가자지구 인근 이스라엘 남부에 배치했다고 밝혔다. 인근에 거주하는 이스라엘인들에게 대피령도 내렸다고 영국 가디언은 전했다. 하마스 역시 이스라엘 남부를 향한 로켓 공격을 이어가면서 납치된 인질을 처형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11일 하마스는 이스라엘 텔아비브 벤 구리온 국제공항을 향해 로켓을 발사했다.

전선이 확대될 가능성도 보인다. 시리아는 전날 이스라엘에 박격포 공격을 가했고, 레바논에 거점을 둔 무장단체 헤즈볼라도 이스라엘 군용 차량을 폭격했다. 10일엔 레바논에서 이스라엘군 기지를 향해 대전차 미사일이 발사됐다. 이스라엘도 레바논 남부에 폭격을 가하며 레바논과 이스라엘의 국경인 블루라인에서 반복적으로 충돌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보복에 성공해 승리하더라도 지속적인 평화를 보장하지 않는다고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전했다. 하마스가 해체되면 가자지구를 누가 통치할 것인지, 또 팔레스타인이라는 국가의 지위는 어떻게 될지에 대한 질문에는 쉽게 답을 내릴 수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군사학의 오래된 격언은 참혹한 현실에 빛이 바랬다.


전혼잎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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