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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락출세-추락한 '닉슨의 히트맨'

입력
2023.10.10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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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 스피로 애그뉴

미국 헌정사상 최초로 정·부통령 모두 임기 중 불명예 퇴진이란 기록을 남긴 리처드 닉슨(오른쪽)과 스피로 애그뉴. AP 연합뉴스

미국 헌정사상 최초로 정·부통령 모두 임기 중 불명예 퇴진이란 기록을 남긴 리처드 닉슨(오른쪽)과 스피로 애그뉴. AP 연합뉴스

리처드 닉슨의 러닝메이트로 1969년 미국 제39대 부통령이 된 스피로 애그뉴(Spiro Agnew, 1918~1996)가 73년 10월 10일 뇌물 수수와 탈세 등 혐의로 사임했다. 57년 공화당원으로 정치에 입문한 지 12년 만이었고, 61년 첫 공직인 볼티모어 카운티 행정관 선출 시점부터 치면 단 8년 만이었다. 그가 낙마한 지 불과 10개월 뒤인 74년 8월 9일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닉슨까지 사임했으니, 만일 애그뉴의 비리가 용케 은폐됐거나 조금만 늦게 드러났다면 그는 대통령까지 되었을 수 있었다. 닉슨-애그뉴 행정부는 미국 역사상 최초로 정·부통령 모두 수치스럽게 임기를 채우지 못한 유일한 정부였다.

그는 그리스계 이민자 아들로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서 태어나 제2차 세계대전 유럽전선에서 3년간 복무하며 동성무공훈장을 탔다. 볼티모어대 로스쿨 출신 변호사로서 공화당원이 된 그는 의원 비서 등을 거쳐 카운티 행정관이 됐고, 66년 주지사가 됐다. 주지사 시절 그는 저소득층 복지와 인종차별 철폐 등 진보적 정책으로 상당한 지지를 얻었고, 인권 시위 현장 폭동과 무질서에 대해서는 강경하게 대응함으로써 합리적인 보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닉슨은 법질서를 중시하는 완고한 반공주의자인 그를 러닝메이트로 발탁, 68년과 72년 선거에서 잇달아 승리했다. 반전 시위와 시민 인권운동으로 혼란스럽던 시대, 그는 닉슨의 궂은일들 특히 시위 비판과 시위대에 동조하는 민주당 좌파 정치인들에 대한 비난 등을 도맡아 했고, 시위대 폭력에 동조하는 자유주의자들에겐 "국가적 마조히즘을 조장하는(...) 자칭 지식인이라는 뻔뻔스러운 속물군단"이라고 독설을 퍼붓기도 했다. 그는 ‘닉슨의 히트맨’이라고 불렸다.

벌금 1만 달러와 집행유예 3년 형과 함께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한 그는, AP뉴스에 따르면 부고 기사조차 거의 보도되지 않았을 만큼 잊힌 존재가 됐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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