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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조건물 저승사자 흰개미, '봄이'가 킁킁하면 다 잡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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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조건물 저승사자 흰개미, '봄이'가 킁킁하면 다 잡혀요

입력
2023.09.3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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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일 흰개미 탐지견 '봄이' 이야기

경북 안동 도산서원 앞에서 흰개미 탐지를 마친 봄이가 잠시 휴식을 즐기고 있습니다. 한국특수탐지견센터 제공

경북 안동 도산서원 앞에서 흰개미 탐지를 마친 봄이가 잠시 휴식을 즐기고 있습니다. 한국특수탐지견센터 제공

‘목조건물의 저승사자’에게 우리나라가 뚫렸습니다. 지난 5월 서울 강남구에 이어 지난 9일 경남 창원시의 주택가에서 외래 흰개미가 발견됐기 때문입니다. 특히 창원에서 발견된 인사이스테르미스 마이너, 일명 ‘마른나무흰개미’라고 불리는 종은 악명이 높습니다. 습한 환경에 살면서 땅에 접촉한 목재만 갉아먹는 국내 흰개미와 달리, 생존력이 강해 어디에서든 서식하며 목조 구조물을 닥치는 대로 갉아먹기 때문입니다. 목조주택이 많은 미국에서는 대표적인 해충으로 꼽히죠.

지난 26일 정부합동조사단의 발표에 따르면 이 외래 흰개미가 최소 10년 전에 국내로 유입돼 이미 정착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기후변화로 우리나라 기온도 상승하면서 아열대종인 흰개미가 건축 자재 수입 과정에서 넘어와 번식하게 된 겁니다.

최근 외래 흰개미가 등장한 현장에는 늘 곱슬머리 강아지 한 마리가 있습니다. 탐지견 ‘봄이’입니다. 올해 두 살인 봄이는 현재 국내 유일의 흰개미 탐지견입니다. 흰개미가 뿜어내는 고유한 냄새를 구분해 흰개미와 서식지를 찾아내죠. 흰개미 탐지에는 초음파 장비인 ‘터마트랙’도 활용되지만 기계가 채우지 못하는 빈자리를 봄이가 대신하고 있습니다.

탐지견 봄이가 지난 11일 경남 창원의 한 주택에서 외래종 흰개미를 탐색하고 있다. 환경부 제공

탐지견 봄이가 지난 11일 경남 창원의 한 주택에서 외래종 흰개미를 탐색하고 있다. 환경부 제공

2016년 보람·보배가 약 10년간의 활동 끝에 은퇴한 뒤로 한동안 흰개미 탐지견의 자리는 비어 있었습니다. 당시 두 탐지견의 훈련을 맡았던 박병배 한국특수탐지견센터 대표가 봄이를 만나 훈련을 시작하면서 명맥을 잇게 됐습니다.

봄이 역시 지난 4월부터 정식 탐지활동을 시작한 신입입니다. 잉글리시 스프링거 스패니얼 종인 봄이는 사실 영국에서 태어났습니다. 영국에서 탐지견이 되기 위해 1년간 훈련을 받은 뒤 지난해 말 한국으로 왔죠. 이후 박 대표와 함께 약 4개월간 흰개미 탐지 집중 훈련을 받았어요. 약 20개의 타깃 중 실제 흰개미 서식지를 찾아내는 시험, 나아가 사찰 같은 실제 목조문화재에 숨은 흰개미의 흔적을 찾아내는 실전 테스트를 훌륭하게 수행한 뒤 탐지견 자격을 얻게 됐다고 하네요.

봄이를 비롯해 역대 흰개미 탐지견들은 잉글리시 스프링거 스패니얼 종이었어요. 후각이 뛰어난 것은 물론 사람을 잘 따르고 끈기가 있어 늘 훌륭하게 임무를 수행한다고 하네요. 박병배 대표는 “더우면 그늘로 숨어버리는 다른 강아지들과 달리 봄이는 헥헥거리면서도 끝까지 탐색을 하는 등 목적의식이 강하다”며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 특성상 더욱 적합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잉글리시 스프링거 스패니얼 종인 봄이는 영국에서 태어났지만 흰개미 탐지견이 되기 위해 지난해 한국으로 건너왔습니다. 한국특수탐지견센터 제공

잉글리시 스프링거 스패니얼 종인 봄이는 영국에서 태어났지만 흰개미 탐지견이 되기 위해 지난해 한국으로 건너왔습니다. 한국특수탐지견센터 제공

기후변화로 인해 우리나라에는 점점 더 흰개미 피해가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국가지정 목조문화재에 대한 흰개미 피해 조사가 369건 시행됐고 이 중 20%에 달하는 71건에 방제가 진행됐습니다. 봄이는 주로 목조문화재 피해를 막기 위해 출동하지만, 최근에는 주택·한옥 등에서도 탐지 요청이 많이 오고 있다고 합니다. 박 대표는 “앞으로 외래 흰개미가 확산되는 건 시간문제인데 봄이 혼자 탐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더 많은 탐지견을 양성할 수 있도록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신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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