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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객 잡다 다쳤는데, 남은 건 장애와 빚더미뿐"... '공상 경찰관'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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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객 잡다 다쳤는데, 남은 건 장애와 빚더미뿐"... '공상 경찰관'의 눈물

입력
2023.09.23 04:30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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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출동 나갔다 어깨관절 찢어져
온몸 만신창이 됐지만, 보상은 찔끔
현실과 동떨어진 공상 기준 바꿔야

경찰이 21일 세종시 조치원역에서 흉기난동 범죄에 대비한 기동훈련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찰이 21일 세종시 조치원역에서 흉기난동 범죄에 대비한 기동훈련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쳐도 국가가 책임져준다는 믿음이 있어야죠. 제게 남은 건 장애와 빚, '공상 빌런(악당)'이라는 동료들의 눈총뿐입니다."

19일 오후 8시 서울 송파구 경찰병원. 인천중부경찰서 소속 최지현(35) 경사의 몸에서 파스 냄새가 진동했다. 최 경사는 이날 척추관절을 녹이던 염증 제거 수술을 받았다. 자가면역질환으로 온몸에 염증이 퍼지고 지난해엔 뇌출혈까지 왔다. 통증을 억누르려 파스를 달고 산다.

7년 전 지명수배자 23명을 잡아들여 1년 만에 1계급 특진했을 정도로 유능한 경찰관이었다. 그랬던 그는 지금 "부상에 대한 보상이나 지원 대책 없이 현장에 경찰관을 투입하는 건 사지로 내모는 것"이라고 울분을 토한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빚도 서러운데 동료들은 "네 몸 네가 간수해야"

19일 서울 송파구 경찰병원 앞 카페에서 최지현 경사가 불합리한 공상 제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서현정 기자

19일 서울 송파구 경찰병원 앞 카페에서 최지현 경사가 불합리한 공상 제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서현정 기자

악몽은 2017년 2월 시작됐다. 최 경사는 야간근무 중 호프집에서 난동을 부리는 김모씨를 연행했다. 저항이 심하니 수갑을 채우지 말라는 지시가 떨어졌고, 경찰서로 향하는 내내 김씨는 뒷좌석에서 그를 향해 발길질을 했다. 어깨 관절이 찢어졌다. 수술을 두 번이나 받았지만,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휴직을 택했다.

편히 치료받을 수도 없었다. 3년 안에 복직하지 않으면 직권면직이 돼 2021년 2월 현장에 돌아왔다. 재활치료를 받으러 매주 두세 번은 병원에 가야 했으나, 동료들은 꾀병 아니냐는 의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봤다. 따돌림도 뒤따랐다. 정신적 스트레스까지 겹쳐 그의 몸 상태는 갈수록 나빠졌다.

몸과 마음만 만신창이가 된 게 아니다. 지금까지 비급여 치료비로 낸 돈은 약 1억2,000만 원. 이날도 수술비로 200만 원을 썼다. 하지만 정부가 준 지원금은 5,000만 원이 고작이다. 공무원 대출에, 연 이자 18%인 캐피털 대출까지 끌어다 썼지만 역부족이었다. 매년 갱신해야 하는 공상(공무상 재해 보상) 인정도 복직을 이유로 연장이 불허됐고, 그 길로 지원금은 끊겼다.

"동료들은 '네 몸은 네가 간수해야지'라고 하네요. 경찰관들은 계속 다치는데 제도는 그대로입니다.”

보상 기준 까다롭고, 금액도 턱없이 부족

최지현 경사 등에 통증마취주사를 맞은 흔적이 선명하다. 최 경사는 "온몸에 주삿바늘 자국이 남아 있고, 장기간 통증과 염증에 시달리다 등 피부가 착색됐다"고 했다. 최 경사 제공

최지현 경사 등에 통증마취주사를 맞은 흔적이 선명하다. 최 경사는 "온몸에 주삿바늘 자국이 남아 있고, 장기간 통증과 염증에 시달리다 등 피부가 착색됐다"고 했다. 최 경사 제공

그가 비판하는 제도는 현실과 동떨어진 공상 지급 기준이다. 이달 1일 부산의 목욕탕 화재 현장에 나갔다 손가락과 얼굴은 물론 신경, 관절까지 화상을 입은 김모(36) 경사는 한 달도 안 돼 1,200만 원가량의 병원비 청구서를 받아 들었다. 거동이 불편하지만 간병비 지원은 화상부위가 신체의 35% 이상이 돼야 받을 수 있다. 이마저도 하루에 많아야 6만7,140원이라 실비(15만 원)를 감당하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한 액수다.

‘이중배상 금지’ 조항도 있다. 공무원 재해보상법에 따르면, 공상 공무원이 가해자로부터 손해배상을 받으면 배상액 범위에서 지원금을 받을 수 없다. 손해배상금과 국가가 주는 치료비를 같이 받을 수 없다는 뜻이다. 최 경사도 김씨를 상대로 손배소를 냈지만, 1심 재판부는 손해액의 30%인 4,5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김씨가 불복해 소송이 진행 중이나 판결이 나온 이상 그간 공무원연금공단에서 수령해온 지원금을 국가에 반납해야 한다.

올 6월 '공상추정제'가 시행돼 공무와 재해 사이 인과관계를 개인이 아닌 국가가 부담하도록 법이 바뀌긴 했다. 다만 심혈관계, 정신질환 외에 경찰관들이 주로 겪는 어깨, 허리 등 근골격계 질환은 적용 직무에서 빠져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경찰청이 집계한 최근 5년간 공상 경찰관은 8,540명. 이학영 경찰·소방공상자후원연합회 회장은 "공상자들은 돕기 위한 모금도 미미한 실정"이라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경찰이 원하는 만큼 치료받을 수 있도록 국가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근골격계 질병의 공무상 질병 추정 기준. 자료=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근골격계 질병의 공무상 질병 추정 기준. 자료=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서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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