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공시 요구 않는 자본시장법, 기본권 침해"
그린피스·시민 167명, 헌법소원심판 청구
‘기후공시’ 제도 도입을 촉구하는 취지의 헌법소원이 제기됐다. 현행 자본시장법이 기업의 기후위기 대응 관련 정보 공개를 요구하지 않아 투자자의 재산권을 침해하고 국민의 환경권을 위협한다는 것이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는 20일 오전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이 같은 내용의 헌법소원심판 청구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이번 헌법소원에는 시민 167명이 청구인으로 동참했다.
기후공시는 온실가스 배출량과 같은 기본적인 정보를 넘어 기후변화에 따른 사업환경 변화와 이에 따른 경영전략 등을 기업이 사업보고서에 공개하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재난 등으로 인한 물리적 위험은 물론, 기후변화 적응·대응 노력과 이에 관한 신사업 기회 등도 포함된다.
청구인들은 정부가 기후공시 도입을 미루는 것이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기업의 기후대응 정보가 투자 결정에 필수적인 사항임에도 불구하고, 상장법인이 사업보고서에 기재해야 할 내용을 규정한 자본시장법 제159조 제2항과 시행령 등엔 이 같은 내용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린피스는 정보불균형으로 인한 환경권 침해 문제도 지적했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열풍으로 기업의 친환경 경영에 대한 홍보가 늘었지만, 구체적인 정보는 공개되지 않아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이 발생해도 확인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법률대리인인 이영주 법무법인 원 변호사는 “심각한 기후위기 상황에서 기업의 대응 능력은 주가에 중대한 영향을 주는 핵심 정보”라며 “기후공시는 기업의 기후위기 대응을 유도해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조치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제사회는 이미 관련 기준을 체계화하고 기후공시 의무화에 돌입했다. 미국은 당장 내년부터, 유럽은 2025년부터 상장법인의 기후공시가 시작될 예정이다. 국제회계기준(IFRS)재단 역시 지난 6월 기후공시의 국제표준 격인 국제지속가능성위원회(ISSB) 공시기준을 확정했다. 기후정보가 기업의 재무건전성과 성장가능성을 따지는 데 필수 요소가 됐다는 얘기다. 이 같은 흐름에 따라 향후 해외 투자자들이 우리나라 기업에도 기후 관련 정보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현재 국내 기업들은 지속가능보고서 등을 통해 기후 환경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기업의 자발적인 발표라 기준도 각각 다르고 정보 신뢰성이 떨어진다. 이에 국내에서도 제도 도입 논의가 진행 중이나 국제사회의 속도에 비하면 제자리걸음이다. 금융위원회는 2025년부터 자산 2조 원 이상 대기업을 대상으로 ESG 공시 도입을 추진 중이지만 산업계의 반발을 고려해 유예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금융위는 올해 3분기로 예정됐던 공시 기준과 단계별 로드맵 발표도 4분기로 미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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