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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은 악마, 러시아 규탄은 할 말을 소리 내어 했을 뿐"… 러시아 지휘자 비치코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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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은 악마, 러시아 규탄은 할 말을 소리 내어 했을 뿐"… 러시아 지휘자 비치코프

입력
2023.09.19 15:19
수정
2023.09.19 16:18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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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4일 첫 내한하는 체코 필하모닉 상임 지휘자 세묜 비치코프
"러시아 국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음악가 배척은 안 돼"
"4월 협연한 조성진은 대단한 음악 파트너이자 훌륭한 사람"

지휘자 세묜 비치코프. 인아츠프로덕션 제공

지휘자 세묜 비치코프. 인아츠프로덕션 제공

"악(evil) 앞에서 침묵하는 것은 악의 무리와 공범이 되는 것이자 결국 그들과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다."

구소련 출신으로 러시아계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지휘자 세묜 비치코프(71)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 가장 먼저 비판 목소리를 낸 클래식 음악가 중 한 명이다. 그는 침공 이튿날인 지난해 2월 25일 이렇게 시작하는 장문의 러시아 비판 성명을 발표했다.

다음 달 체코 필하모닉의 상임지휘자로 한국을 처음 방문하는 비치코프는 공연을 앞두고 최근 가진 이메일 인터뷰에서 "평생 정치에 관여하지 않고 살아왔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언급은 정치가 아닌 삶과 죽음, 즉 인류의 실존에 관한 이야기"라며 "나는 그저 인간으로서 해야 할 말을 침묵하지 않고 소리 내어 말했을 뿐"이라며 전쟁 비판 목소리를 낸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힘없는 사람이 폭력적으로 얻어맞고 있는 것을 보면 누구라도 최소한 경찰에 신고라도 할 것"이라며 "나는 그와 똑같은 행동을 했다"고 말했다.

그가 '행동하는 지휘자'가 된 것은 가족사와 연관이 깊다. 그의 조부는 전쟁에 나가 돌아오지 못했고, 아버지는 전쟁 때 두 차례나 부상을 입었다. 비치코프는 23세 때 미국으로 떠났다. 과학자였던 그의 아버지가 뒤따를 계획이었지만 구소련 정부가 이주를 불허해 떠나지 못했다. 구소련을 떠날 때 국적을 박탈당한 비치코프는 12년 뒤 미국 시민권을 딴 후에야 조국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다만 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불었던 러시아 국적 음악가 배척 바람에 대해서는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다. 비치코프는 "러시아 국적 음악가를 무조건적으로 반대할 게 아니라 한 명 한 명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며 "음악가 개인이 푸틴을 지지하고 정부 선전으로 많은 혜택을 받아 왔는지, 아니면 그저 러시아 국적을 가졌을 뿐인지 살펴보고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휘자 세묜 비치코프. 인아츠프로덕션 제공

지휘자 세묜 비치코프. 인아츠프로덕션 제공

뉴욕 매네스 음대를 졸업한 비치코프는 1985년 아픈 리카르도 무티를 대신해 베를린 필하모닉 무대에 올라 주목받는 데뷔 무대를 치렀고, 베를린 필과는 현재까지 꾸준히 호흡을 맞추고 있다.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 명예 지휘자로 매년 BBC 프롬스 무대에 초대받아 오르고 있기도 하다.

비치코프는 온화하고 인간적인 지휘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2017년 체코 필의 오랜 지휘자였던 이르지 벨로흘라베크가 타계하고 슬픔에 빠져 있던 체코 필하모닉은 비치코프가 객원 지휘자로 이끌었던 공연에 감동했다. 무대 뒤로 찾아온 이들이 그에게 "우리의 아빠(Our Daddy)"가 돼 달라고 요청한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악단에 대해 "전 세계에서 몇 안 되는 고유의 색과 정체성, 음색, 음악성을 지닌 오케스트라"라고 소개했다.

그는 체코 필과 10월 24일 예술의전당, 25일 대구콘서트하우스에서 체코 작곡가 드보르자크의 피아노 협주곡(협연 후지타 마오)과 교향곡 7번 등을 들려준다. 드보르자크의 작품만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한 이유에 대해서는 "체코 필은 프라하 현지에서 드보르자크의 음악으로 이번 시즌을 열었기 때문에 투어 일정도 더 잘 준비할 수 있다는 현실적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비치코프는 이번이 첫 한국 방문이지만 지난 4월 체코 필의 유럽 투어 무대에서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프랑스의 작곡가이자 오르간 연주자인 티에리 에스케슈의 '교향적 연습곡' 세계 초연을 이끈 경험이 있다. 그는 "조성진은 대단한 음악 파트너이자 훌륭한 사람으로, 나를 포함한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그와 함께한 시간은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고 돌아봤다.

지휘자 세묜 비치코프. 인아츠프로덕션 제공

지휘자 세묜 비치코프. 인아츠프로덕션 제공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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