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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끼리 경쟁만으로 '재판 지연' 해결 못해" 현직 부장판사 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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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판사끼리 경쟁만으로 '재판 지연' 해결 못해" 현직 부장판사 쓴소리

입력
2023.09.17 19:00
수정
2023.09.17 20:23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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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 형해화, 재판 개입 흑역사 우려도"
"업무환경 개선 우선돼야" 이균용 견제?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 앞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 앞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 한국일보 자료사진

‘판사 간 경쟁’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재판 지연의 해법이 될 수 없다고 현직 부장판사가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평소 법원도 내부 경쟁이 필요하다는 소신을 밝혀온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를 겨냥한 쓴소리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정욱도(47·사법연수원 31기) 의정부지법 부장판사는 최근 법원 내부망 ‘코트넷’에 ‘판사의 경쟁: 생각할 몇 가지’라는 제목의 글을 게시했다. 요지는 “판사끼리 경쟁만으로 재판 지연을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 부장판사는 글에서 “판사들의 경쟁이 부족한지 생각해봐야 한다”며 “절대다수 판사는 동료나 전임자에게 뒤처지지 않으려고 애쓰며, 접수건수와의 경쟁을 통한 처리율 100% 달성에 매달린다”고 설명했다. 그는 “(고법 부장제가 있을 때) ‘근무평정 대상이 아닌 고법 부장’과 ‘특별히 인정받을 필요가 없는 지법 부장판사’의 경쟁은 의미가 없었지만 일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재판 지연은 김명수 대법원의 유산으로 비판받고 있다. 김 대법원장 재임 때 △고법 부장판사 승진제(고법 부장제) 폐지로 보상 체계가 붕괴됐고 △법원장 추천제가 도입된 탓에 관리·감독 기능도 약화됐으며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문화가 확산됐다는 것이다. 성과를 통해 고법 부장판사나 법원장으로 승진할 기회가 사라지자, 판사들이 워라밸을 추구하면서 재판 속도가 느려졌다는 논리다.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가 1일 서울 서초구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뉴시스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가 1일 서울 서초구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뉴시스

하지만 정 부장판사는 재판이 늦어지는 진짜 원인은 갈수록 복잡하고 어려워지는 사건에 있다고 짚었다. 판사가 다뤄야 하는 사건은 까다로워졌는데, 신속한 재판을 위해 경쟁만 강조하다 보면 구술주의(변론 등을 말로 해야 한다는 민사소송법상 원칙)가 형해화(형식만 남음)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그는 “사건을 빨리 떼야만 보상을 받을 판사들에게 ‘적정성’은 신속성에 밀리는 가치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법원장 추천제 폐지로 판사들의 눈치를 크게 살피지 않는 법원장이 (신속한 사건 처리를) 독려한다면 재판 내용에 관한 언행도 이뤄질 위험이 커지므로, (재판 개입이라는) 사법부 최대 흑역사를 반복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면서 재판 독립성을 침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 부장판사는 법관 증원 등 업무환경 개선을 대책으로 제시했다. 그는 “판사들이 타의로 경쟁에 몰렸다가 뜬금없이 ‘루저(패배자)’가 되면 자부심과 사명감, 공익에 대한 헌신 같은 근무의욕을 끌어내 온 동력이 상실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고 했다.

법원 안팎에선 19, 20일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둔 이균용 후보자를 향한 견제 아니냐는 평가도 있다. 서울남부지법원장 시절 사건 처리를 독려했던 이 후보자가 대법원장이 되면 근태 압박을 앞세워 재판 지연 문제를 해결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지역의 한 부장판사는 “요즘도 밤늦게 퇴근할 때가 많고 가끔 주말도 반납하고 일하는데, 법원에 우수한 인재가 들어올 이유마저 점점 사라지고 있다”며 “격무를 몰아붙이는 건 재판 지연의 적절한 해법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 후보자가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준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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