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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와!" "하지 마!" 교육감 성토장 된 대전 교사 추모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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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와!" "하지 마!" 교육감 성토장 된 대전 교사 추모제

입력
2023.09.16 00:10
수정
2023.09.17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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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천에도 검은 옷 입은 교사 수백명 운집
곳곳서 흐느낌... 꽃집들 국화꽃 무료 제공
설동호 교육감 단상 오르자, 교사들 등돌려 앉아

15일 오후 대전시 서구 둔산동 대전시교육청 앞에서 열린 대전 용산초 교사 A씨 추모제에 참석한 교사가 국화를 손에 쥔 채 동료 어깨에 기대 흐느끼고 있다. A교사는 학부모의 악성 민워에 시달리다 이달 초 극단적인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다. 연합뉴스

15일 오후 대전시 서구 둔산동 대전시교육청 앞에서 열린 대전 용산초 교사 A씨 추모제에 참석한 교사가 국화를 손에 쥔 채 동료 어깨에 기대 흐느끼고 있다. A교사는 학부모의 악성 민워에 시달리다 이달 초 극단적인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다. 연합뉴스

“선생님과의 추억, 선생님의 사랑, 기억하겠습니다.”

학부모의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한 대전 용산초 A교사 추모제가 15일 오후 대전시 둔산동 대전시교육청 앞에서 열렸다. 가을비가 추적거리는 날씨였지만, 검은 옷을 입은 수백 명의 교사들과 시민들이 LED 촛불로 준비된 공간을 가득 채웠고, 늦게 도착한 이들은 그 주변에 삼삼오오 모여 추모에 동참했다. 어린 아이를 안고 가족 단위로 온 교사와 시민들도 눈에 띄었다.

본격적인 행사에 앞서 추모 동영상이 상영되자 참석자들은 흐느끼기 시작했다. 대전 노은동의 한 학교에서 온 허모 교사는 “A선생님을 한 사람만이라도 도와줬더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일면식도 없지만 너무 미안한 마음에 나왔다”고 울먹였다. 또 유모차를 이끌고 행사장을 찾은 한 교사는 “육아휴직 중이지만 다른 선생님들과 같이 행동하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아 나왔다”고 했다. 이날 행사에는 경찰 추산 700여 명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의 흐느낌이 빗소리에 묻히고, 행사장 옆을 지나는 차량도 서행하는 등 비교적 차분하게 진행되던 추모제는 설동호 대전시 교육감이 단상에 오르자 반전했다. 행사장 맨 앞쪽에 교사들과 나란히 앉아 있다가 추모사를 낭독하기 위해 오른 터였다.

“가해자가 여기 왜 왔나!” “하지 마!” 등의 고함이 곳곳에서 터졌다. 사회자의 만류에도 야유와 성토는 멈추지 않았다. 설 교육감이 더 큰 소리로 추모사를 읽어 내려갔다. 참석자들은 무대를 등지고 돌아앉기 시작했다. 어떤 이는 귀를 틀어막았고, 어떤 이들은 더 크게 울먹였다.

공교육 멈춤의 날 '연가 불허' 설동호 교육감 등장에 “가해자!”... 고성도 오가

앞서 행사 진행자가 “이날 행사는 A교사를 추모하고, 이번 일로 상처받은 교사들이 서로 위로하는 행사다. 추모 집회가 아니라 추모제”라고 거듭 밝힌 터였지만, 이들은 교육감에 대한 불신을 더 노골적으로 표시했다. ’(교육감) 내려와!’ ‘내려와!’ ‘내려와!’를 떼창 하듯 외쳤다. 한 시민은 추모사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온 교육감에게 다가가 항의했고, 설 교육감도 고성으로 받아치기도 했다.

대전의 한 중학교에서 온 한모(38) 교사는 “서이초 교사 사건 이후 한 달 반이 지나도록 아무런 대책 없이 있다가 이번 일이 터진 뒤 교육감이 내놓은 대책이라는 게 전담 변호사 배치, 녹음 기능이 탑재된 전화기 설치 같은 것들이었다”며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과 능력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고 일갈했다. 설 교육감은 9ㆍ4 공교육 멈춤의 날 당시 교사들의 행동을 사실상 ‘불법’으로 간주, 연가를 불허했다.

이어 동료 교사들의 추모사 낭독이 이어지자, 참석자들의 얼굴엔 눈물이 빗물과 섞여 흘렀다. 흐느끼는 소리는 커졌고, 어떤 참석자들은 몸을 앞뒤로 흔들었다. 어떤 이들은 가져온 손수건에 얼굴을 파묻었다.

유족 "학교는 뒷짐... 지켜주지 못해 미안"

15일 오후 대전시교육청 앞에서 열린 A교사 추모제에 참석한 이들이 A교사의 동교 등이 읽어내려간 추모사에 흐느끼고 있다. 정민승 기자

15일 오후 대전시교육청 앞에서 열린 A교사 추모제에 참석한 이들이 A교사의 동교 등이 읽어내려간 추모사에 흐느끼고 있다. 정민승 기자

A교사의 남편과 부모, 남동생도 추모제를 찾아와 주변을 숙연케 했다. 남편 안모씨는 “수업시간에 일어난 일인데 (아내는) 교장, 교감으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못했다”며 “개인의 비리, 비위가 아닌 다음에야 정당한 업무 중 발생한 일에 대해선 조직이 나서서 지원하는 시스템이 갖춰지길 바란다”고 했다. A교사의 아버지는 “딸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면서 “두고 간 아이들은 내가 지킬 것”이라며 두 눈을 감았다.

추모제 참석 교사들은 철저한 조사를 요구했다. 포항에서 온 이모(42) 교사는 “수업 시간에 교사가 해야 할 일을 하다 일어난 일인데, 누구 하나 책임지는 관리자가 없었다”며 “A교사와 유가족이 억울함을 풀고, 재발 방지를 위해선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천에서 온 A교사의 대학 동창 이모 교사도 “친구한테서 듣기론 대전의 교육 행정은 관리자 의사에 따라 이뤄지는, 덜 민주주의적인 방식이었다”며 “학교도 교사들을 보호하기 보단 상급기관의 지시 이행에 충실했다”고 꼬집었다. 김현희 전교조 대전지부장도 “2년 전 ‘교원정책에 대한 교원 만족도 조사’에서 대전시교육청은 5%의 만족도로 전국 17개 시ㆍ도 중 골찌를 했다”며 “관리자들의 각성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대전, 교원 만족도 조사서 꼴찌... 관리자들 각성해야"

학부모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으로 숨진 교사 A씨의 추모제가 15일 오후 대전시 서구 둔산동 대전시교육청 앞에서 열린 가운데, 추모제 참석 교사들이 행사장을 떠나기 전 헌화하기 취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학부모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으로 숨진 교사 A씨의 추모제가 15일 오후 대전시 서구 둔산동 대전시교육청 앞에서 열린 가운데, 추모제 참석 교사들이 행사장을 떠나기 전 헌화하기 취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40분여 분간 진행된 추모제는 오후 6시 20분쯤 '꿈꾸지 않으면' 노래로 마무리됐다. 사회자가 추모와 애도의 마음을 담은 제창을 제안했지만, 교사들은 손에 든 국화를 단상에 놓고 빗속으로 사라졌다. 국화는 인근 꽃집들이 '이런 일로 돈을 벌 수 없다'며 무료로 놓고 간 것이다.

이날 행사는 대전교사노조와 대전교원단체총연합회, 전교조 대전지부, 전국초등교사노조 등이 공동으로 개최했다.

대전= 정민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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