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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적 그림 값에 숨겨진 비밀

입력
2023.09.17 19:00
수정
2023.09.18 11:12
25면
0 0
김선지
김선지작가
구사마 야요이, '붉은 신의 호박'

구사마 야요이, '붉은 신의 호박'

서울 코엑스에서 나란히 열린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 서울'이 뜨거운 관심과 열기 속에서 성황리에 마쳤다. 약 77억 원에 팔린 구사마 야요이의 '붉은 신의 호박' 등 수십억 원을 호가하는 미술품들이 화제를 모았다. 소더비, 크리스티 등 세계적인 경매회사에서 거래되는 어마어마한 판매가에 비하면, 이 가격은 소박한 편이다.

앤디 워홀, 프랜시스 베이컨, 루치안 프로이트, 윌렘 드 쿠닝, 로이 리히텐슈타인, 장 미셸 바스키아, 잭슨 폴록, 사이 트웜블리 등 현대 유명 예술가의 작품은 미술시장에서 가장 핫한 자산이다. 정체불명의 한 낙찰자는 제프리 쿤스의 선명한 오렌지색 강철 조각 '풍선 개’(Balloon Dog)에 약 733억 원을 지불했다. 2013년 소더비 경매에서, 앤디 워홀의 자동차 충돌 사고 직후의 모습을 형상화한 '실버 카 크래시’(Silver Car Crash)는 약 1,120억 원에 팔렸다.

도대체 미술작품은 왜 이렇게 비쌀까?

예술품의 가치에 대한 평가는 기본적으로 다음 사항이 고려된다. 우선, 작가가 작품 제작에 어떤 재료를 쓰고 얼마의 비용을 들이는가다. 예를 들어, 큰 유화 작품은 작은 그림보다 물감이 더 들어가며, 특정 재료는 다른 재료보다 비싸다. 캔버스 작품은 일반적으로 종이에 그려진 그림, 스케치, 판화보다 더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 창작에 걸리는 시간, 예술가의 기량과 명성, 작품의 희소성 등도 중요하다. 특히, 예술가가 사망하면, 더 이상 작품을 제작할 수 없으므로 유작들의 가치는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누구의 작품인지도 매우 중요하다. 이전엔 주목받지 못했던 '무고한 사람들의 학살'이란 그림은 최근 작품의 작가가 페테르 파울 루벤스로 확인되자, 그림 가치가 하룻밤 사이에 껑충 뛰었다. 루벤스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한 명으로, 그의 작품의 가치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술품의 상태 또한 작품값에 중요하게 작용한다. 손상되면 값이 크게 떨어진다. 때로는 예술가의 요절이나 그림 주제가 관심을 끌기도 한다. 아름다운 여성을 묘사한 작품은 남성보다 더 높은 가격에 판매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수백억에서 수천억에 이르는 최고가 미술품들의 경우, 위에서 언급한 기준과 관계없는 다른 요인들이 그림값을 결정한다. 그렇다면, 천문학적인 미술품의 가치를 결정하는 요인은 무엇일까?

아시아, 중동, 라틴아메리카, 인도, 미국, 유럽 등 세계 곳곳의 억만장자 수집가들로 이루어진 슈퍼리치 그룹은 ‘억’ 소리 나는 작품 가격에 단단히 한몫한다. 이들이 거액을 들여 미술품을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가의 미술품을 소유함으로써 명품 패션 브랜드 제품이나 대저택, 호화 요트, 명품 자동차와는 다른 차원의 차별화된 부의 과시, 즉 스스로 수준 높은 문화 취향을 가지고 있다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미술품은 자신의 재력과 사회적 지위, 교양을 보여주는 도구가 된다. 또 유명한 미술품은 단순히 호사 취미를 넘어 투자 가치가 높다고 판단하고 구매에 뛰어드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세계 경제는 대체로 침체에 빠져 있지만, '트로피 명화'를 손에 넣으려는 부자들의 욕망과 투자 게임은 작품가를 계속 상승시키고 있다. 물론, 사업적 투자나 위신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작품에 빠져 막대한 돈을 기꺼이 지불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미학적 감식안이 있어서가 아니라 허영심과 더 많은 돈을 위해 예술에 돈을 쓴다.

마크 로스코, '화이트 센터', 1950년, 2,06 x 1.41m, 개인 소장(출처 wikipedia)

마크 로스코, '화이트 센터', 1950년, 2,06 x 1.41m, 개인 소장(출처 wikipedia)

또 다른 가격 책정 요소는 '누가 소유했었나'다. 마크 로스코의 '화이트 센터’(White Center)는 미국의 유명한 석유 재벌 록펠러 가문의 개인 소장품이었다. 처음에 데이비드 록펠러가 이 그림을 소유했을 때는 1만 달러도 안 됐지만, 후에 뉴욕 소더비 경매시장에서 7,280만 달러(약 670억 원)에 팔렸다. 7,000배나 ‘뻥튀기’된 것이다.

경매사들의 역할도 크다. 크리스티나 소더비 경매장은 늘 억만장자들로 붐빈다. 경매사는 미술품 가격을 능수능란하게 올리는 일종의 숙련된 엔터테이너 쇼맨이다. 경매사는 작품이 최고가로 팔리도록 흥미진진하고 아슬아슬 긴장감 넘치는 쇼를 펼친다. 이렇듯, 경매사가 가격을 상업적으로 부추기는 가운데 억만장자들이 낙찰 경쟁의 스릴과 열띤 분위기에 휩쓸리면서 작품의 가치는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이후에도 이런 식으로 재판매되는 과정을 거치며 작품의 가치는 수직 상승한다.

한편, 미술품의 가치는 그 미술사적 중요성에 의해서도 결정된다. 클로드 모네의 그림은 그가 인상주의의 개척자였기 때문에 다른 인상파 작품보다 높이 평가된다. 또, 오스트리아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의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에 의해 도난당했다가 원래 소유자의 후손에게 반환됐다. 이런 흥미로운 히스토리 덕분에 이 작품은 당시 약 1,170억 원이라는 고가에 팔리기도 했다.

이 모든 요소들이 합쳐져 예술작품의 가격이 책정된다. 기본적으로 작가의 창의성과 예술품의 질이 중요하지만, 미술시장에서는 작품의 가치가 반드시 작품가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고액 미술품 거래의 경우, 몇몇 영향력 있는 대형 갤러리와 소수의 '블루칩' 예술가, 천문학적 가격을 지불할 재력이 있는 극소수의 부유한 수집가들이 이 극적인 미술 드라마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미술품은 그런 고가에 팔리지 않으며, 소규모 갤러리와 알려지지 않은 신진 예술가들은 여전히 어려운 상황 속에 있다. 미술계도 양극화 현상이 심각하다.

김선지 작가·'그림 속 천문학'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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