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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현장 '집단 우울증' 번질라... 교사들 자구책 찾기 안간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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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현장 '집단 우울증' 번질라... 교사들 자구책 찾기 안간힘

입력
2023.09.08 04:0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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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단 교사 사망... "교육 주체 모두가 상처"
교사들, 집회·카톡방 통해 위로 연대 도모
공허한 정부 후속책... "실효성 없다" 비판
"교사·학생·학부모 다 보듬는 구심점 필요"

극단적 선택을 한 서울 서이초등학교 교사의 49재가 열린 4일 오후 서초구 서울교육대에서 참가자들이 촛불을 들고 추모 집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극단적 선택을 한 서울 서이초등학교 교사의 49재가 열린 4일 오후 서초구 서울교육대에서 참가자들이 촛불을 들고 추모 집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뉴스만 봐도 손발이 떨리고 심장이 빠르게 뛰어요.”

5년 차 초등학교 교사 장모(28)씨는 지난해 내내 한 학부모의 악성 민원에 시달렸다. 주말에도 해당 학부모에게서 전화가 올까 봐 휴대폰을 손에 꼭 쥐고 다녔고, 부재중 기록이 남아 있기라도 하면 심장이 뛰어 5분간 심호흡을 해야 했다. 한번은 연락도 없이 장씨가 수업하는 교실로 찾아와 30분 동안 “당신은 방관자”라며 폭언을 쏟아내기도 했다. 4개월간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악몽 같은 시간을 버텨낸 그는 최근 교사들의 잇단 극단적 선택을 보며 그때 기억이 떠오른다고 했다. 장씨는 7일 “살고 싶어, 위로를 받고 싶어 집회에 나간다”며 울먹였다.

갖은 민원에, 갑질에 고통을 겪던 교사들이 계속 목숨을 끊고 있다. 상처는 비단 교사 집단에 국한되지 않는다. 학부모, 학생 등 다른 교육 주체들에게도 깊은 생채기를 남겼다. 소통의 선순환을 담보할 확실한 대책이 속히 마련되지 않으면 교육 현장이 ‘집단 트라우마(정신적 외상)’에 빠질 거라는 우려마저 나온다. 일부 교사들이 아픈 경험을 공유하는 모임을 결성하는 등 자구책을 세우고 있지만, 근본 해결책으로는 많이 부족해 보인다.

거리·채팅방서 직접 정신건강 챙기는 교사들

연이은 교사 사망 소식은 다른 교사들에게 과거 트라우마를 되새김하는 방아쇠가 됐다. 경기 지역에서 3년째 교사로 일하는 김모씨는 “서울 서이초 사건 내용을 접했을 때 이전에 학부모가 내게 소리쳤던 말들이 겹쳐 들렸다”며 “수면제를 다시 복용해야 할 정도”라고 말했다. 5년 차 교사 A씨도 “두 시간 동안 학부모에게 ‘싸가지가 없다’는 폭언을 들었던 기억이 떠올라 불안한 상태”라고 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 대책은 말뿐이다 보니 교사들 스스로 온·오프라인 모임을 만들어 정신건강을 지키려는 움직임이 감지된다. 온라인에는 서로 아픈 경험담을 나누는 오픈채팅방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15년 차 교사 조모(37)씨는 “오래 대화하다 보면 강한 유대감이 느껴져, 직접 발언하지 않아도 위로가 된다”고 말했다. 최근 부쩍 잦아진 집회에 참석하는 교사 숫자가 줄지 않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특수교사 김모(39)씨는 “현장에 나가면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절절히 깨닫게 된다”고 강조했다.

미흡하기만 한 교육 당국의 지원은 교사들을 거리로, 온라인 커뮤니티로 내모는 원인이다. 교육부는 ‘교원치유지원센터’를 통해 교사 심리상담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상담사가 절대적으로 부족해 혜택을 받지 못하는 교사가 태반이다. 실제 지난해 1학기 기준 전국 17개 시·도교원치유지원센터 상담사 수는 26명에 불과했다. 한국교직원공제회도 비슷한 상담 서비스(The-K 마음쉼)를 제공하고 있으나 이용 권한은 2년간 5회로 제한돼 있다.

학생·학부모도 피해자... "우울감 고리 끊어야"

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이초에서 학생들이 등교하고 있다. 뉴스1

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이초에서 학생들이 등교하고 있다. 뉴스1

학생과 학부모 피해도 걱정된다. 교육부는 운영 중인 상담 프로그램 ‘위(wee)프로젝트’를 중심으로 학생 심리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서이초에는 ‘특별 상담실’을 개설해 전교생 상담을 진행했고, 학부모를 상대로도 이번 사건을 놓고 자녀와 소통하는 방식을 알려주는 등 ‘애도 교육’을 했다.

하지만 정신적 충격을 극복하기엔 역부족이라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자녀가 서이초 2학년에 다니는 학부모 B씨는 “애도 교육을 받아도 일부 학부모는 여전히 아이에게 ‘선생님이 사고로 돌아가셨다’고 설명한다”며 “연이은 사건에, 추모제도 계속되다 보니 되도록 학교와의 접점을 만들지 않으려 하는 가정도 있다”고 전했다.

적절한 치료가 수반되지 않으면 후유증만 커지는 트라우마의 속성상 집단 우울감의 고리를 빨리 끊어낼 필요가 있다. 이병철 한림대 정신의학과 교수는 “이겨내지 못한 트라우마는 후유증을 남기기 마련”이라며 “방치 기간이 길어질수록 다른 피해자가 속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상담사 수를 늘리고 교육지원청별로 교원치유지원센터를 만드는 등의 실질적 후속 조치가 나와야 한다”면서 “모든 교육 주체를 보듬을 수 있는 중립적 치유 기관 설립도 검토해야 할 시점”이라고 제언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앱,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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