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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냉전에 소환된 홍범도 장군

입력
2023.08.31 19:40
수정
2023.08.31 20:01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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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이 역사에 뛰어들어 생긴 이번 논란
21세기 신냉전 초입에 발생한 상징적 사건
우리 사회 과도한 편향 돌아볼 기회 삼아야

군이 육군사관학교뿐만 아니라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고(故) 홍범도 장군 흉상에 대해서도 필요시 이전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은 지난달 28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고(故) 홍범도 장군 흉상 모습. 뉴스1

군이 육군사관학교뿐만 아니라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고(故) 홍범도 장군 흉상에 대해서도 필요시 이전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은 지난달 28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고(故) 홍범도 장군 흉상 모습. 뉴스1


이제는 왜 홍범도 장군을 문제 삼았는지 물어야 할 때다. 장군 흉상의 육사 철거를 둘러싼 논란의 평가는 재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보수 진보를 아울러 거의 모든 언론이 논란의 부당함과 부적절함을 지적했다. 독립영웅 동상 5개 중에서 1개만 남긴다, 1개만 철거한다는 조삼모사 식 대응은 군의 옹색함만 들췄을 뿐이다. 그럼에도 특이할 만한 점은 객관적 사실의 변경이나, 평가를 뒤집지 못하는데도 군과 정부가 논란에서 물러서지 않는 것이다. 질문 방향을 바꿔, 논란 대상이 왜 홍범도이고, 철 지난 이념 전쟁을 하는지 따져볼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번 논란은 21세기 신냉전 입구에서 벌어진 상징적 사건이다. 대통령 발언과 연결 지어 보면 별안간 생긴 ‘갑툭튀’도 아니다. 8·15 경축사, 여당 연찬회 등에서 대통령은 공산주의, 사기적 이념의 문제를 반복해 언급했다. 특유의 거친 말투로 인해 놓치기 쉽지만 그 메시지가 가리키는 지점을 따라가면 한 가지는 분명해진다. 장군의 소련 공산당원 경력을 참모들에게 언급한 데서도 짐작할 수 있듯 신냉전식 이념, 논리에 닿아 있다.

홍범도 논란이 그러하듯 세계는 거칠어지고 있다. 칼만 들지 않았을 뿐 내 편 네 편으로 점차 나뉘어가는 험한 세상이다. ‘데인저 존’에 들어선 미중은 어느 한쪽이 이등국으로 전락할 때까지 헤게모니 싸움을 지속할 태세다. 입증이라도 하듯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은 여러 기대에도 불구, 가이드라인만 명확히 하고 돌아왔다. 마치 너와 나는 경쟁자라고 확인한 이별 서약을 한 것과 같다. 우리로선 미국이 룰을 정하면 따라야 하는 지점들은 늘어나고 있다. 공교롭지만 세계 흐름은 국내에도 유사한 방향으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상반된 사례이긴 하나 우리 사회 민주항쟁의 시간이던 1987년 6월, 로널드 레이건은 베를린의 브란데부르크 문 앞에서 “고르바초프 서기장, 이 문을 열고 장벽을 허무시오”라고 연설했다. 5개월 뒤 장벽은 무너졌고 2년 뒤 소련제국도 해체됐다. 독재 종식과 냉전 해체는 외부압력 또는 내재된 문제가 함께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점차 뚜렷해지는 신냉전의 작동기제 중 하나가 상대의 악마화다. 냉전시절 소련에 대해 했던 것처럼 전 지구적으로는 중국을, 내부에선 상대 정파를 적대시하는 일이다. 적과 동지로 세상을 양분해야 패권 경쟁에 필요한 에너지도 동원할 수 있다. 위험한 것은 그것이 적정선을 넘어서면 매카시즘이 되고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는 데 있다. 매카시즘처럼 이념과잉이 역사적 공간에까지 뛰어든 것이 이번 논란이다. 장군은 광복을 기점으로 한반도가 분단되리라 상상조차 못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국방부 논리대로 ‘공산주의자 홍범도’로 구성되면 그의 무장독립운동은 빨치산 행적이 되고 만다. 물론 이 같은 악마화는 국민 공감을 얻는 데 실패하고 있다. 하지만 논란을 지켜본 많은 이들은 통합, 톨레랑스와는 거리가 먼 신냉전의 생경함, 이념 과잉에 놀라고 있다. 회색지대마저 위험해질 수 있다는, 자기 검증이 필요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역시 크다.

미중 갈등의 신냉전을 당연한 것으로 보는 건 지금 시대의 풍조다. 재론과 반론이 불가할 만큼 신냉전에 맞춰 외교안보가 조율되고 사회도 방향을 틀고 있다. 그러나 신냉전 초입에 소환된 홍범도 논란은, 미국발 대중국 마취제를 과도하게 맞은 건 아닐지 우리 사회가 돌아볼 기회일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이념에서 자유롭지 못한 우울한 모습만 확인시킬 뿐이다.


이태규 논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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